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Architecture & HVAC Engineering
우리가 사는 아파트를 비롯한 모든 건물은 최대한 보기 좋으면서 효율적으로 공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짓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서 건축은 공학이 아닌 예술로 다루기도 합니다. 하지만 플랜트에 건설되는 건물은 한마디로 공간의 효율성에 중점을 둘 뿐 예술과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 보니 콘크리트 건물이든 철 구조물이든 보기 좋은 건물은 별로 없습니다. 오직 '공간'을 제공하는 목적에 충실할 뿐입니다.
건축학 서적에서 소개하는 건축의 어원이나 목적을 보면,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생활을 쾌적하고 안락하게 영위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우리 생활에서 너무도 가깝게 대하는 것이어서, ‘원시시대부터 사람이 머물기도 하며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공간’이라는 등 굳이 역사적인 의미 등을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누구나 건축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효율적인 공간’에 머물던 개념에 ‘아름다움’이라는 요소가 더해지면서 이제는 오히려 예술적인 면이 더 부각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든지 그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건축물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는 그 건축물이 지어진 시대와 관계없이 ‘건축물’ 그 자체가 그 지역의 문화적 혹은 역사적 상징이나 예술적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건축’이 갖는 의미는 상당합니다.
그래서 건축과를 공과대학이 아닌 조형대학 혹은 예술대학 소속으로 개설한 대학교도 있으며, 유명한 건축가들은 예술가로 불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플랜트에서 건축의 의미는 조금 다릅니다.
플랜트에 건설되는 건물은 한마디로 공간의 효율성에 중점을 둘 뿐 예술과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 보니 콘크리트 건물이든 철 구조물이든 보기 좋은 건물은 별로 없습니다. 건물 내에 설치되는 장비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는 장비적 관점에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면, 플랜트에서 건축의 의미는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생활을 쾌적하고 안락하게 영위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라는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의 기본적 개념과는 아직도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건축설계를 담당하는 분들께서 서운해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의미가 그렇다는 것이지 건축설계의 역할이나 업무가 적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건축에 대한 이론은 이 정도로 하고 실제 플랜트 건축설계에서 하는 업무를 살펴보겠습니다.
엔지니어링 단계에서 수행하는 업무를 설명하기 전에 한 가지 알고 넘어갈 것이 있는데, 육상플랜트와 해양플랜트의 차입니다.
육상플랜트에는 직원의 거주(Residential)용 시설, 전기실(Substation)과 제어실(Control Room) 등의 건물이 있기 때문에 건축설계를 담당하는 조직이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구조설계에서 설명한 것처럼, 철 구조물인 해양플랜트는 건물이라는 개념보다는 ‘용도에 맞는 공간’이라는 개념이어서 따로 건물이 없이 일정 부분을 사방으로 막아 공간(Room)으로 사용합니다. 이 또한 구조물의 일부분으로 구조설계에서 담당하기 때문에 해양플랜트에는 건축설계를 담당하는 조직이 없고, 대신, 인테리어 등 실내 업무를 담당하는 선장설계부가 있습니다.
