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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랑 Oct 17. 2023

타인의 개입, 불행의 시작

남의 눈치를 보느라 나를 챙기지 못하던 시간

오늘 트레이너에게 말했다. 더 이상 다이어트를 하지 않겠다고. 트레이너가 만드는 불만족스럽다는 공기는 길지 않았다. 길게 쳐줘야 1~2분. 그 순간이 무서워 나는 원하지도 않은 다이어트를 꾸역꾸역 하고 있었다.


다이어트의 시작은, 연애가 끝나고 갈 곳이 필요해 찾은 헬스장이었다. 처음엔 다이어트를 할 생각조차 없었다. 무료로 해주는 짧은 PT를 받고 엄마가 같이 PT 등록을 하자는 꼬드김에 넘어갔을 뿐이었다. 1회 7만 원. 10회의 70만 원. 그 돈이 아까워 다이어트라도 해보라는 트레이너의 권유에 시작한 여정이었다. 현재는 결국 40회까지 결제해 거의 300만 원 하는 돈을 투자한 셈이다.


그 돈이 아깝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다이어트는 확실히 만족스러웠다. 내가 보는 내 모습이 더 만족스러웠고 입고 싶은 옷도 마음껏 입었다. 사진을 찍어도 잘 나왔고 어디 가서 못생겼단 얘기를 듣지 않는 이목구비가 더 빛을 찾았다.


그래서 나는 현재 너무나도 만족스럽다. 오히려 여기서 더 살을 빼면 얼굴뼈가 도드라져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트레이너는 말했다.


왜 PT를 받는데도 살이 안 빠져요?


내 몸이 만족스럽다는 나의 말에도 트레이너는 '안 빼봐서 그렇다, 빼면 더 예뻐질 건데 왜 욕심을 안 갖냐' 라며 나의 자존감을 때리는 말을 한가득 내뱉었다.


거의 5개월이 되는 시간 동안 다이어트를 했다. 나의 의지가 확고하지 않았기에 다이어트는 순탄하지 않았고, 트레이너는 잠시 2주간 식단을 멈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살이 가장 많이 빠졌다.


자발적으로 한다는 것은 나를 위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건강하기 위해 운동을 하고 내가 건강하기 위해 건강식을 먹었다.


하지만 트레이너에게 식단을 보내고, 닭가슴살만 먹었다는 이유로 잔소리를 듣고 약속을 잡았다는 이유로 혼이 나면서 나는 반발심이 들었다.


그럴 때면 나는 트레이너가 시키는 일을 더 하기 싫었다. 돈을 내고 스스를 받으며 보상심리로 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기만 했다. 또한 약속이라도 잡히는 날엔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먹으면서도 죄책감으로 날 괴롭히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연애할 때도 똑같았다. 딱히 인생의 목표가 결혼이 아니었기에 보험과 연금펀드에 돈을 나눠놓은 나에게, 우리가 결혼을 하고 집을 얻으려면 돈이 이만큼은 필요한데 계획이 있냐고 묻는 상대방의 말에 나의 죄책감은 시작되었다.


내 미래를 위해 넣었던 보험금이 아까워지기 시작했고 뺄 수 없는 연금펀드에 돈을 넣은 내가 바보 같았다. 때문에 해지할 수 있는 보험은 해지하고 목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도 몰랐던 나의 이상행동이 시작됐다. 원래부터 씀씀이가 크지 않았던 내가 더 돈을 쓰지 않는 것에 집착했고, 나는 이번 달에 이만큼은 썼는데 너는 얼마나 썼냐고 묻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소비금액을 듣고 나는 너의 말을 듣고 이렇게 아끼기 시작했는데 너는 왜 노력을 하지 않는지, 다른 만남을 없애고 나와의 시간에만 돈을 써야 한다며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그 트집의 범위는 넓어지고 집요해졌다. 나중엔 나는 너를 위해 내 인생의 목표도 바꾸고 생활도 바꿨는데 넌 왜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지, 왜 회사 동료와 자주 술을 마시고 나에게 말하지도 않고 여자와 단 둘이 술을 마셨는지  파고들고 닦달했다.




이제야 깨닫는 것은, 내 인생에 타인이 끼어들면 난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줏대와 신념 없이, 그저 지금 행복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살아왔지만, 행복하지 않았던 시간들이 많았기에 나를 믿지 못했다. 때문에 내 인생에 훈수를 두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만, 그 행동은 내가 원하지 않았기에 난 서서히 불행해져 간다.


그리고 남에게 휘둘리며 모든 게 탈탈 털려 불행해지고서야 깨닫는다. 불행해도 내 의지는 가지고 불행한 것이 덜 공허하다는 것을.

 

남의 말을 듣고 불행해지면 남 탓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남은 혼자 잘 먹고 잘 살기에 그 사람의 불행을 바라는 못된 마음까지 생기게 된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했다가 후회로 불행해지는 건, 그래도 나와 같이 이겨낼 수 있지 않은가. 그래도 불행해지는 과정에서 나는 행복했을 수도 있고, 어차피 평생 나랑 살 거 길게 보고 이겨내면 되니까.


젠  내 인생에 타인을 끼워주지 말자. 이제는 내 말을 제일 먼저 들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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