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이 모닝커피를 마신다.
가로등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유리 구 속에 갇힌 빛이 희미하게 떨렸다. 공기 중에는 밤의 잔열이 남아 있었다. 구름은 낮의 준비를 서두르지 않았다. 건물 벽의 그림자들이 방향을 잃은 채 서로를 덮었다. 아스팔트 위에는 누군가 흘린 커피의 냄새가 남아 있었다. 밤을 견디느라 피로한 빛들이 서로의 눈을 피하며 잠시 머뭇거렸다.
가로등 아래에는 신문이 한 장 젖어 있었다. 인쇄된 글자는 물기를 머금어 더 검게 번졌다. 활자의 잔상 속에서 문장이 스스로 흐려졌다. 지나가던 고양이가 냄새를 맡고 멈췄다. 고양이의 눈동자에도 빛이 머물렀다. 눈동자가 움직일 때마다 가로등의 불빛이 흔들렸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잔을 들어 올리며 커피를 저어놓는 듯한 진동이었다.
도로의 한가운데에서 버스가 멈췄다. 문이 열리자 냉기가 흩어졌다. 운전사의 얼굴은 밤새운 도시의 얼굴과 닮아 있었다. 피곤한 주름 사이로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승객이 한 명도 타지 않았다. 엔진은 여전히 웅웅거렸고, 정류장 표지판의 글자들이 햇빛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버스가 다시 출발하자 그 자리에만 바람이 남았다.
창문마다 커튼이 반쯤 열려 있었다. 잠든 방 안에서는 아직 어둠이 머물렀다. 세면대의 수도꼭지에서 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 소리는 새벽의 분침과 비슷했다. 냉장고의 모터가 미세한 떨림으로 방의 공기를 흔들었다. 누구도 깨어나지 않은 집 안에서, 빛만이 시간을 측정하고 있었다.
편의점 앞 유리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매대 위의 샌드위치가 정렬된 채로 아침을 기다리고 있었다. 계산대 뒤 냉장고의 불빛은 가로등보다 하얗고, 더 냉정했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가 천천히 식어갔다. 뚜껑 위의 수증기가 사라질 때마다 누군가의 입김이 연상되었다. 무인 계산기의 화면이 꺼졌다 켜졌다. 잠시 동안 그 빛이 사람의 눈처럼 깜박였다.
가로등은 여전히 꺼지지 않았다. 한순간, 모든 불빛이 동시에 흔들렸다. 바람이 지나갔다. 빛이 무겁게 흔들릴 때, 도시의 맥박이 잠시 멈춘 듯했다. 전선 위의 비둘기가 날개를 퍼덕였다. 깃털 몇 개가 공중으로 흩어졌다. 그 조각들이 가로등 불빛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아침의 결이 조금씩 달라졌다.
신문 배달원이 자전거를 몰고 나타났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체인에서 짧은 금속음이 났다. 신문이 문앞에 떨어질 때, 그 소리는 어둠의 마침표 같았다. 배달원의 손가락 끝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잉크가 손톱 밑으로 스며들어 작은 밤처럼 남았다. 잠시 뒤 그 손가락이 이마의 땀을 닦았다. 잉크와 땀의 냄새가 섞였다.
가로등 아래서 한 여자가 걸음을 멈췄다. 흰 셔츠에 얇은 코트. 손에는 텀블러가 들려 있었다. 스테인리스 표면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흔들렸다. 그녀는 뚜껑을 열지 않았다. 입술 근처까지 가져갔다가 다시 내렸다. 커피의 향이 공기 속으로 번졌다. 그 향이 가로등을 감쌌다. 순간, 불빛이 조금 더 따뜻해졌다.
사람들이 하나둘 거리로 나왔다. 목덜미에 아직 밤의 냉기가 남아 있었다. 가로등 아래를 지나갈 때마다 그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그림자는 서로 겹쳤다가 흩어졌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켜고 시간을 확인했다. 시계 숫자보다 더 정확한 것은 공기 속의 온도였다. 빛이 바뀔 때마다 숨의 리듬이 달라졌다.
지하철 입구로 발을 들이밀던 한 남자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로등의 불빛이 그의 눈동자에 박혔다. 그 빛이 천천히 흔들렸다. 눈동자가 흔들린 것인지, 빛이 흔들린 것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그 순간 도시 전체가 한 호흡의 길이만큼 멈춰 있었다.
가로등이 마침내 꺼졌다. 그러나 꺼지는 순간 아침이 더 어두워졌다. 태양이 떠 있었지만 거리의 빛은 희미했다. 빛이 꺼진 자리마다 잠시 그림자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불빛이 남긴 잔상, 혹은 기억의 무게였다. 사람들의 눈동자 속에서 여전히 불빛이 살아 있었다.
커피 자판기 앞에 한 남자가 섰다. 버튼을 누르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종이컵에 검은 액체가 채워졌다. 김이 올라올 때마다 그 남자의 얼굴이 흐려졌다. 커피를 입에 대기 전, 그는 눈을 감았다. 눈꺼풀 안쪽에 아직 꺼지지 않은 가로등이 있었다. 그 빛이 조금씩 식어갔다.
시간이 지나면 빛은 사라진다. 그러나 빛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 그것은 한 번 더 세상을 비춘다. 그 찰나에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을 향해 걷고 있는지, 왜 여전히 어둠을 두려워하는지를 잠시 떠올린다.
가로등이 모닝커피를 마시는 시간. 그것은 빛이 사라지기 직전, 세상이 가장 투명해지는 순간이다. 불빛이 아직 꺼지지 않은 도시는 자신이 깨어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마지막 한 모금의 어둠을 마신다. 그때 모든 사물은 잠시, 스스로의 경계를 잃는다. 커피의 향과 빛의 잔열이 한 몸처럼 섞인다. 세계는 그 짧은 냄새 속에서 자신이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한다.
그리고 곧.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낮이 시작된다.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