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Site Construction Management
설계(Engineering) - 자재구매(Procurement) - 시공(Construction) - 시운전(Pre-commissioning & Commissioning)
지금까지 EPC 프로젝트의 시공업무 전반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참고로, 여건상 육상플랜트 위주로 알아보았습니다만, 해양플랜트도 크게 차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해양플랜트는 Yard에서 대부분 제작과 검사 그리고 일부 시운전까지 완료한 상태에서 현장으로 운송, 설치하기 때문에 Yard가 곧 현장이라고 생각해도 크게 문제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해양플랜트에서 말하는 현장 업무의 개념은 Hook-up을 의미하기에 육상플랜트보다 훨씬 현장의 비중이 작다는 정도만 알아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Site Construction Management
앞 장에서도 잠시 언급하였지만, 시공은 EPC의 마지막 단계로써(시운전을 제외하고) 가장 큰 비용이 투입되는 곳입니다. 따라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잘하느냐에 따라 프로젝트 수익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이에 시공 업무를 마무리하면서,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시공 기간에 프로젝트의 수익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몇 가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현장 관리(Construction Management)의 주요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미리 대비한다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설계조직(Field Engineering Team)
현장 인건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현장 설계 인원을 최소한으로만 유지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또한 시공의 지원 조직으로만 인식하고 시도 때도 없이 불러다 시공 지원 업무를 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인사 평가 시에는 고과를 챙겨주기는커녕 오히려 현장 인원에 밀려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완전 찬밥 신세입니다. 그렇다 보니 설계 인원들이 현장에 나가는 것을 기피하는 현상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회가 점점 '워라벨'과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회로 변화하는데, 중동이나 아프리카 오지까지 와서 고생하면서 보상은커녕 불이익을 받는다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설계는 프로젝트의 내용을 가장 잘 아는 조직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대책을 만드는 곳이 엔지니어링팀입니다. 이들이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그 첫 번째가 '적정한 인원'입니다. 문제가 생겼으나 엔지니어 부족으로 신속히 조치하지 못했을 때 생기는 추가 비용과 일정 지연을 생각해보면 답은 아주 간단할 것입니다. 오랜 현장 경험을 통해 모두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의외로 고쳐지지 않는 부분입니다.
현장 문제점 전담 조직 운영 또는 공무팀 보강
현장에서는 수시로 문제가 발생합니다. 문제는 크게 설계 오작, 자재 품질 그리고 시공 오작 등입니다.
설계나 시공 오작의 경우 설계 엔지니어가 처리할 수 있지만 자재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업체(Vendor)에서 납품한 주요 장비가 도면과 다르게 제작되었거나 성능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때 대부분 설계 엔지니어에게만 해결토록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설계 엔지니어는 설계 문제가 아니면 자신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를뿐더러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해결은 되지 않고 지지부진하다가 결국 돈도 잃고 시간도 잃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돈이 줄줄 새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제 경험상 문제점 처리만 전담하는 인력과 조직이 필요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먼저 원인을 파악해서 설계와 Vendor에 통보하여 각자 할 일을 조치토록 하고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하면서 관리해야 합니다. 공무에 프로젝트 엔지니어(PE) 그룹이 있다면 이들이 담당하면 제일 좋습니다. 문제 해결 지연으로 인해 새는 돈에 비하면 한두 명의 인건비는 큰 비용이 아닙니다.
Change Order 전담 조직
또한, Change Order(C/O)를 전담하는 인력과 조직도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C/O 전담 인력은 다른 일과 겸하지 않고 오직 C/O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무나 문제점 조직 안에 넣어두고 함께 관리하도록 하면 안 됩니다. C/O는 발주처와 하청업체 모두 해당하며, 애초부터 예산에 없는 돈이기 때문에 C/O를 발주처로부터 받든 반대로 업체에 주든, 모두 수익과 곧바로 연결되는 중요한 사항입니다. 따라서 수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협상이 이루어져야 하기에 회사의 집중과 전략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초기부터 제대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무조건 손해입니다. 우리나라 EPC 업체들의 가장 약한 부분 중의 하나로 이 역시 대부분 필요성을 공감하면서도 잘 안되는 부분입니다.
삼국인 엔지니어 (Global Step or International Employee)
삼국인 엔지니어는 일종의 Staff 조직으로 한국인 매이저를 도와 현장 업무를 관리, 지원하는 외국인 엔지니어들을 통칭하는 말로, 이들이 효과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인도나 필리핀 국적의 엔지니어들로 비교적 저렴한 인건비로 들어와 있지만, 대부분 오랜 현장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영어로 무장되어 있어 발주처와 작업자 간 소통에 원활하기에 한국인 관리자와 발주처 그리고 현장 작업자 사이에서 온갖 일을 다 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실무는 이들이 다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현장에서 필요한 인력입니다. 또한 이들 중 일부는 우리 엔지니어 못지않게 기술력을 보유한 자들도 있어 도면 작성이나 문제점 협의 시 상당한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많이 있는데, 주로 한국인 관리자들이 제대로 일을 안 하거나 영어가 부족해서 대화가 잘 안 되는 등 관리자에게 문제가 있다 싶으면 일부러 일을 지연시키거나 문제를 만드는 등 악용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이들에게는 공사 일정보다 자신의 수입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 업무 결과에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이들을 부하가 아닌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동료로 대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럴 때 그들 또한 자부심을 품고 최선을 다합니다. 이들을 험하게 대하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이런 관리자와 일하는 삼국인들이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현장 관리
현장에서 관리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중에서 가장 약한(?) 부분 두 가지만 보겠습니다.
