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 나는진로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무속인이 부러웠다.그럴 정도로 불안함이 싫었던 나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기보다는 뭐라도 되어야겠다는 안정감을 더 원했다. 그래서 당시 무작정 멋있어 보이는방송작가가 나의 장래희망이 되었다.
'방송작가가 되겠다.'라는 그 다짐이 주는 안정감이 좋았다. 그 일의 노동강도가 심심치 않게 언급되는 시절에도 나는 그 안정감이 좋아 다른 진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나는 그 시간들이 열정인 줄만 알았다.
그 열정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아직도 막내작가 시절, 늦은 저녁을 사러텅 빈 여의대로를걸으면서도 벅차오르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니까. 16시간을 의자에 앉아있어도, 땅바닥에서 노트북을 켜 업무를 처리해도나는 행복했다. 내가 속한 곳이 있다는 것, 할 일이 있다는 안정감이 더 좋았으니까.
나의 뿌듯함은 사소했다. 방송이 끝나고 잽싸게 지나가는 내 이름 하나에 나는 그래도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듯, 그 뿌듯함은 정말 별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고 현실을 알기 시작하자 TV 아래로 몇 초 지나가는 이름의 뿌듯함은 나의 불안함을 달래주지 못했다.
첫 프로그램에서는 하루의3분의 2를 일로 보냈다. 휴일은 일주일 중 하루였다. 다음 프로그램에서는 일주일에 반나절, 일요일 오전만 쉬고 매일 적어도 12시간, 많으면 밤새는 일도 허다했다.그렇게 막내작가를 거치고 서브작가가 되니100일을 넘게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해야만 했다. 녹화 준비할 때는 2박 3일로 일을 하고 회식까지 가야 했다.
촬영이라는 명목으로 피해를 주는 것도 고역이었다. 닥치는 대로 필요한 업체 리스트업을 하고 촬영이 가능한지, 촬영날 손님을 받지 않을 수 있는지 등의 피해가 되는 요구를 홍보라는 명목으로 아무런 금전적 보상도 없이 자영업자들에게 요구하기가 나는 참 뻔뻔하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그런 업체를 몇 군데를 리스트업해 위 작가에게 올린 후 한 업체가 선정되면 선택되지 않은 업체에 취소전화를 돌리는 것 또한 내 몫이었다. 촬영을 위해 공간과 시간을 다 빼놨던 사장님들에게 취소 소식을 전하는 것도, 정말 하기 싫은 일이었다.
필요한 물건을 받기 위해 업체에 전화해 협찬이라는 명목으로 물건을 공짜로 요구하기도 했었고, 자동차 프로그램에서 그저 차 5대가 한 번에 달려오는 장면을 찍고 싶다는 작가의 말에 전국에 수소문해 도로를 섭외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일은 역시 선임의 비위를 맞추는 일이었다.선배가 일을 못했다고 너는 뭐 했냐며 혼나기,서브 작가가 준비한 일이 꼬여 같이 해결하려 했지만 괜히 소란 피우지 말고 앉아있으란 말에 앉아있다가 감히 선배가 엉덩이 떼고 앉아있는데 막내가 엉덩일 붙이고 앉아있냐며 메인 작가한테 몇 달 동안 혼나기 등등.
다른 말이지만 요즘 방송국들이 돈이 없어 구조조정을 하느니, 방송국 갑질로 논란이 되는 일 등은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제야 이슈 되는 게 너무 늦었다고도 생각한다. 뭐 그리 큰일 한다고 다른 자영업자, 판매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지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서 난 지금도, 나의 열정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곳에 쓰인 것이 마음이 쓰인다.
아니 어쩌면 나 자신보다 열정이 먼저여서, 열정이 타들어가고 난 자리가 아파 내가 이리 쪼그라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젠 열정이란 이름으로 나를 학대한 행동이 트라우마가 되어버렸고, 더 이상 열정을 갖는 것도 무서워져 버린 무기력한 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새로운 직업을 찾은 지 이제 6년 차다. 이젠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지 않아도 월급이 끊기지 않는다. 윗사람의 괴롭힘이 있다면 신고를 할 수 있는 체계도 있다.
하지만 열정만으로 달려들었던 이십 대 초반의 나로 인해, 삼십 대 초반의 나는 모험을 싫어하게 되었다.진급을 하면 번아웃이 올까 봐, 결국엔 안전한 직장을 그만둘까 현재에 안주하게 되었다.
한 달 동안의 유럽여행을 혼자 다녀왔던 나는 국내 여행도 버거워하는 집순이가 되었으며 윗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하루종일 속을 태워 한숨으로 답답한 연기를 내뱉는 것이 버릇인 내가 되었다.
언젠가 한 번은 눈치로 힘겨워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실수를 하는 나에게 상사는 이렇게 말했다.
몇 번 실수했다고 아무도 너를 일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 말이 너무 새로웠다. 당연히 내가 일을 잘하고 있다는 의미의 말에 나는 내가 일을 잘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무모했던 열정은 결국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었고 남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나의 능력을 믿지 않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제 하고 싶은 게 없다. 뭘 하면 재미가 있는지, 행복한지 알 수가 없다. 열정이 무서워진 나는 희망을 꿈꿀 수 없게 되었다.
인생의 삼단계는 열정기, 권태기, 성숙기 라던데
넘쳐났던 열정을 너무 많이 태워서 내 안에 아무것도 없어진 걸까? 희망이 생겨도 그 역시 부질없는 것이겠지 라는 생각에 요즘은 왜 살아가는지조차 이유를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