육상플랜트의 건물은 대부분 콘크리트 건물로서 건축에서 담당합니다. 하지만 철 구조물로 짓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때는 구조와 건축 간에 업무가 애매할 수 있기 때문에 기준을 정하는데, 지붕이 있고 사방이 모두 막힌 것은 모두 건물로 분류하여 건축설계에서 담당하며, 이 중에 하나라도 열린 공간이 있으면 구조설계에서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건물을 모듈(Module)화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건물을 현장에서 짓는 것이 아니라 다른 Yard에서 건물을 철 구조물로 지어서 통째로 현장으로 이동, 설치하는 것입니다. 최근 들어 현장에서 걸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구조물을 모듈화(Modularization) 하는 경향이 있는데, 건물도 콘크리트가 아닌 철 구조물로 모듈화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가 수행한 프로젝트에서는, 전기실(Substation)과 제어실(Control Room)이 있는 건물을 한국의 Yard에서 제작하여 UAE까지 이동, 설치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이 방법이 현장에서 짓는 것보다 효율적이거나 비용이 적게 드는지는 면밀히 따져봐야 합니다. 제작 비용뿐 아니라 대형 모듈을 운송하는 데 드는 비용과 기간, 그리고 이를 포함한 전체 일정(Schedule)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품질은 확실히 보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건축은 단지 건물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건물 내부에는 전기설비, 냉난방설비, 위생설비, 화재설비 등 사람의 생활에 필요한 부대설비가 모두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즉, 부대설비까지 포함하면 건축설계는 일종의 종합 설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건축설계에서 이 모든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 설비 모두 전문설비이기 때문에 앞서 설명한 각 설계에서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건축설계는 타 공종과의 협업이 더욱 중요한 팀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 중에서 냉난방과 공기조화 등의 공조설비를 담당하는 공조설계(HVAC, Heating, Ventilation, and Air Conditioning)는 건축과 가장 밀접한 관계이기 때문에 건축설계와의 협업이 타 공종에 비해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건설회사는 대부분 토목, 건축 그리고 공조설계를 하나의 부서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 계산(Calculation)과 해석 (Analysis)
기본적으로 건축설계는 구조설계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건물 또한 구조물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구조설계에서 수행하는 철 구조물과 사방이 막혀있고, 콘크리트를 사용하기에 계산 방식이 약간 다른 정도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기초(Foundation) 설계 또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건물 자체의 기초는 물론 건물 내에 설치되는 장비를 위한 기초도 있기 때문입니다.
2) 도면 (Drawing)
건축설계에서 작성하는 도면은 비교적 간단하며, 구조와 비슷합니다.
플랜트에서 건물의 위치와 형태 등을 나타내는 Overall Layout 도면, 건물 내에 설치되는 각종 장비의 위치를 표기한 Layout 혹은 Location Plan 등이 주요 도면이며, 공조설비를 포함한 각 설비의 상세 도면은 따로 작성합니다.
3) 3D Modeling
건축설계도 3D Model을 활용하지만, 건물 내부에 설치되는 설비의 위치(Location), 타 설비와의 간섭 등을 확인하는 정도입니다. 토목과 마찬가지로, 도면으로 추출하는 경우는 Layout이나 Foundation Plan 등 몇 종류 외에는 3D Model에서 추출할 도면이 많지 않다 보니 상당수 도면은 여전히 AutoCAD를 사용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일반 건축 분야에서는 약 10여 년 전부터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이 늘고 있는데, 설계 단계부터 구조물을 이루는 각종 세부 정보를 입력하여 Modeling 함으로써 설계는 물론 시공과 준공 후 유지관리까지 일괄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매우 효율적이어서 '스마트 건축'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플랜트 분야에서는 아직 BIM을 적용하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만일 적용하려면 이미 정착된 3D Model과의 호환성 혹은 연계성도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4) 전기설비
건물 내부에 필요한 전기설비와 통신설비를 포함합니다.
전기설비로는 동력(Electric Power), 조명(Lighting), 배전(Power Distribution) 등이 있으며, 통신설비는 위성안테나, 전화와 인터넷 등의 통신기기가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번개에 대비하기 위한 피뢰설비(LPS, Lightening Protection System)도 전기설비에 해당합니다.
5) 냉난방 및 공기조화 (HVAC, Heating, Ventilation, and Air Conditioning)
공조설비는 온도, 습도, 기류, 공기 분포, 부유 분진, 악취, 세균, 유해가스 농도 등 실내 환경을 사람의 거주, 물품의 보관과 운전 등에 적합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설비입니다. 모든 건물은 실내 유지 온도 조건에 따른 냉난방 설계와 공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계산이 매우 중요한데, 장비의 성능과 직결되기 때문에 장비를 공급하는 업체의 설계 능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중동지역처럼 일 년 내 무더운 곳에서는 적절한 실내 온도의 유지가 더욱 중요합니다. 만일 냉방설비가 고장이 나면 불과 몇 분 안에 사람이 머물 수 없을 정도로 실내가 더워지는데, 만일 고장 시간이 길어지면 온도에 민감한 설비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실례로, 제가 UAE 현장에 근무할 때 약 2시간 정도 정전(Blackout)되어 냉방설비가 가동을 멈춘 적이 있었는데, 불과 그 시간 동안에 ‘정말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을 정도로 실내 온도가 올라가서 당황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HVAC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었기에, 그때부터 HVAC 엔지니어를 대하는 저의 마음이 달라질 정도였습니다.