먼저 현장 작업 중 오작으로 인한 이중 작업을 막아야 합니다.
오작은 대부분 도면을 보지 않고 작업함으로써 발생합니다. (물론 도면이 잘못된 것은 설계 오작이므로 이와는 다릅니다). 현장에 있다 보면 이해가 잘 안 되는 것 중의 하나가 도면을 보지 않고 시공하는 경우입니다. 대부분 시공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자신의 경험만으로 시공하면서 생기는 것으로, 생각보다 많이 발생합니다.
결국 재시공을 할 것인지 아니면 도면을 바꿀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도면을 바꾸기가 쉽다고 생각해서 설계에 도면 변경을 요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도면 변경이 가능한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성능에 문제가 있는 경우 등 발주처에서 동의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재시공해야만 합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비용이 두세 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반드시 도면을 확인 후 도면대로 시공하도록 강조해야 합니다. 경험이 큰 장점이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의존하면 많은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또한, 소통 부족입니다.
부식방지를 위해 Nitrogen Gas로 채워져 있는 압력용기나 배관을 임의로 열고 작업을 하거나 작업 후에도 조치 없이 방치하여 온통 녹슬도록 만드는 경우. 중요한 계측기기를 임의로 해체해서 아무 데나 방치하거나 혹은 쌓여있는 볼트와 너트를 마음대로 가져다 쓰는 것. 깔끔하게 페인트칠을 한 후에 발자국을 선명하게 남기는 일. Insulation을 밟아 찌그려 놓은 일. 바쁘다고 일의 선후를 바꾸는 일. 이 모든 일이 서로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생기는 일입니다. 물론 아침 회의(TBM, Tool Box Meeting) 때 마다 입이 닳도록 주의를 주지만 여전히 반복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초기에 규정(절차서)을 만들어 엄격하게 적용해서 몸에 익숙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한편으로, 각 공구의 책임자(공구장) 간 소통 부재도 큰 몫을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책임자들의 소통이 부족하면서 하부 엔지니어나 작업자간 원활한 소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사실 소통 부재는 어느 조직이나 골치 아픈 문제이기도 합니다만...
하청 업체 (Sub-Contractor) 관리
현장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생산성 유지입니다. 플랜트 현장은 대부분 중동이나 아프리카처럼 더운 나라나 북해 등 추운 지방 혹은 바다 한가운데로 매우 열악한 환경이다 보니 자연히 업무 효율이 많이 떨어집니다. 또한, 실제로 현장 일은 대부분 하청 업체에서 수행하는데, 대부분 작업자를 인도나 파키스탄, 필리핀, 네팔 등 인건비가 저렴한 국가에서 조달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숙련도나 업무 집중도는 애초 기대하는 것과는 많이 다른 것이 현실입니다. 실제 현장에 가보면 그늘에 앉아 있는 인원이 수두룩합니다. 적은 관리 인원으로 이들을 통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니 업체 관리자들을 불러 경고하거나 때로는 어르고 달래 보지만 언성만 높아질 뿐 효과가 별로 없습니다. 한편으로 인센티브 제도나 포상제도 등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려고 노력하지만, 이 역시 반짝 효과일 뿐입니다.
또한 수시로 쏟아지는 협력업체의 추가 비용(Change Order) 요구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도면이나 자재 등을 조금만 늦게 제공하거나 일부 수정 사항이 생기면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즉각 비용을 청구합니다. 심지어 변호사를 두고 이 일을 전담토록 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예산 대비 상당히 많은 금액을 추가 비용으로 투입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현장 일을 하다 보면 제공이 지연되거나 수정이 불가피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지만,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미리 대처해야만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습니다.
보고(Reporting)
보통 현장에서는 일간(Daily Report)으로 보고합니다. 그런데 계획보다 지연되면 조금씩 보고를 게을리하거나 고의로 빠뜨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질책이나 문책이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재빨리 만회하려고 하지만 한번 지연된 공기는 쉽게 만회되지 않기에 어느 순간부터 지연이 눈덩이처럼 커지기 시작합니다. 더 숨기기 어려우면 어쩔 수 없이 문제점 보고서와 함께 Open 하지만 이미 늦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추가 비용이나 공기 지연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연되거나 문제가 있는 것을 그대로 보고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현장 보고서는 반드시 있는 그대로 정확하고 철저하게 매일 보고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올바른 판단과 대처를 할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 수행자 또한 자신이 매일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현장관리자의 역할
마지막으로 매니지먼트의 중요성입니다.
현장 조직과 업무는 어느 EPC 업체, 어느 현장이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EPC 업체들이 대부분 시공을 바탕으로 성장하면서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하는가입니다. 시공은 시공대로, 설계는 설계대로 Staff는 Staff대로 자기 일을 제대로 처리하는 것이 최선일 것입니다. 이렇게 각자 자신의 조직이 맡은 일에 최대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장 관리자의 역할이며, 나아가 각 조직의 성과를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현장을 경영하는 것이 바로 현장 최고 책임자(소장이든 PM이든)의 역할일 것입니다. 현장의 성과는 최고 책임자의 경영 마인드에 달려있음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시공이 마지막 보루'라며 현장을 독려하던 시절이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시공 업무가 대부분 외주화되면서 이제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지만...
대한민국 플랜트 산업의 부흥을 꿈꾸는 자, oksk (박성규)
(이 글은 블로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현장을 경험한 엔지니어와 그렇지 않은 엔지니어의 역량은 많은 차이를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엔지니어가 현장을 경험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에 사진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도록 저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이 글을 씁니다. 조금이나마 업무에 도움이 된다면 큰 기쁨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