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위한 변호
페르난두 안토니우 노게이라 페소아(Fernando António Nogueira Pessoa)
1888년 6월 13일 포르투갈 왕국 리스본 출생
1935년 11월 30일 포르투갈 리스본 사망
봄이 다시 오면
어쩌면 난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몰라.
이 순간 난 봄을 사람으로 여기고 싶어,
그녀가 자기의 유일한 친구를 잃은 걸 보고
우는 모습을 상상하려고.
하지만 봄은 심지어 어떤 것조차 아니지,
그것은 말을 하는 방식일 뿐.
꽃들도, 초록색 잎사귀들도 돌아오지 않아.
새로운 꽃, 새로운 초록색 잎사귀들이 있는 거지.
또 다른 포근한 날들이 오는 거지.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고, 아무것도 반복되지 않아, 모든 것이 진짜니까.
(1915년 11월 7일)
이 시의 지은이는 알베르투 카에이루(Alberto Caeiro)이다.
그는 페소아의 이명(異名) 시인이다.
이명은 가명이 아니다.
그는 독립된 인격, 정체성을 갖기 때문이다.
수십 명의 이명을 가진,
연구자에 따라 다른 기준으로 헤아리면 백 명이 넘는 이명을 가진
이 시인을 그래서 사람들은
복수(複數)의 화신(化身)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무엇보다 내게 페소아는
인간을 위한 최선의 변명이다.
물론 누군가는 신앙으로 그리스도를 인간의 변호자로 내세울 테고
누군가는 부처가 신들과 인간들의 스승이라고, 인간을 옹호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신화의 세계로 발들이지 않고
그런 ‘믿음’을 그래서 본성상 맹목을 요청하지 않고도
인간에 대한 심판을, 멸절을 유보할 것을 주장할 수 있다면
바로 그렇게 해 주는 이가
페소아다.
페소아가 무엇을 해서가 아니다.
그런 그이는 이미 그대로
인간을 위한 변명이다.
한때
인간은 인간을 자랑스러워하고
만물의 영장이며
인간의 시대가 그 어떤 황금시대보다 찬란하고
복되다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자신의 행복조차 담지(擔持)하지 못하며
여섯 번째 멸종을 부르는 재앙이 되었다.
오펜하이머가 스스로 도취돼
바가바드 기타를 인용해서 자신이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라고 고백했지만
이는 그의 생각과 다르게 사실이다.
그가 잘난 과학자이고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끈 책임자라고?
그런 건 이유가 아니다.
그냥 그가 인간이라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초과된 다음은 따질 것도 없다.
인간이 자신을 정체(正體, identify)하려 할수록
그것은 빗나가 자신을 겨누는 화살이 된다.
인간은 자살자, 자기 학살자, 자기와 세상의 파괴자이다.
어떻게 변명할 수 있단 말인가.
과거의 악명은 악명을 들쓴 그들에게 한정됐지만
현대의 유례 없는 파괴는
문명 세계의 보통사람들 하나하나에게 헌정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기나긴 변명의 사슬을 거치다뿐 명백하게
대멸종, 지구, 큰 관점에서 자기 자신을 착취하고 학살하고 있다.
그런 걸 쾌락이라고 부르고, 발전이며, 성장, 자아성취라고 여긴다.
이러한 때
인간을 바꿀 수 없어,
없애 버리자고는 안 해도
없어져 버리는 것이 낫구나 싶을 때,
페소아의 존재는
이 복수(複數)의 정체성은
인간이 보여진 것으로서 전부가 아니고
한 번도 보이지 않은 면모, 그 자신 상상하지 못하는 것마저
품고 있을 수 있다고
그리고 그를 통해
온세상이 새롭게 비추어질 수 있다고.
그와 함께
그의 안에 있던 모습대로
세상이 새로 날 수 있다고
창조에 버금가는 창작이
가능하다고
이미, 그렇다고, 그랬다고
웅변해 주기 때문이다.
페소아, 인간을 위한 최선의 변명.
이는
세상이 낯설고
중력과 모든 생활이
타향살이 같고
나는 이방인이로구나 저절로 탄식하는 이들에게조차
그리고 인간을 적대하는 모두에게도
인간에게 무관심한 누구에게도
똑같이
살아라, 살려라
말해 준다.
그러므로
비탄 중에 유쾌하니.
나는 페소아와
이어져있다!
당신도
페소아와 함께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