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경계의 아이 - 02

by 아이작 유

“웰컴투~ 오아시스~~~~~!"


성준의 외침은 지나치게 과장됐고, 어딘가 우스꽝스러웠다. 두 팔을 허공에 휘저으며 마치 고대의 사제처럼 입구를 통과하는 의식을 주도하는 그의 모습에 세호는 피식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웃음보다 먼저 다가온 것은 낯선 긴장감이었다. 알 수 없는 설렘, 은근한 두려움이 뒤섞이며 그의 심장은 불규칙하게 요동쳤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곳.


그 문 너머로는 낮게 깔린 음악과 어딘가 도취된 듯한 사람들이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의 몸짓은 부드럽게 떨렸고, 눈빛은 현실의 초점을 벗어난 듯 몽환적이었다. 세호는 그들을 바라보며 마치 꿈과 현실, 정신과 육체의 경계가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 녀석, 벌써 바지에 지린 거 아냐?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하하!”


성준의 농담은 늘 그랬듯 가볍고 장난스러웠지만, 세호의 고동치는 심장은 그 말이 아주 틀린 말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익숙지 않은 공기, 벽에 반사되는 이상한 조명, 그의 발끝까지 전해지는 낯선 에너지. 모든 것이 불편했고 동시에 끌렸다.


그때였다.

입구 쪽에서 한 여성이 다가왔다.

타이트한 검은 정장을 갖춰 입은 그녀는 균형 잡히고 육감적인 몸매와 자신감 있는 걸음으로 두 사람 앞에 섰다. 그녀의 미소는 정확하게 계산된 듯 보였다. 너무 친절해서 오히려 기계적인, 하지만 그것마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표정.


“안녕하세요. 오아시스 안내원 레베카입니다. 성준님 오랜만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는 유리잔에 물을 따르듯 맑고 고요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귀 깊숙한 곳을 간질이는 울림이 함께 스며들었다. 그녀는 세호를 바라보며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 처음 오신 분이시군요. 맞죠?”


세호는 놀란 듯 눈을 깜빡였다. 그 반응에 레베카는 가볍게 웃었다.


“표정에 다 써 있으세요. 호기심과 불안이 반반 섞인 눈빛, 굳은 어깨, 출입구 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발끝. 오아시스를 처음 찾은 분들 대부분이 그래요.”


성준이 옆에서 킥킥 웃음을 터뜨리며 세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봐, 내가 뭐랬어. 티 너무 나. 완전 신입생.”


세호는 머쓱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민망함 속에 묘한 안도감도 따라왔다. 혼자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건 아니구나. 모두가 처음엔 이렇게 들어왔겠지. 레베카는 한 손을 앞으로 내밀며 안쪽 공간을 가리켰다.


“처음이시니 천천히 익숙해지실 수 있도록 제가 특별히 안내해 드릴게요. 오아시스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넓은 세계입니다.”


그 말과 함께, 세호는 마침내 한 발을 그 세계 속으로 내디뎠다. 세호는 레베카의 인도에 따라 복도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바닥은 붉고 검은 무늬가 섞인 벨벳 카펫으로 덮여 있었고, 양옆 벽에는 초현실적인 영상들이 유기적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 어떤 것도 고정되어 있지 않은 듯, 이 공간 자체가 유동적인 욕망으로 구성된 것 같았다. 그때였다.


세호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오른쪽을 향했다. 그곳엔 마치 무대 위를 걷는 듯한 걸음으로 한 남성이 한 룸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의 양 옆에는 수십 명의 여성들이 조용히 뒤따르고 있었다. 정확히는 ‘여성들처럼 보이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인간처럼 생겼지만, 어딘가 조금씩 현실과 어긋나 있었다. 너무 완벽한 피부, 완벽한 균형의 몸, 사람보다 더 정확한 걸음걸이. 세호는 곧 깨달았다. ‘말로만 들었던 AI 봇들이군…’

그들은 모두 고유의 개성과 모습을 갖고 있었지만, 하나같이 한 남성만을 향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누군가는 순종적으로, 누군가는 유혹적으로, 또 누군가는 아무 감정 없는 무표정으로.


남성은 흰 정장을 차려입은 채 느릿하게 걸었다. 세호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어쩐지, 누군지 알 필요도 없는 사람 같았다. 중요한 건 그가 이 공간에서 어떤 ‘권한’을 가진 존재라는 것, 그리고 오아시스가 그 권한을 아주 충실히 구현해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입구에 도달하자, 두 명의 안내원이 문을 조용히 열었다. 내부에선 은은한 보랏빛 조명이 새어 나왔고, 그 순간 AI 봇들은 마치 안무처럼 완벽하게 움직이며 그를 따라 방 안으로 사라졌다.


