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제월 Mar 26. 2024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 이사야예언서 50장 7절 



구약성서의 언어 ‘히브리어’에서 

‘안다’는 말은 ‘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런 어법은 비단 히브리민족에게만 있지 않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안다’ 같은 말에는 

어떤 인지(認知)나 식별(識別), 지식(知識)에 머물지 않고 

경험(經驗)을 포함하는 뜻이 있습니다. 

그 경험은 경험한 후에 오는 것일 수도 있고 

경험하지 않았지만 마치 경험한 것과도 같은 선경험(先經驗)의 차원일 수도 있습니다. 

양상이 어떠하든 

우리는 무언가를 안다는 것, 진짜로 안다는 것은 

실제로 그러-하다는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한다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니, 그러니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은 매우 특별한 경지입니다. 

우리는 언제라도 어떻게라도 

수치를 당할 것을 두려워합니다. 

설령 그 수치가 사실이 아니고, 누군가 지닌 악의(惡意) 또는 누군가 행하는 착각과 아집에 의한 것이라는 걸 알 때에도 

그럴 수 있다는 것과 

다른 이들도 거기 동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 처지를, 곧 수치로 여겨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이사야 예언자가 얼굴을 차돌처럼 만들겠다고 하는 다짐은 

사실 사랑의 다짐입니다. 

그는 단지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을 ‘알지’ 않습니다. 


예언자는 지금 도리어 

자신이 하느님의 도우심을 믿지 못해서 

두려워하고 부끄러운 낯빛을 보임으로써 

하느님을 부끄럽게 할 것을 더욱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하느님을 난처하게 하지 않기 위해 

저가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그는 얼굴을 차돌처럼 바꿉니다. 


예언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자기 사랑이 진짜이기 때문에 

감히 

가장 두려운 것을 행합니다. 

차돌처럼 된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당하는 처지에 던져지는 것을 감내한다는 것이요, 

거기서 부끄럽지 않아한다는 것은 

숨거나 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 ‘알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그는 수치를 행하지 않는 법을 알고 있으며 

그 첫 단추는 

처지 자체가, 상황 자체가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정묘한 깨달음, 

확철한 인식을 단단히 하는 것입니다. 


그의 처지(處地)가 ‘수치’의 자리일지라도 

그의 행위(行爲)가 ‘수치’의 일이 아닐 것. 

이로써 그는 자신의 사랑을 완수합니다. 


그리스도교는 초세기부터 

유대교의 유월절, 파스카절을 부활절로 바꾸어 지내는데 

그 시기는 춘분 뒤에 오는 보름날에 가까운 주일입니다. 

그들이 부활을 확인하는 것은 ‘안식일 다음날 아침’이고 

그들은 안식일이 끝나고 이튿날까지의 밤사이에 부활이 일어났다고 믿습니다. 

오늘날 학자들은 그 시기를 특정하여 잡기도 하며 

대략 양력 4월 6일이 그해 그날입니다. 

그렇지만 전례를 헤아리는 풍습 그대로 여전히 매해 파스카대축일, 

건너감의 밤은 춘분 뒤 첫 보름(양력과 음력의 결합)에 가까운 주일의 시작(자연과 인간적인 리듬의 일치)에 맞추고 있습니다. 


지금이 그 ‘성주간’입니다. 

예수의 이야기가 신화라 여길지라도 

이 신화의 독특함은 모두가 인지할 것입니다. 

짐으로써 이기고, 죽음으로써 사는 방식은 

개인의 운명을 개인에게 가두지 않고 집단 안에 둠으로써 

가장 뛰어난 스승이 가고 난 뒤 

스승의 실패를 이어받은 못난 제자들이 

도리어 거대한 승리를 경험하게끔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사야 예언자를 사로잡고 버티어 준 ‘하느님의 도우심’입니다. 


당신이 사랑-하면 

당신은 그 사랑이 진짜임을, 진짜로 사랑은 무엇임을 

사랑-을-알게 될 것입니다. 



아는 것을 행하고 

행한 것을 아십시오. 


그리스도의 부활로 가는 여정에 

축복하는 마음으로 동행을 청합니다. 




이전 12화 요셉은 누구인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