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미묘케 30화

번지는 순간.

모호함을 거스르며 도달한 세계.

by 적적


간혹 나뭇잎은 비를 흠뻑 맞았다가, 마치 천천히 햇살에 말라가는 신문지의 가장자리처럼 바람에 팔랑거리며 제 몸을 드러낸다. 그 수많은 잎들의 행렬 속에서 녹색이 징그럽도록 빽빽하게 번져 있는 숲 한가운데, 뜻밖에도 붉은 불꽃처럼 타오르는 잎 하나가 있었다. 마치 계절이 몰래 숨어 있다가 그 작은 잎을 불쑥 내민 것처럼, 그해 가을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나무는 언제나 제 몸을 가장 늦게 드러낸다. 가지 사이사이에서 불꽃처럼 번지는 붉음은 단지 색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여름이 자신이 누리던 자리에서 한 발 물러서며 남긴 빈자리를 서서히 불길로 채우려는 듯한 움직임이다. 나뭇잎 하나가 불타는 것은 나무 전체가 화염에 휩싸이기 전의 전조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파멸이 아니라 순환이고, 소멸이 아니라 다른 계절의 태동이다.


그 새벽의 바람은 조금 더 거칠게 불었다. 불꽃처럼 붉게 변한 잎은 그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꺼지지 않았다. 비는 밤새 오락가락했지만, 그 불꽃 한 잎은 빗방울을 뚫고 더욱 또렷해졌다. 어쩌면 계절은 거대한 사건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찮고 사소해 보이는 작은 신호에서 번져 나오는 것인지 모른다. 눈길이 머물지 않으면 알아채기조차 어려운 불씨 같은 잎이야말로 가장 먼저 도착한 가을의 전령이었다.



계절의 변화는 언제나 느리게, 그러나 집요하게 이어진다. 어느 날 갑자기 거대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밀려드는 기척으로 다가온다. 창문 밖으로 흘러드는 공기가 달라지고, 바닥에 떨어진 그림자가 길어지고, 오래 입던 옷감의 두께가 어색하게 느껴질 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러나 깨달음은 이미 늦다. 계절은 이미 전부 스며들어 있고, 거슬러 되돌릴 길은 없다. 변화란 언제나 인식보다 빠르게 진행된다.



인간의 감각은 그 느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하루 전까지는 여름의 한가운데였다고 믿고 싶지만, 어느 순간 낯선 공기의 결이 몸을 스치면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곳에 들어서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계절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국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늙음도, 사랑의 소멸도, 관계의 균열도, 한 번에 찾아오는 법은 없다. 늘 신호는 작고 하찮으며, 그래서 쉽게 무시된다. 그러나 그 작은 균열 하나가 시간이 지나면 전체를 잠식한다. 불꽃처럼 붉어진 한 잎이 나무 전체를 바꿔버리듯.



가을의 시간성은 또한 독특하다. 봄과 여름의 시간은 빠르다. 씨앗이 움트고 잎이 돋고, 햇빛이 무겁게 쏟아지는 동안 시간은 팽창하며 질주한다. 그러나 가을에 들어서면 시간은 속도를 늦추고, 마치 고요한 호수 위에 낙엽이 한 장씩 떨어지듯 느리게 분절된다. 하루하루가 또렷이 구분되고, 공기의 결 하나하나가 분명해진다. 이 느림은 단순한 정지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깊어짐’이다. 사물의 표면이 아니라 내면으로 시선을 이끄는 시간, 현상의 흐름이 아니라 본질의 무게를 체험하게 하는 시간, 그 시간이 바로 가을의 시간이다.


소멸과 깊어짐이 교차하는 이 계절은 인간의 감정 또한 다층적으로 흔든다. 기쁨과 슬픔, 설렘과 허무가 동시에 스며들어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한 장의 낙엽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 그 아름다움이 곧 사라진다는 사실이 같은 감각 안에서 슬픔으로 번진다. 이 애매하고 모순적인 감정이 바로 가을의 정서적 본질이다. 인간은 모순을 불편해하지만, 사실 가장 강렬한 미적 경험은 모순에서 발생한다. 가을은 그 모순을 숨기지 않고 정면으로 드러낸다. 그래서 아름답고, 그래서 불안하다.