쿵.

문이 닫혔다.

모든 것이 몇 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세호는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침을 한 번 삼켰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욕망과 현실, 상상과 윤리의 경계가 그 장면 하나로 무너져내리는 느낌이었다.


레베카는 여전히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세호의 옆에 나란히 섰다. 그러다 천천히, 그러나 의도적인 움직임으로 그녀의 몸을 그의 쪽으로 기울였다. 육감적인 곡선이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그 움직임엔 설명할 수 없는 끌림이 담겨 있었다. 마치 그의 마음속 어딘가를 꿰뚫어보기라도 하듯, 레베카는 부드럽게 시선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그 거리, 그 눈빛, 그리고 미묘한 체온의 교차는 말보다 앞서 세호의 감각을 자극했다.


“세호 님, 오아시스는 단순한 유흥 공간이 아닙니다. 이곳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형태의 판타지를, 합법적이고 안전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장소예요. 상상은 죄가 아니고, 억눌러야 할 것도 아니죠. 오아시스는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곳입니다.”


세호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레베카를 바라봤다. 그런 반응은 그녀에겐 낯설지 않은 듯, 오히려 반가운 듯한 미소가 그의 시선을 가볍게 감쌌다.


“당황하지 않으셔도 돼요. 누구나 처음엔 그래요. 오아시스는 결코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건 자발적인 선택이죠.”


그때 성준이 슬쩍 끼어들며 씩 웃었다.


“나도 처음엔 진짜 아무 말도 못 하고 따라만 다녔어. 근데 곧 알게 되지. 여긴, 진짜… 위험할 정도로 끌리는 곳이야.”


“세호야 너 카드 칠 줄 알지? 너만을 위해 미리 레베카에게 말해두었어. 잘했지? 하하. 우리 VIP룸에만 가면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고 카드도 치고 AI 봇 아니 AI 걸들과... 그건 니가 직접 경험해봐!”


레베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복도 너머 유리창 뒤로 보이는 공간을 가리켰다. 은은한 조명이 내려앉은 그곳엔 둥근 테이블 몇 개가 놓여 있었고, 그 위로 칩과 카드가 정갈하게 정리돼 있었다.


“포커 룸입니다. 보기엔 단순한 카드 게임처럼 보이지만, 여긴 조금 특별해요. 테이블에 앉으면 대화가 자연스럽게 시작되고, 카드 한 장 한 장이 유혹의 신호가 되기도 하죠. 룰은 쉽고, 분위기는… 부드럽게 당신을 안으로 끌어들이죠. 기억하세요 오아시스는 판타지가 아니에요.”


포커룸 안은 더없이 화려하고 완벽했다. 세호가 자리에 앉자마자, 세 명의 AI 걸들이 조용히 양옆과 뒤쪽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들은 은은한 향기를 풍기며 세호의 어깨에 손을 얹었고, 부드러운 미소와 낮은 음성으로 그의 신경을 천천히 풀어냈다.


“세호님의 오늘 운세, 아주 좋아 보여요.”

한 명이 속삭이듯 말했다.

이미 테이블엔 두 명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성준은 세호를 이끌며 반갑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오, 얘는 내 친구 세호야. 오늘 처음 왔어.”


그리고 세호에게 말했다.


“저 둘은 내 대학 친구들인데, 오아시스 단골이지. 분위기 좋아. 같이 하자.”


둘 중 한 명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처음이면 운이 따를지도 모르지. 오아시스는 초심자에게 관대하거든.”


게임이 시작됐다. 초반, 세호의 패는 놀라울 만큼 좋았다. 첫 판부터 플러시로 깔끔하게 이겼고, 두 번째 판에선 상대의 트리플을 스트레이트로 이겨냈다.


“이야, 세호. 오늘 들어온 거 맞아?”


성준의 지인 하나가 웃으며 소리쳤다.

그때 AI 여성 하나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만 오는 법이에요.”


세호는 웃었다. 칩은 점점 쌓여갔고, 자기도 모르게 여유로운 손짓이 섞였다.


“이런 건, 영화에서나 보는 줄 알았는데…” 그는 중얼였다.


몇 판이 지나자, 흐름은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의 연속된 승리와 달리, 이번에는 이기고 지는 패가 엇갈렸다. 테이블 위엔 긴장감이 맴돌았고, 칩이 오갈 때마다 상대들의 눈빛은 더욱 예리해졌다. 세호는 패를 바라보며 애써 집중하려 했지만, 어느새 목이 바짝 타들어가고 있었다. ‘괜찮아… 오아시스에 놀러 온 거잖아. 이건 현실처럼 보여도, 결국 허상일 뿐이잖아. 즐기면 돼!’ 그는 스스로를 그렇게 다독였다.

