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스 형 말고
사람은 시간성의 존재다.
삶은 시간이다.
물리학이 밝히는 시간이 무엇이든
본래 관념상 시간이, 시간성이 삶과 사람을 구성한다.
순신이 형의 예.
그의 물질구성은 빤하다.
그의 사회적 구성도 보나마다.
그를 그이게 하는 것,
‘다름 아닌 그’-이게-하는-것은
역사성이다.
집단이 정리하고 좌표를 부여해
역사성이지 그냥
시간-성이다.
그는 시간과 함께[cum]
시간을 통하여[per]
시간 안에서[in]
그가 되었다.
‘자신’(自身)이란 스스로 돌이켜
자기(自己)가 되는 일 또는
그것-그사람을 가리킨다.
순신이 형 생애
어느 한 점에서 뚝 끊어
그를 평가한다면,
평전(評傳)은 그를 일고(一考, 한 번 생각해 볼)의 가치도 없는 잡배나
흔한 낙오자
좋은 사람이지만 별볼일없는 사람으로
아니면 무자비하고 잔인한 폭군 같은 관리자로
불통(不通)의 대명사로
운이 따랐지만 무모한 자로
결정적인 때 비겁한 자로
유약하게 불의에 굴복한 자로
뭐가 됐든 어떻게든 다르게 적을 수 있다.
그가 그인 것은 출신이나
과정의 성공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날 노량 바다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그가 그인 것은
그의 됨됨이 그 넓은 나래[spectrum]를 조망하고
중심점 찾기가 가능한 거리(距離)
그만큼 시간을 쓰고
거기서 버렸기 때문이다.
쓰고 버림-떠남.
이 맺음이 그를 완성된 인물로 비추어 준다/혹은 완성한다.
(더해서 일기가 그를 보는
안경을 씌워 준다. 다행.)
시간이 그를 만들고
일기가 그를 보는 준거(準據)를 더해 준다.
우리는 변하는 게 아니다.
한순간 빛이 아니라
오래 시간을 들여
‘자기’를 피울 뿐이다.
[그런데 빛도, 바로 곁에서는 빛이 아니라 폭발, 파열, 갈가리 찢는 힘이기도 하고,
거리에 따라 실명하는 빛, 아름다운 빛으로 바뀐다. 그런데 그게 다 그 빛이고
그 빛 아닌 게 아니다. 있는 것은 없지 않다. 그게 다다.
그래서 그것 또한 시공간에 퍼뜨려 퍼짐으로써만 전모를 드러낸다.
다하여서 온전해진다.]
저 씨앗은 꽃이나
아직 꽃이 아니다.
꽃은 시간과 함께
시간을 통해
시간 안에서 꽃이 된다.
할-바를 다-한다.
그러니 살게 할 밖에.
살 수밖에, 살릴 수밖에 없다.
당신도 살고
이웃도 살게 할 것.
심판은 우리 몫이 아니다.
그런 건 신경 꺼도 좋다. 아니,
꼭 그래라.
우리는 살고
살게 하면 된다.
기 죽이지 마라.
좋은 놈 나쁜 놈 가릴 거 없다.
꺽지 마라.
오해는 마라. 꺽지 마랬지 않나.
당신도
당신 앞의 누구와든 맞서라,
겨루어라.
부러지지 마라.
부드럽게 눕더라도
엉키고 풀기를 되풀이하며
그를 믿듯 당신을
당신을 믿듯 그를
믿고 맡겨라, 부대끼어라.
저이는 저이고
당신은 당신이다, 이-된다.
천길 낭떠러지 앞에서 한 발 내딛으라더니
죽겠는데 살겠다.
이런 길도 있구나.
이렇게 사는 것도 좋구나!
캬~
休
*이순신(李舜臣) | 조선 인조 1년(1545.4.28; 음력 윤 3.8.) 서울 출생. 선조 31년(1598.12.16; 음력 11.19.) 현 경남 남해 바다에서 유탄 피격으로 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