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꾾임없는 재계약의 연속
아침 산책길에 도착한 한 통의 문자는 기묘한 방식으로 계절의 무게를 실어 보냈다. ‘가을 재계약 여부를 묻습니다.’라는 문장은 단순한 행정적 절차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동시에 감각과 기억을 뒤흔드는 비밀스러운 암호였다. 아직 여름의 마지막 습기가 도로 위에 남아 있었고, 나무 잎사귀들은 푸르름과 바스러짐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작은 문자 하나는 모든 풍경을 재편성했다. 그 순간부터 공기는 이미 가을이었고, 눈앞의 하늘은 미묘하게 다른 색조를 띠기 시작했다.
도시의 아침은 언제나 반복되는 출근 행렬과 신호등의 박자로 채워지지만, 계약이라는 단어는 그 리듬에 불협화음을 던졌다. 재계약은 단순히 서류에 도장을 찍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장면을 연장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계절로 갈아탈 것인지 결정하는 일종의 선언이다. 삶은 종종 그런 선택을 강요한다. 떠날 수 있을 만큼 자유롭지 않고, 머물 만큼 확신에 차 있지도 않은 상태에서 건네지는 질문.
문자라는 것은 특이하다. 발신자의 목소리도, 표정도, 숨결도 지워버린 채로 오직 문자와 공백만을 남긴다. 그 차가움 속에서 어떤 문장은 의외로 뜨겁게 읽힌다. ‘재계약 여부.’ 여기에 담긴 뉘앙스는 계약 관계를 넘어, 인간관계의 지속 여부, 사랑의 재검토, 혹은 기억의 갱신과 닮아 있었다. 살아가는 일은 일종의 재계약의 연속이다. 계절과, 장소와, 관계와, 심지어는 감정과도.
길가의 은행나무는 이미 불안을 품은 듯 잎맥을 따라 옅은 황색을 스며 올리고 있었다. 아직은 초록이 지배적이지만, 그 초록조차도 지난 계절의 결론부에 다다른 색감이었다. 잎사귀는 바람에 흔들리며 스스로를 설득하듯 마지막 녹색의 빛을 유지하려 했고, 그 위로 떨어진 햇살은 계절의 잔여 시간을 시각적으로 계산하는 듯했다. 산책을 이어가는 발걸음 사이사이, 문자 메시지의 문장이 계속 떠올랐다. 가을은 이미 합의되지 않은 채로 도래하고 있었고, 그 합의의 주체는 아무도 아니었다.
재계약이란 표현 속에는 일종의 불안이 깃들어 있다. 만약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라면 애초에 ‘재계약 여부’를 묻지 않을 것이다. 묻는다는 행위는 연속성에 균열이 생겼음을, 어떤 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수 있음을 전제한다. 그렇기에 재계약은 늘 긴장과 함께 온다. 한 시절이 다음 시절로 옮겨가는 순간, 그것은 마치 연극 무대의 장면 전환처럼 삽시간에 일어나면서도, 동시에 관객의 마음에는 오래도록 잔향을 남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은 대개 계약의 산물이다. 아파트 전세계약, 사무실 임대계약, 혹은 작은 원룸의 월세 계약. 그러나 그 계약은 단순히 물리적 거주를 넘어선다. 어떤 장소에 머무른다는 것은 곧 그 공간에 자신의 시간을 심는 일이다. 벽지에 남은 그림자의 흔적,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각도, 계절에 따라 바뀌는 방 안의 온도와 냄새. 모든 것이 기억의 형태로 자리 잡는다. 따라서 재계약은 단순히 방을 연장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시간과의 관계를 연장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따금 재계약은 거절당한 사랑의 회상과도 닮아 있다. 아무리 익숙하고 편안했더라도, 어느 순간 상대방은 ‘더 이상 연장은 없다’고 말한다. 그 말은 마치 건물주의 통보처럼 차갑지만, 그 안에는 지울 수 없는 시간의 무게가 담겨 있다. 거절은 새로운 계절을 예고한다.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은 자신이 남겨놓은 흔적들을 더 이상 관리할 수 없다. 가구와 벽에 스며든 기척은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고, 남겨진 공기는 점차 낯선 온도를 띤다.
산책길의 흙냄새는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 있었다. 여름 동안 뜨겁게 달궈진 땅은 아직 식지 않았지만, 아침의 서늘한 공기가 그 위에 얇은 막처럼 깔려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두 계절이 동시에 들어왔다. 문자의 문장은 바로 그 경계 위에 떨어진 낙엽과 같았다. ‘재계약 여부’라는 짧은 물음은 계절이 사람에게 던지는 언어였다.
삶은 ‘재계약 여부’를 끊임없이 확인받는 과정이다. 관계는 언제나 유효기간을 가진다. 친구라 부르는 사람도 어느 순간 그 관계를 재계약할지, 아니면 해지할지 고민하게 된다. 직장과의 계약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스스로의 신념조차도 주기적으로 갱신되어야 한다. 어제의 확신이 오늘은 의심으로 변하고, 내일의 불안이 모레는 새로운 질서가 된다. 그렇기에 ‘재계약 여부’는 하나의 계절을 넘어 삶 전체의 구조적 문법이다.
산책길에 늘 서 있던 오래된 벤치가 눈에 들어왔다. 그 벤치의 나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두운 색을 띠었고, 표면은 수많은 계절의 비와 바람을 견뎌낸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곳에 앉는 사람들은 모두 잠시 머무른다. 누구도 영구적으로 소유할 수 없는 자리. 벤치는 스스로의 재계약 여부를 묻지 않는다. 다만 앉는 자들의 체온과 체취를 받아들이며, 다음 사람을 기다릴 뿐이다. 어떤 사물은 스스로 재계약의 필요가 없는 존재방식을 택한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늘 묻는다. 연장할 것인가, 떠날 것인가.
문자의 알림음은 사라졌지만, 문장의 여운은 여전히 이어졌다. 모든 메시지는 결국 사라지지만, 읽은 순간 새겨진 의미는 오래 남는다. ‘가을 재계약 여부를 묻는다.’ 그것은 단순한 안내 문자가 아니라, 계절과 기억과 관계와 존재가 매번 갱신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은밀한 통보였다.
길모퉁이를 돌 때,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 사이를 스쳤다. 여름의 마지막 바람이었는지, 가을의 첫 바람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이미 그 질문이 던져졌다는 사실이다. 재계약 여부를 묻는 문장은 더 이상 삭제할 수 없는 상태로 남아 있었다. 모든 선택은 이미 시작된 계절의 흐름에 얹혀 있었다.
삶은 언제나 새로운 계절과의 계약을 요구한다. 가을은 곧 묻는다. 머무를 것인가, 떠날 것인가. 그리고 그 물음 앞에서 대답하지 않는.
침묵조차 하나의 선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