그 때 세호의 오른편에 앉아 있던 AI 걸이 조용히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움직임은 매우 조심스러웠고, 눈빛은 마치 “괜찮다”고 말하는 듯했다. 손끝은 천천히 그의 등을 따라 미끄러지며 가볍게 근육을 누르고 풀었다. 마치 실내 음악의 박자에 맞춰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은근했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세호.” 다른 한 명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들의 손길은 더 이상 기계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감각으로 세호의 심장을 안정시켰다. 이방인처럼 낯설었던 이 공간에 세호는 점점 스며들고 있었고, 그의 감각은 부드럽게 둔화되었다. 숨소리는 가벼워졌고, 웃음은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성준이 술병을 들고 일어섰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좀 즐겨볼까요. 수준을 좀 올려보시죠.”


그는 세 명에게 순서대로 잔을 돌렸고, AI 걸들이 조심스레 따라주었다. 잔은 차가웠고, 향은 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세호는 한 모금에 넘기며 작게 숨을 내쉬었다. 방 안의 분위기, 조명, 음악, 그리고 부드럽게 그의 어깨를 쓰다듬는 AI 걸들의 손길은 마치 그를 계속해서 흥분시켰다. 또한 분위기에 취한 탓일까 세호는 마치 옅은 안개 속에서 판단하는 기분이 들었다. 상대가 말하고 웃는 이유는 잘 알 수 없었고, 카드는 평소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세호에겐 풀 하우스 킹 하이,
상대에겐 풀 하우스 에이스 하이.
그 차이 단 하나. 단 한 장의 카드.


성준의 지인인 상대가 천천히 카드를 펼치며 말했다.

“Close one! 진짜 간발의 차이였군!”


세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지만,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잔은 다시 채워졌고, 판단력은 더 무뎌졌다. 딜러가 조용히 카드를 돌렸다. 세호의 앞에 두 장이 놓이고, 천천히 공개되는 보드 카드들.

K♥, 10♠, 10♣, A♠, 6♠.


세호는 손에 쥔 카드를 바라보았다. K♠, K♦이었다.

‘킹이 두 장... 그리고 보드에도 킹이 하나, 텐이 두 장…’

‘풀 하우스, 킹 풀 텐.’


그는 속으로 속삭이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건 세다. 이번엔 잡을 수 있어.’

성준은 카드를 들여다보다가 가볍게 웃었다.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운이 떨어졌네.”

그는 카드를 접으며, 한 발 물러섰다. 그 옆의 상대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난 패스.”


그 역시 손에 쥔 카드를 조용히 내려놨다. 남은 건 둘. 세호, 그리고 성준의 지인. 마른 체형에 조용한 눈매를 지닌 남자였다. 세호는 잠시 그 눈빛을 바라봤다. 숨소리가 깊어지고, 심장이 둔탁하게 뛰었다. 머릿속엔 ‘이길 수 있다’는 확신과 ‘혹시 또’라는 의심이 동시에 일었다. AI 걸의 손끝은 세호의 손등을 부드럽게 쓸었다.


세호는 마침내 결심했다. 칩을 모두 그러모아 테이블 중앙으로 밀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떨렸지만, 눈빛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올인.”


상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칩을 똑같이 밀었다. 딜러가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카드가 드러났다.


세호에겐 K♠, K♦ 풀 하우스, 킹 풀 텐
상대에겐 A♠, A♦ 풀 하우스, 에이스 풀 텐


조명이 잠시 흔들리는 듯했고, AI 여성들은 조용히 박수를 쳤다. 상대의 패는 명확했다. 에이스 풀 텐. 테이블 위, 모든 칩은 빼앗기듯 쓸려갔다. 세호의 시야는 어지러웠고, 그의 팔은 힘을 잃고 테이블에 기대졌다. 음악은 더 멀게 들렸고, 조명은 희미하게 흔들렸다. 그는 몸을 가누지 못한 채 그대로 테이블에 기대어 쓰러졌다.


눈을 떴을 땐,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조용했다. 따뜻했다. 벽에는 아무런 조명도, 음악도 없었다. 익숙한 침대, 흔들리는 커튼, 스마트폰의 알람 진동. 그는 자신의 방이었다. 마음속 어딘가에는 아직도 조용히 울리는 레베카의 속삭임이 맴돌고 있었다. ‘오아시스는... 판타지가 아니에요.’


“다시 현실이잖아!”

“말그대로 오아시스의 신기루 같군!”

“잠깐 시간이 몇시지?”

“아뿔사 지각이다!”



아이작 유

<경계의 아이> 소설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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