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랑랑 Sep 18. 2023

30년만에 마주한 과제

나와 연애하기


때가 왔다. 이제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인정해야 했다.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 문제는 외모를 가꾼다고 해서 이겨낼 수도 없고, 성심을 다해 누군가를 위한 대도 해결할 수 없다.


나는 남을 우상화하고 나를 비난한다. 누군가가 좋아지면 상대적으로 내가 초라해진다.

초라한 나는 위대한 상대의 연락을 끊임없이 기다린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유를 찾아보자면 나는 성취감을 느낀 지 참 오래되었다. 하고 싶은 게 없다. 업무적으로 나아가고 싶지도 않 부업으로 뭐가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평생 이러고 살 것만 같다. 하루하루, 아무런 설렘 없이, 지옥 같은 출근길로 나아가는 터덜거리는 걸음걸이같이, 내 인생도 평생 그 터덜거림으로 걸어갈 것만 같다.


그러던 중 나에게 가장 큰 흥미가 나타났다. 나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 그 사람이 주는 설렘. 아마 나는 그때 생각했었다.


이게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던 행복이구나.


나는 설렘을 준 그 사람을 우상화하기 시작한다. 연락 하나에 들뜨고 행복하하며 하루 종일 연락만 기다린다.

하지만 그 짧은 설렘도 잠시, 슬슬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한다.


"왜 연락이 없지?"


집착의 시작이다. 저 생각 다음은 상대방의 일상을 그려보며 왜 나에게 연락을 안 하는지 추리해 나간다. 


지금쯤 퇴근했을 텐데, 친구들을 만나도 화장실은 갈 텐데, 일하는 중에 짬이라도 날 텐데... 왜 연락이 없지?


그런 생각이 지속되면 그렇게 바라던 연락이 와도 기쁘지가 않다. 도대체 뭘 하길래 연락도 안 해서 나를 불안하게 하는지, 도대체 뭐가 그렇게 나보다 중요한지...  전과 같았던 즐거운 연락은 이제 없다.  애가 타고,  음을 몰라준 상대방의 태도가 서운함을 너머 씸하기까지 하다.


반대로 그 사람이 연락을 주는 시간이 내가 연락을 받기 어려운 시간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거절하지 못한다. 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언제나 나는 너를 위하고 있다고 보여주고 싶어서. 나의 생계와 건강이 관련된 시간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그 사람에게 그 시간을 할애한다. 그 사람이 연락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일거리를 미뤄놓고 잠을 포기한다. 그리고 이 행동은 바로 악영향으로 돌아온다.


내가 너 때문에 이런 것까지 희생했는데...
너는 왜 나를 위하지 않아?


나 홀로 상대방은 알 수 없는 기대를 하고 실망을 한다. 하지만 이 사람과의 관계를 끊고 싶지 않아 재미없고 짜증이 깔린 관계가 지속된다.


이 정도가 되면 내가 좋다며 다가왔던 사람도 부담스럽다고 내빼는 게 대다수다. 그러면 나는 억울하고 공허해지고 외로워진다.


그러다 관계가 끝이 난다. 대부분 상대방 쪽의 거절이다. 그리고 나는 내 일상을 넘어 삶까지 망가진다.


앞으로 설렘과 행복은 없을 것만 같고 이 아픔은 영원할 것 같다. 언제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나 싶고 그 사람도 나를 떠나갈 텐데 뭐 하러 만나나 싶다.


그 우울 속에 계속 있다 보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이렇게 재미없고 힘들기만 한 인생을 왜 굳이 살아야 할까 라는 생각은 필연적으로 나게 된다.


그래도 누적된 거절 경험 끝에 나는 알게 됐다. 그래도 재밌는 일은 일어나고 상대방의 거절이 나를 망칠 순 없다는 걸. 넘어지고 울어가며 살아가더라도 나의 인생이고 얼룩지더라도 아름다운 무늬가 새겨진 천이 될 인생이라는 걸.


그래서 이제는 너무나도 오랫동안 미뤄놨던 과제를 하려 한다. 모자란 모습에 실망할 수도 있고, 잘못된 선택의 결과를 뼈저리게 인정해야겠지만, 그래도 영원히 떠나지 않을, 항상 나를 챙겨주고 가장 나를 잘 알아줄 나와 설레는 인생을 살아보려고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