연재 중 미묘케 26화

콕 찍어.

손에 쥐고 있던 계절

by 적적

시식코너에서 가을을 먹고, 손에 쥔 이쑤시개를 버리지 못한 채 잠시 서 있다가 작은 통에 내려놓고 돌아선다.



대형마트의 통로는 언제나 불완전한 계절의 압축판처럼 빛난다. 철마다 바뀌는 진열대에는 상품이 아니라 시간이 팔린다. 여름이면 수박과 옥수수가, 겨울이면 귤과 단감이, 가을이면 은행잎의 빛깔을 닮은 전단지가 매달린다. 사람들은 계절을 산다기보다, 계절이 제공하는 맛의 조각을 입안에 담아 확인한다. 시식코너는 그 점에서 가장 솔직한 무대다. 직접 삼키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는 것들이 그곳에서 시험된다.



매대 위의 진열은 언제나 앞선 계절을 선언한다. 형광등 불빛 아래 번들거리는 포장지는 인공 햇빛 같고, 그 아래 놓인 과일과 채소, 고기와 빵은 자연의 시간이 아니라 시장의 시계를 따른다. 길 위에는 아직 여름의 열기가 남아 있어도 이곳에서는 이미 은행잎빛 전단이 흔들린다. 두꺼운 코트가 어색한 바깥과 달리 매대 사이에는 붉은 트리와 초콜릿이 겨울을 예고한다. 사람들은 그 시차를 알면서도, 예언을 확인하듯 매대 사이를 걸으며 앞당겨진 계절을 맡고, 뒤섞인 빛깔을 훑는다. 그리고 그 모든 감각을 입안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시험하는 곳이 시식코너다.


작은 종이컵의 국물, 한 조각 고기, 부서진 과자는 단순한 상품의 일부가 아니라 계절의 파편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씹으며 잠시 다른 시간을 경험한다. 아직 오지 않은 날씨일 수도, 이미 지나간 축제일 수도 있다. 현재라는 감각은 빠져 있고, 대신 기억이나 기대가 혀끝에 남는다.



시식은 언제나 현재를 결핍시키며 미래와 과거를 동시에 불러낸다. 손에 남은 이쑤시개는 그 경험의 가장 적고 정확한 흔적이다. 다 씹어 삼킨 계절의 잔여이자, 끝나버린 순간이 남긴 증거다. 버려지는 그 짧은 동작 속에서 계절은 비로소 현재로 돌아온다.



갈색 조각 하나가 입속으로 들어오면 그것은 단순한 고기가 아니라 다른 시간으로 가는 열쇠가 된다. 간장의 짭짤함은 잊힌 추석 상차림을 떠올리게 하고, 과한 양념은 도시의 점심시간을 환기한다. 시식은 그렇게 기억을 불러내는 의식이다. 그러나 손끝에서 잠시 맴도는 이쑤시개는 다르다. 그것은 이미 사라진 경험의 껍질이다. 관계가 끝나고 남은 작은 습관처럼, 버리지 못한 채 손에 머문다.



가을은 그렇게 시식코너에서 먼저 도착한다. 바깥에서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계절이 형광등 아래에서 완성된다. 은행잎이 아직 반쯤만 노랗게 물든 사이, 이곳에서는 이미 다 익은 빛깔로 제공된다. 계절은 자연보다 시장에서 더 빠르게 포장된다. 사람들은 그것을 씹으며 확인한다.



이쑤시개가 작은 통으로 향하는 순간, 그것은 입안의 시간이 끝났음을 받아들이는 절차다. 버리는 행위는 후처리가 아니라 경험을 정리하는 방식이다.



마트라는 공간은 늘 사람들을 거대한 선택지 앞에 세운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택은 이미 시식 순간에 끝난다. 한 입 베어 문 뒤, 손끝의 작은 동작으로 모든 망설임은 봉인된다. 가끔은 이쑤시개를 버리지 못한 채 매대 사이를 오래 걷는 이가 있다. 그것은 이미 결정했지만 인정하지 못하는 상태와 닮았다. 살 수도, 안 살 수도 없는 상품 앞에서 머뭇거리는 손끝이 미련을 붙든다.


시식코너는 늘 붐빈다. 사람들은 입안에 작은 조각을 넣고 잠시 멈추고, 다시 걸음을 옮긴다. 그러나 그 사이 계절이 들어와 머문다. 여름이 저물고 가을이 시작되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시식대 위의 접시가 먼저 알린다. 계절은 언제나 가볍고 일시적이다.



마트 안에서 가장 진실한 장면은 계산대가 아니라 시식코너에서 일어난다. 돈을 지불하기 전, 무상의 순간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놓치고, 미뤄왔는지를 알게 된다. 그 진실은 작고 사소해서 금세 사라진다. 손에 쥔 이쑤시개를 작은 통에 버리는 순간, 사람은 그것을 곧 잊는다. 그러나 잊힌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장면의 본질이다.


가을 또한 그렇게 소비된다. 불현듯 다가와 입안을 채우고, 순간의 쾌락을 남긴 뒤, 흔적은 버려진다. 사람들은 그 흔적을 지워버리고 다음 계절로 넘어간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그러나 손끝에 남았던 그 짧은 망설임은 오래도록 따라다닌다.



가을은 시식처럼 찾아와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줄 모른다. 그리고 남는 것은 언제나 같다. 손끝에서 조용히 버려지는 이쑤시개. 그것이야말로 지나간.




계절의 초상이다.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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