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드로잉(11) 그림실력이란

by Damien We

#1. 명언의 가벼움

세상은 명언으로 가득차 있다. 그것도 아주 꽉. 네이버를 봐도, 인스타그램을 봐도 온갖 명언이 난무 한다. 마치 이 한마디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처럼 말이다. 다음의 문장을 읽어보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도 없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이 묘사한 세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자기 자신의 눈이 아닌 다른 사람의 눈으로 실재를 보게 된다. 더 나쁜 것은 환상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갖춘 마음의 눈을 계발하지 않는다면 육체의 눈으로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화가 폴 호건(생각의 탄생 p.45)


멋진 말이다. 아주 멋진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그러나, 나에게는 멀고도 먼 이야기일뿐. 이렇게 생각해보면 좋을 듯 하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커다란 꿈을 품고, 그 일을 수행해오지 않은 이에게 폴호건의 말은 그냥 '한없이 겉멋에 가까운 철학'이 될 뿐이다.


왜 그러냐고요?

지금부터 그 이유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2. 아무리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도, 독창적이고 싶어도 기본이 없으면 무용지물

KakaoTalk_20200910_102418126_02.jpg 그림 공부 101 없이 무작정 그리는 그림. 엉망진창

작년에 그린 그림이다. 테레사 수녀를 그리려 했는데, 기도하는 노숙자를 그렸다. 상상하는대로 그리면 좋겠으나 내 실력으로 그 얼굴의 감동을 전하는 것은 100% 무리다. 나만의 보는 방식이라...물론 나에게는 나만의 보는 방식이 있다. 그런데 이건 마치 '그리지 않은 그림을 설명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선연습도 안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구도 조차 이해를 못하고 있다.


딸내미와 마눌에게 보여주면 아무런 감흥도 없다는 반응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래 그림 실력이 뭐가 중요해"
"그림에 메시지만 녹이면되지"

라고 자위를 해도 설득력이 없다.


#3. 나에게 명언은 '일도, 취미도, 예술도 모두 같은 공식이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세상에서 어떤 것을 실행하더라도 적용되는 공식이 있다. 일단 '큰 꿈을 품을 것, 그리고 1만 시간 정도는 투여해서 무언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을 연마할 것'. 이 두 가지가 달성되어야 아까 말한 '폴호건의 명언' 정도를 이해할 수 있는 기본 자격이 갖추어 지는 것이다.


최근에 깨달은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언어를 배우는 것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선으로, 면으로, 구조로 내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선/면/구조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철자와 발음이 틀렸다'는 것이다.


난 내 딸내미가 하루에 12시간 씩 그림을 그려온 것을 알고 있다. 내 딸내미는 '언어를 배웠던 것'이다.

me.jpg 선과 면과 구조가 다르다. 딸내미가 그려준 아빠 얼굴


#4. 단, 방법은 한가지는 아닌 듯 하다.

내 경우에는 그림에 관련된 책도 많이 보고, 하루에 한 개씩 그림을 그려왔다. 한 1년 넘게. 실력은 쉽게 늘지 않았다. 물론 누군가가 그려놓은 그림을 따라그릴 수 는 있는 듯 하다. 내 나름대로의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잠시 건담을 만들다가, 슈퍼스컬피를 알게 되었고 잠시 한눈을 팔았다.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그림 그리기라는 언어 배우기'의 목표가 바뀐 것은 아니었다. 최근 만든 스컬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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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컬피 만들기에 상당히 매달렸던 것 같다. 희한하게 이 작업을 하면서 대상의 모습을 360도로 보게된다. 눈매무새의 생김이 얼마나 세밀한지, 근육 속의 뼈가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 사람의 이미지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결국 골격과 근육이라는 점 등 배우게 되는 내용이 너무 많았다.


이런 작업을 하면서 모델 사진을 따라 그리는 연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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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그림에는 아무런 메시지도 없다. 그냥 언어 배우기 일뿐.

그래도 일단 철자법은 익혀야 무엇인가 말하지 않겠나말이다.


#5. 빅픽쳐만 그리는 분들께 고한다.

실제로 책상에 코박고 그 업무를 오랜 기간 수행해보지 않았다면, 제발 빅픽쳐는 좀 협의해서 만들었으면 한다. 빅픽쳐는 숲의 모양일지나, 그 나무가 침엽수인지/활엽수인지/썩었는지/생동감 넘치는지 모른다면 무슨 현실성이 있겠는가 말이다.


내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인생의 모든 부분에 적용되는 공식 하나는 깨달은 것 같다. 10살때 부터라고 치면 39년이 걸렸다. 난 확실히 느리다.


앞으로 남은 인생이 얼마일지는 모르겠으나, 깨달은 이 한가지는 소중하게 여기고 가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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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정도만 잘 아는 위씨아자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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