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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월 Mar 28. 2024

두 개의 의존

— 친구냐 뱀파이어냐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은 축복이거나 저주.

두 갈래 길이 나뉘는 지점에서

식별력을 갖고

결단력을 갖게 하는 것은

정직과 용기.

하지만 둘은 하나다.


늦어도 청소년기에는

이미 아이들은 둘 중 하나를 택해서 행한다.

아무것도 행하지 않으려는 아이들은

중립에 서지 못하여 슬프게도

더 안 좋은 쪽에 서게 마련이다.

선택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선택된다.

중력에 의해 낮은 쪽으로.


우리는 타고난 불완전성과

고유한 경향성으로 말미암아

혼자서 온전하지 못하고

서로를 통해 우뚝 선다.


그러므로 선다는 건 언제나

함께 서는 것이고, 기대 서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의지(依支)함은

의지(意志)를 방해할 수도, 부축할 수도 있다.

방해를 넘어 꺽어 버리기도 한다.

어떻게?


부당(不當)하기 때문에.



언제 부당한가, 곧 어느 경우에 그러한가.

상대를

나와 마찬가지로, 그럼으로써 나와 하나 되면서

그러면서도, 차라리 그러하기 때문에 나를 더욱 내가 되게 하고

상대 또한 더욱 자신이 되는

그런 ‘동등성’을 지닌 존재 즉,

‘친구’로 여기어야 하나(그것이 사실이므로)

그렇지 않을 때.


그렇지 않을 때

겉보기 현상이나 성찰하지 않은 오개념에서 비롯한 인식으로 친구라고 여기든 여기지 않든

그런 것에는 조금도 상관없이

우리는, 나는

뱀파이어다.

상대를 빨아 먹고 있는 것이다.


상대와의 관계를 원한다는 말은 틀렸다, 고치도록 하자.

상대를 내 뜻대로, 내 필요대로 써 먹기 위해서.

사용 가능한 상태로 머물기를 바란다고.


그러나 친구는 다르다.

친구는 내 뜻대로 상대를 조종하거나 지배하기 위해서

그럼으로써 필수적으로 상대를 파괴하고, 자신을 기만하는 일 없이


나는 나이고

너는 너인 채로,

사물화하지 않고

고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놓아둔다.

그런 채로 나는 그러한 동무가 좋다.

좋다는 것은

그럼으로써 내가 좋아진다는 뜻이다.

나는 그것이 좋은 일인 줄을 안다.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제 뜻대로 하거니와

그것이 어울리는 층위는

나만 있는 세상, 너만 있는 세상이 아니라

나하고 남만 있는 세상이 아니라

우리-인 세상이고

우리로서는 그게 괜찮으니까.

언제나 비가 온다는 말과

한 방울도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말은 충돌하고

거짓말이지만

‘언제나 비가 오는 곳도, 한 방울도 비 내리지 않는 곳도

같은 한 곳, 지구’에 있으니까.



공동체는 개인을 살린다.

개인은 공동체에 참여하고

자기를 ‘증여’(贈與)함으로써

내가 여전히 나이지만

우리이기도 한

신비에 동참한다.


우리는 그렇게 신비롭게도 우정을 나누거나

뱀파이어로서 빨아 먹거나 빨아 먹히거나 한

두 갈래 길 중

하나만 걸을 수 있다.

둘은 그냥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실시간으로 움직인다, 생멸(生滅)한다, 있다 없고 없다 있는데

정반대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깜박인다.



발 디딜 때에만 길이 있고

멈추면 무너진다.

한없이 뒤로, 버리고 떠나온 데로 뒷걸음질친다.


그대는 친구이거나

흡혈귀이지

다른 어느 사람에게도

다른 어느 것도 아니다.



아이들이

젊은이가

‘친구’인 줄을, 친구-되기와 친구-하기를 배우는 법은

누군가와 친구 관계를 맺을 때뿐이다.



어떤 최초의 친교(親交)가,

그것이 초월한 신과의 것이든

자기 파괴를 지양하는 자기 초월한 둘 이상의 사귐에 의해

자연 발생한 것이든

그것은 신성하고,

이 신성한 샘은

자연의 일부로서

가장 확고한 정신자연의 일부로서

흘러오고 있다.


공간적으로가 아니라

시간적으로 타로 흐르고 있다.

흘러내린 끝에 고인 자리

이 섬세한 흔들림이

당신이고

나이고,

우리다.



친구가 되어주라.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이미

아이에게, 청년에게

뱀파이어다.

비난과 경멸, 공포와 도망, 투쟁을 부르다 마침내

퇴치 당해도 한 톨도 억울할 것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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