또한 가을은 공간의 의미를 바꾼다. 여름의 숲은 닫힌 공간이다. 초록의 벽이 사방을 가리고, 빛조차 뚫기 힘들다. 그러나 가을의 숲은 열려 있다. 잎이 떨어진 나무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고, 하늘은 더 가까이 내려온다. 길 위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길어지고, 풍경은 원근의 감각을 새롭게 부여한다. 이 열린 공간 속에서 인간은 일종의 투명함을 경험한다. 자신과 세계의 경계가 조금은 허물어지고, 사물들이 서로 스며드는 듯한 감각. 가을은 존재를 경계 짓는 대신 흐려놓음으로써, 새로운 연결을 가능하게 한다.



그 어긋남은 인간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예전에 보았던 풍경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반복 속의 차이 때문이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감각이 정확히 겹치지 못하고, 그 미세한 틈이 사람을 멈춰 세운다. 계절의 변화는 바로 그 틈에서 경험된다.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예측 가능하면서도 언제나 예측 불가능하다.



이 모호한 계절을 사람들은 사랑한다. 아마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계절의 속성과 닮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시작과 끝의 경계가 모호하다. 언제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말할 수 없고, 언제 끝났는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단지 어떤 순간 불꽃이 일어나 마음을 덮쳤음을 기억할 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식어버렸음을 알 뿐이다. 계절이 그렇듯, 사랑도 불씨 하나로 시작해 전부를 바꿔버리고, 이윽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진다.



계절의 변화는 삶의 비유이자 철학적 단서다. 사람은 언제나 현재의 계절 속에 살지만, 동시에 과거의 계절과 미래의 계절을 겹쳐 느낀다. 눈앞의 가을을 보면서 지난가을을 기억하고, 다가올 겨울을 예감한다. 계절은 하나의 시점이 아니라, 시간의 두께다. 그 두께 속에서 인간은 시간을 경험한다.



숲에서 붉게 번진 잎 하나가 보여준 것은 단순한 색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변화의 원형이다. 삶의 전환은 언제나 그렇게 시작된다. 사소한 징후, 하찮은 기척,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작은 불꽃 하나. 그러나 그것이 전체를 바꾸고, 그 전체가 다시 세계를 바꾼다. 계절은 자연이 끊임없이 들려주는 가장 오래된 이야기이며, 인간은 그 이야기 속에서 매번 새로운 시작과 끝을 배운다.



계절의 변화란 소멸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나뭇잎이 붉게 물들어 떨어지는 것은 나무가 죽음을 연습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 죽음은 진짜 죽음이 아니다. 땅에 떨어진 잎은 흙이 되고, 흙은 다시 나무의 뿌리를 살린다. 소멸은 순환으로 이어지고, 사라짐은 새로운 시작의 밑거름이 된다. 계절은 죽음을 통해 삶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어떤 관계는 끝났지만, 그 끝은 다른 관계의 시작을 가능하게 한다. 어떤 시절은 지나갔지만, 그 지나감이 새로운 시절을 열어젖힌다. 끝남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시작도 불가능하다. 가을은 바로 그 사실을 가장 선명하게 증언한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잎은 곧 떨어지지만, 그 떨어짐이야말로 계절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다.


바람은 또다시 불고, 숲은 조금씩 색을 바꿔간다. 사람들은 알지 못한 채 그 속을 걸으며 계절의 무게를 짊어진다. 어느 날 문득, 한 장의 붉은 잎이 발끝에 밟히는 순간, 이미 다른 세계에 들어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계절은 말한다. 모든 것은 변하고, 그 변화를 거스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그러나 동시에, 그 변화 속에서만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고. 불꽃은 결국 사라지지만, 그 불꽃이 지나간 자리에서 또 다른 빛이 시작된다고.



그해 가을이 번지고 있었다. 그것은 단지 나무 위의 일만은 아니었다. 세계 전체.



삶 전체가, 그렇게 번지고 있었다.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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