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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월 Feb 02. 2024

미소

— 반가사유상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을 방문해 본 사람은

아무 말도 더할 게 없을 터

나는 그저 한 번 가보시라 권유하는 셈이다.


또한 이 좋은 것을 보고도

아무에게도 권하지 않는 자는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니


비록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도

도적이 되어서는 아니되는 바


‘가서 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는

‘와서 먹으라’ 하였고,


부처는

‘보았으니 가라’ 하였다.


우리는 지금 곁에 그들을 두고도 있고

두지 않고도 있으니

감각을 환기하고

투명한 것을 보는 눈을

싣지 않은 무게를 재는 몸을

깨우자면

가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금동반가사유상 두 점은 본래 번갈아 전시하던 것인데

둘 모두를 보지 못하고, 여러 번 걸음하고도 엇갈려 하나만 보고 다른 하나를 못 보는 이들이

아우성치는 마음이 가 닿아

다행히 이곳의 대표로서

두 점을 나란히, 그것도 별도의 공간을 꾸며 보관하게 되었다.


한 점은 삼국시대 6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삼국 중 어디서 누가 만들었는가는 밝혀지지 않았고

높이 81.5센티미터로 국보로 지정돼 있다.


또 한 점은 삼국시대 7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신라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높이 90.8센티미터이고 역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관리 상의 이야기일 뿐

두 반가사유상의 진미(珍味)는 이런 오랜 역사가 아니다.

도리어 그것은 완연한 현재인 바


지금 어디의 누구, 무엇과 비겨도

흔들리지 않는

대체불가한 ‘매력’ 자체가

두 작품의 멋이다.


더욱이 이 멋은

고졸(古拙)한 데가 있어서

화려한 듯 수수하고

소박한 듯 장려하다.


흔들리지 않고 미소 짓는 두 분 부처는

사유의 방에서

서서 마주 볼 때 살짝 올려다볼 정도의 높이로 모셔져 있다.


사유의 방은 전시 공간부터가 남달라

살짝 기울어진 바닥과 천장이 자연스레 시선을 사로잡고

걸음을 옮기게 하며,

다가갈 때 아주 먼 듯하고

떠나갈 때 여전히 가까운 느낌을 준다.

둘러보며 뒷모습을 보는 것 또한 감흥이 각별하다.


그러나 여전히 그 멋과 참맛은 두 청년 부처가 풍기는

미소, 구름을 얹듯

부담 없고

차라리 달이나 별과 벗해야 어울릴 법한

사뿐한 웃음에 있다.


그것을 멋이라 하지 않고

멋이 게 있다 하는 것은

그 미소가 어쩐지

보이는 것이 종착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로 시선을 건네 준다 여기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 피에타’의 비장미나 숭고함은

‘모나리자’의 미소가 아니라

바로 이, 동쪽 끝 삼국이 포착해 낸

금동불의 미소와 짝할 것이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어디서나 불현듯 떠오르는 이 미소는

헤묵은 피로와 번뇌를 씻어 준다.


당신이 힘들다면

꼭 힘들여 찾아갈 곳이다.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처럼

이 치열하고

각박하고

희망을 절멸하는 듯한 세상 속에서


목마름을 잊게 해 주고

무거움을 덜어 준다.


번뇌를 여의려는 자

4호선 열차에 올라타서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을 방문해 보시기 바란다.


물론, 당신이 미소를 떠올리고

미소를 짓는 데 이르면

사방이 빛이 쏟아지는 화엄 세상이 될 것이다.


정녕

우리는 날지 못하고

빛이 비추어 날아오를 뿐이다.


웃으라.

기뻐할지니,

온 세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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