6) 급배수 및 위생설비 (Plumbing System)
건물 내에서 필요한 물을 안전하게 공급하고, 사용된 물은 건물 밖으로 배출하기 위한 설비로, 음료용은 물론, 취사용, 목욕용, 세탁용, 세척용, 청소용 사람의 거주에 필요한 물은 물론, 화재 시 사용할 소방용수도 포함하는 필수 설비입니다.
참고로, Pluming은 물의 흐르는 배관이지만 특성상 업무 구분이 다른데, 건물 외부까지만 배관에서 담당하고 내부는 건축에서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7) 소방설비 (Fire Fighting System)
연기와 화재를 감지하는 Detector System, 천정에서 자동으로 물을 뿌려 화재를 진압하기 위한 Sprinkler System 등이 있으며 건물 내에 비치하는 작은 소화기까지 포함합니다.
지금까지 설명하면서 생각해보니 건축 자체가 하나의 작은 EPC라는 생각이 듭니다.
건축설계에서 다루는 자재는 건축자재라고 해서 콘크리트, 시멘트, 철근 등 이 대부분이며, 내부 인테리어용 자재를 제외하면 타 공종에 비해 비교적 단순한 편입니다. 인테리어용 자재는 아주 다양하기에 조금 복잡하지만, 이 역시 그다지 어렵지는 않습니다.
공조설비용 자재로는, 냉난방용 기기(Air Condition), 환기용 Duct, 냉각탑(Cooling Tower) 등 이 주요 자재이며, 이 중에서 냉난방용 기기와 냉각탑 등은 기계에서 공급하는 장비와 마찬가지로 전문제작업체에서 공급하며, Duct 등 나머지는 원자재나 1차 제작품을 구매하여 설치합니다.
자재의 구매업무에 대해서는 이전에 쓴 글(여기)이 있으므로 여기서 다시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 글 혹은 저의 저서 Oil & Gas, EPC Project Engineering Management Guide Book(2018. 부크크)을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
건축설계는 토목과 마찬가지로 시공 업무와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건물도 일종의 토목 공사이기 때문에 시공 방식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건축 엔지니어도 토목 엔지니어와 마찬가지로 초기에 현장으로 파견을 나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다만, 가장 먼저 시공이 마무리되고 시운전 업무도 없기에 철수도 가장 먼저 합니다. 참고로 회사에 따라서는 건축 엔지니어가 파견을 나가지 않고 토목에서 함께 관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공조설비를 담당하는 엔지니어는, 건물이 완공되어 공조설비가 설치되는 시점에 현장에 나가기 때문에 가장 늦게 파견을 가는 편에 속합니다. 한 가지 참고할 것은, 공조설비 업무가 타 공종에 비해 많지 않다 보니 엔지니어도 많지 않은데, 엔지니어 한 명이 두세 개 프로젝트를 동시에 수행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엔지니어도 이 현장 저 현장으로 불려 다니는 경우가 많아 미안할 때가 있습니다.
건축과 공조설비 팀이 현장에서 하는 일은 현장이야기에서 소개한 글이 있으니 여기를 참조하시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건축설계와 공조설비에서 하는 일을 살펴보았습니다.
앞서 잠깐 소개한, 현장 정전(Blackout)으로 인해 고생했던 순간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삭막한 현장에서 조금이나마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건축 그리고 공조설비 엔지니어에게 감사와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대한민국 플랜트 산업의 부흥을 꿈꾸는 자, oksk (박성규)
EPC 프로젝트의 엔지니어링은 하나하나가 대학에서 전공으로 배우고도 오랜 실무 경험을 통해 실력을 쌓아야 하는 전문 분야입니다. 따라서 한 개인이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전문 지식은 독자에게 맡기기로 하고, 이 분야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라도 어느 정도 개념을 잡을 수 있도록, 공종별로 하는 일과 역할에 대해 개략적으로 정리합니다. 이 분야에서 현업을 하는 분께는 아주 기초적인 내용이겠지만, 한편으로 다른 공종의 업무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 글과 함께 읽으면 좋은 글입니다. 엔지니어링 매니지먼트가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