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면서 여전히 증발하지 않는 것들.
도시의 길가에는 이해할 수 없는 정물들이 놓여 있다. 기능을 잃은 의자, 금이 간 유리 조각, 그리고 주인이 떠나버린 화분. 그 화분은 결코 자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흙이 담기고, 씨앗이 심어졌으며, 잠시 누군가의 시선을 붙들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억은 오래전에 소멸했고, 남아 있는 것은 무심히 잊힌 껍데기뿐이다. 화분은 오늘도 길가에, 조용히, 그러나 완강하게 놓여 있다.
아침이면 차가워진 표면 위에 물방울이 맺힌다. 그것은 단순한 이슬이 아니라 도시의 호흡이 응결된 흔적이다. 땅에서 올라온 습기, 자동차의 열기를 식힌 바람, 새벽을 지나온 공기가 차디찬 표면에 달라붙어 구체적인 형태를 얻는다. 투명한 물방울은 곧 흘러내리거나, 태양에 닿아 증발할 운명이다. 그러나 바로 그 사라짐이 화분의 존재 방식과 닮아 있다. 오래 머무르지도, 완전히 흔적을 남기지도 않는 것. 존재와 소멸 사이에서 미묘하게 흔들리는 경계선.
화분의 몸체는 하나의 냉각된 기호처럼 서 있다. 차갑다는 것은 거부한다는 의미와 닮아 있다. 스치는 손끝에 전해지는 냉기는 타인의 체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살아 있으면서도 따뜻함을 내주지 않는 생명, 그것이 길가의 화분이다. 물방울은 그 거부의 피부 위에 잠시 머물다, 이내 중력의 법칙에 굴복해 떨어진다. 그 순간 흙은 촉촉해지지만 곧 다시 갈라지고 마른다. 수분은 채워지지만 생명은 불어나지 않는다. 반복되는 이 무의미의 순환 속에서, 화분은 존재를 연명한다.
도시의 사람들은 그 화분을 거의 보지 않는다. 눈길은 한순간 머물다 흩어진다. 무심함이야말로 가장 완전한 방식의 방치다. 애정도 혐오도 없이, 그저 시선의 공백 속에 존재하게 되는 것. 길가의 화분은 바로 그 공백의 가장 정직한 증거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돌봄이 철회됨으로써 화분은 오히려 가장 순수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 누구의 욕망에도 봉사하지 않고, 장식의 기능도 상실한 채, 도시의 한 귀퉁이에서 단독으로 선다. 누군가의 의미가 제거된 자리에서, 비로소 존재 자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화분은 도시의 시간과 함께 늙는다. 낮에는 매연과 발자국 소음을 흡수하고, 밤에는 네온사인 속에서 실루엣으로 서 있다. 새벽이 오면 가로등은 꺼지고, 그제야 표면에 물방울이 맺힌다. 그 물방울은 살아 있다는 것의 증명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생은 환희나 열정과는 거리가 멀다. 살아 있다는 것은 어쩌면 차가워지고 다시 말라가는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계절도 이 화분 위를 지나간다. 봄에는 꽃잎이 흩날려 흙을 덮고, 여름에는 장마가 진흙을 불린다. 가을에는 낙엽이 축적되고, 겨울에는 눈이 내려 무게를 더한다. 그러나 어떤 계절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계절의 흔적은 사라지고, 화분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온다. 계절을 품되, 계절에 속하지 않는 존재. 그것이 길가의 화분이 보여주는 독특한 미덕이다.
화분에 맺힌 물방울은 사라지기 위해 태어났다. 그러나 그 사라짐은 부정이 아니라, 완결에 가깝다. 완결은 종말이 아니라 순환의 또 다른 입구다. 물방울이 증발하면 공기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다시 어딘가에서 다른 물방울로 태어난다. 화분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듯 보이지만, 도시의 습기와 빛, 소리와 침묵을 매일 통과시킨다. 그 과정에서 사소한 증거들이 축적된다. 증발한 물방울의 기억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공기 속에 스며들어 도시의 호흡이 된다.
화분은 존재와 무의미의 경계에 서 있다. 돌보아지지 않지만 버려지지도 않고, 보이지 않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것은 도시가 품은 무심함의 얼굴이며, 동시에 가장 조용한 생의 은유다. 살아 있다는 것은 누군가의 시선에 붙들리는 일이 아니라, 잊혀지면서도 여전히 증발하지 않는 방식으로 버티는 일에 가깝다.
언젠가 이 화분은 치워지거나 파손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저항하지 않는다. 그것이 본래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남겨진 자리는 곧 다른 물건이나 풍경으로 덮일 것이다. 하지만 차가운 표면 위에서 잠시 반짝이던 물방울들은 이미 도시의 공기 속으로 흩어져, 보이지 않는 흔적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길가에 차가워져 물방울이 맺힌 화분처럼, 어떤 존재는 그렇게 살아간다. 소속되지 않으면서도 사라지지 않는 방식으로. 세상에 붙들리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버려지지도 않은 채. 결국 존재한다는 것은 돌봄이나 의미의 문제가 아니라, 바람과 시간, 습기와 햇빛 속에서 끝내 견디는 일일지도 모른다. 차갑게 식은 표면에.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물방울처럼.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