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mien We Apr 26. 2023

깨어있는다는 것

소경이 길을 만지듯이


세상을 살다 보면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생기기 마련이라고들 한다. 더욱더 고통스러운 부분은 나쁜 일이 다가올 때는 한 개씩 오는 것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마구마구 다가온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운이 좋다고는 생각하고 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여러 가지 일들이 한 번에 세트로 벌어지는 일은 참 당황스럽다. 


내 문제는 '왜 나쁜 일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오는가가 아니라, 이러한 당황스러운 복수의 문제를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단서조차 찾기가 어렵다'는 거였다. 한 동안 이 문제에 대해서 깊숙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나름 내린 결론은 이거다. 혹시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자리 잡은 수많은 작은 습성들이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단호한 마음을 먹고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 오늘은 회사까지 걸어가면서 명상을 하리라고 생각했는데, 날씨가 좋지 않고 정류장 앞에 버스가 도착하는 게 보인다. 이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평상시의 나는 버스를 탄다. 먹었던 마음이 바뀐 것이다. 


오늘부터 감정조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전 중에 법구경을 읽고, 아침 업무에 집중한다. 별안간 핸드폰이 울린다. 누군가 나에게 금융상품을 사라고 끊어내기 어려운 말투로 인사를 한 후 바로 설명에 들어간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짜증이 올라온다. 화를 내면서 전화를 끈고 싶지만, 예의가 아닌 듯하여 잠시 주저한다. 결국 죄송합니다를 읊조리며 종료 버튼을 누른다. 기분이 깔끔하지 않다. 


친구나 동료에게는 쓴소리를 하기 어렵다. 그래서 종종 나름대로 신경 쓴다고 돌려 말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런 화법을 통해서는 결국 제대로 된 의사는 전달이 되지 않고 부작용만 늘어난다. 반대로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라는 심정에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독설이라는 별명이 붙는다. 중간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항상 문제를 야기하고 괴로워하는 패턴이 반복된다. 


누군가 적은 글을 보거나, 설명을 들을 때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차별화에 대한 개인적 욕망과 자만하는 버릇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어떤 종류의 대화에도 항상 약간의 반박, 주제 변경, 시니컬해지는 특징이 나타난다. 가벼운 주제일 경우 농담스럽게 진행이 되지만, 신중한 주제일 경우 논점을 흐리게 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이런 게 업(業)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차별화에 대한 강박으로 소중한 인간관계에서 감정조절 못하고 직설을 했다가 중간에 마음이 바뀐다면 거의 최악이 아닐까 한다. 이런 언행과 생각이 누적되어 가면서 한 사람의 인생이 점점 더 그 형상이 구체화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불경을 계속 보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


눈을 감고 걸어가면 그 걸음이 일자가 아닌 갈지자가 된다. 

잠시라도 내 의식, 생각, 욕망, 언행을 보고 있지 않으면,
난 어느새 갈지자로 살아가고 있다.


소경이 길을 막대기로 건드리며 알아 걸어가듯이,
잠시라도 나를 보고 있지 않으면 인생이 갈지자로 간다는 게 결론이다. 





















이전 23화 Mindfulness in plain English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