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주 뒤를 돌아보곤 했다.돌아본 시선엔 그동안의 노력이 담긴지평선이 보여도 무리가 없겠지만, 꼭 방금 파인 웅덩이만 보인다.그 웅덩이에 빠져 나는 생각한다. '내가 잘못 살아온 것은 아닐까? 혹은 잘못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이런 근본적이고 실체 없는 걱정에 사로잡힐 때면, 불안감과 막막함이 몰려와 내 모든 이성을 덮친다.이런 상황은 내가 아닌 남에게 집중을 할 때 더 강력하게 몰려온다.
나는 오랜 시간 남의 시선이 정답인양살아왔다. 남들이 하는 것이 다 옳고, 나의 행동과 생각은 완전하지 않기에 남을 따라가며 살아왔다. 더군다나 그 수많은 남들 중좋아하는 누군가가 특정되면, 그 사람을 우상화하기도 한다. 그렇게 그를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나는초라해진다.
도대체 '나는 왜 지금 이런 모습을 하고 있으며, 왜 이렇게 살아가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아마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아무것도 모른 채로 살아가서가 아닐까,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일 외의 것으로 성취감을 느껴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경험이라도 있었을까? 그렇게 일에 매몰된 일상을 살기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언인지도 몰랐고, 내가 하기 싫은 일로 일상을 채우는 하루하루가 지속되었다. 그렇게 무의미한 일상을 보내다 보면 이 굳어진 패턴과 감정이평생 갈 것만 같다. 하루하루, 아무런 설렘 없이, 지옥 같은 출근길로 나아가는 터덜거리는 걸음걸이같이, 내 인생도 평생 그 터덜거림으로 걸어갈 것만 같다.
그러던 중 나에게 가장 큰 흥미가나타났다. 나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 그렇게 갑자기 시작된 연애였다. 우울과 방황이 기저에 깔린 상황에서의 연애는 흐릿했던 나의 문제의 안개를 걷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내 인생에 재미를 준 그 사람을 우상화하기 시작했다. 연락 하나에 들뜨고행복해하며 하루 종일 연락만 기다렸다.
왜 연락이 없지?
짧은 행복 뒤, 집착이 따라왔다. 그 뒤는 상대방의 일상을 그려보며 왜 나에게 연락을 안 하는지 추리해 나간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남의 일상 때문에 나의 일상을 망가트리는 계기였다.
원하던 통제가 되지 않으면 그렇게 바라던 연락이 와도 기쁘지가 않다. 도대체 뭘 하길래 나를 불안하게 하는지, 도대체 뭐가 그렇게 나보다 중요한지, 전과 같았던 즐거운 연락은 없었다.기다림에애가 타고,애타는마음을 몰라준 상대방의 태도가 서운함을 너머 괘씸하기까지 한다.
반면그 사람이 연락을 하는 시간이 내가 연락받기 힘든 시간이라 할지라도 나는 거절하지 못했다. 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언제나 나는 너를 위하고 있다고 보여주고 싶어서. 나의 생계와 건강이 관련된 시간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그 사람과의 연락이 먼저였다. 그 사람이 연락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일거리를 미뤄놓고 잠을 포기했다. 그리고 이 행동의 끝은 보상심리였다.
내가 너 때문에 이런 것까지 희생했는데, 너는 왜 나를 위하지 않아?
나 홀로 상대방은 알 수 없는 기대를 하고 실망을 한다. 하지만 이 사람과의 관계를 끊고 싶지 않아 재미없고 짜증이 깔린 관계가 지속된다.
이 정도가 되면 내가 좋다며 다가왔던 사람도 부담스럽다고 내빼는 게 대다수다. 그러면 나는 억울하고 공허해지고 외로워진다. 그리고 관계가 끝이 난다. 대부분 상대방 쪽의 거절이다. 그리고 나는 내 일상은망가진다.
앞으로 설렘과 행복은 없을 것만 같고 이 아픔은 영원할 것 같다. 언제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나 싶고 그 사람도 나를 떠나갈 텐데 뭐 하러 만나나싶다.
그 우울 속에 몸을 담그고 있다 보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이렇게 재미없고 힘들기만 한 인생을 왜 굳이 살아야 할까 라는 생각은 필연적으로따라오게 된다.
그래도 누적된 거절 경험 끝에 나는 알게 됐다. 그래도 재밌는 일은 일어나고 상대방의 거절이 나를 망칠 순 없다는 걸. 넘어지고 울어가며 살아가더라도 나의 인생이고 얼룩지더라도 아름다운 무늬가 새겨진 천이 될 인생이라는 것을. 결국은 나와 살아가야 한다는 걸.
그래서 이제는 너무나도 오랫동안 미뤄놨던 과제를 하려 한다. 나를 이제야 알아가고 친해져보려 한다. 모자란 모습에 실망할 수도 있고, 잘못된 선택의 결과를 뼈저리게 인정해야겠지만, 그래도 영원히 떠나지 않을, 항상 나를 챙겨주고 가장 나를 잘 알아줄 나와 설레는 인생을 살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