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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월 Jan 12. 2024

파브르

— 보라, 알리라

장앙리 파브르(Jean-Henri Fabre, 1823년 12월 22일~1915년 8월 11일)

프랑스의 시인, 생물학자, 교수. [[식물기]]와 [[곤충기]] 등 다수 저작.



파브르 이전에 학문이란 고작 열심히 해부할 뿐, 해체할 뿐.

그러나 파브르는 살아있는 것을, 그것이 산 채로, 그가 하는 대로

오래오래 관찰함으로써 이해했다.

‘있는 그대로’를 보는 데 성공한 최초의 학자이다. 무감(無感)해서가 아니라

예민한 감각과 풍성한 감수성을 쏟아놓으면서도

그것은 그것이라는, 살아있는 것에 대한

대등한 존엄을 실행했다.



그래서 그의 책은 재밌기만 한 게 아니라

영혼을 고양시킨다.

그를 흉내내는 것은 개성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개성을 새롭게, 오직 하나로서, 처음으로 움트게 한다.


파브르보다 더한 진실을 알려면

파브르보다 더 파브르가 되면 된다.

그도 유한하여 가는 데까지 갔고

그 열린 길에는 쉽게 다가가

우리는 그를 뛰어넘을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그를 우러르고 사랑할[경애, 敬愛] 것이다.


인간에 대한 실망 — 나 자신을 포함하여 — 과 피로가 쌓일 때

파브르를 읽는 것은, 여의치 않다면

파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이 차오른다.


나는 누구도 단죄하지 않는다.

나는 누구도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

신의 영역을 침범하여 독신(瀆神)의 죄를 범하지 않고

인간의 품위를 의심하는 병마에 시름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그저 그를 다시 관찰할 뿐이다.

그도 나도, 지금 이 순간 달라질 수도 있다.

생이 끝날 때까지

가능성은 무한하다.

한 조각이라도 그 무한소(無限小, the infinitesimal)가 바로

전부를 바꾸기 때문이다. 100퍼센트를 채우는 데 100퍼센트가 필요하지만

깨트리는 데에는 1퍼센트조차 너무 많으니.


나는 그저 지켜본다.

불완전과 부조리를 단단히 머금고.

역겨움이 단맛이 될 때까지, 견딘다.

파브르는 과학에서 프란치스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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