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랑랑 Sep 27. 2023

맞아, 난 이렇게 강한 사람이었는데 말이야.

외로움을 자유로 되돌리기까지


 나의 직장은 카페이다. 관리자 직급이다 보니 음료를 만들고 고객을 응대하는 일 외에도 매장의 전반적인 환경을 관리하는 것도 나의 일이다. 전국에 많은 매장이 있기에 고객이 어느 매장을 방문해도 그 브랜 기대치만족시키는 것에 포함된 일이다.


 지만 불행하게도 우리 매장 안에는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에서 어떤 심각한 일이 터졌을 때도 해결해야 하는 것 또한 관리자인 나의 몫이다.




 정말 바쁜 한 주였다. 축제와 추석을 대비해야 하는 주였다. 예상했던 일만으로도 시간을 쪼개고 뛰어다니면서 일해야 했다. 


 하지만 예상 밖의 일에 터졌다. 화장실이 막혀버렸다. 누군가가 싸놓은 유기물과 그 잔해를 당황한 상태에서 처리하기 위해 휴지까지 넣어 속수무책으로 막혀버렸다. 하지만 이미 바빴던 나는, 우선 다른 화장실 사용을 유도했고 화장실 처리는 나중이었다. 그리고 그 미룸이 아주 큰 화를 불렀다.


 일을 다 끝내고 확인했을 때는 변기에 물이 바닥에 흘러 화장실을 뒤덮고 고객 이용 공간까지 나오기 직전이었다. 이 상황으로도 나는 착잡했지만, 나는 또 다른 악몽 같은 순간이 떠올랐다.




 연애의 막바지였다. 전애인은 나에게 2주간 시간을 갖자고 통보했다. 


 경험해 본 결과, 연인 사이에서 가장 비열하고 이기적인 말은 '시간을 갖자' 일 것이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상을 공유하던 이의 부재, 그럼에도 2주 뒤엔 이 상실감을 없앨 수 있다는 미약한 희망, 그리고 한 사람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모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처절함. 그 사이에 잠식되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상생활이라고는 출근밖에 었다.


 잠도 못 자고, 식사도 하지 못한 채 상실감과 혹시 모르는 간절함 사이에서 버둥대며 도착한 매장, 그날도 화장실이 저렇게 터져있었다. 이유도 같았다. 변기에는 유기물과 화장지가, 바닥에는 그 변기에서 터져 나온 물들이 찰랑이고 있었다.


  상황은 나의 잘못이 아니고 그저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이었지만, 그때 나는 좌절감을 느꼈다. 전애인이 나한테 시간을 갖자고 한 것과 화장실이 막힌 것은 별개의 일임에도 나는, 내 인생이 잘못되었다며 좌절감을 느꼈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변기물을 휴지로 흡수시켜 가며 서러워 울었고, 신이 있다면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해서 이런 시련을 주는지 묻고 싶을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 터무니없고 쪽팔린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일어난 같은 상황에서 나는 아주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한 번 겪었던 일이었기에 대걸레는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흡수가 가장 잘되는 티슈를 뭉텅이로 가져와 물을 닦고, 오염물을 다룰 때 사용하는 가운과 보호 장구를 착용했다. 눈을 꽉 감고 변기를 뚫고 뒷정리까지 청결하게 마무리했다. 물론 예상 밖에 일어난 고된 일에 바로 옆에서 진행되는 지역축제에서 생맥주 한 잔을 마시고 집에 갔지만, 모든 일을 해내고 난 뒤의 감정은 분명 뿌듯함이었다.


 문득 그 상황이 신기해졌다. 분명 같은 상황이었지만 전에는 좌절감에 울었고 지금은 뿌듯함에 개운한 숨을 내쉬었다.  번 모두 내가 문제를 해결해 냈다는 것도 같은데 말이다.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사진은 너무 만족스러웠다. 갑자기 생긴 휴무에 동네에서 찍은 사진이 이렇게 마음에 들 수가 있을까 싶었다.


 연인이 있을 때, 같이 사진을 찍고 싶었다. 좋은 여행지에서 예쁜 배경으로도 찍고 싶었고 스튜디오에서도 기념으로도 찍고 싶었다. 하지만 매번 다음으로 미뤄지고 사진 찍기를 싫어하는 기색에 나도 사진을 같이 찍자는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감정은 서운함으로 자라났다. 그래서 한동안 사진을 떠올리면 서운한 감정도 같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렇게 쉬운 일이었다. 이렇게 간단하고 언제든 할 수 있는 일로 나는 무엇 때문에 미루고 해내지 못해서 좌절감을 느꼈을까. 이렇게 쉽게 만족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는데 말이다. 




 옆에 있는 사람만 바뀔 뿐, 나는 여전히 살아가고 같은 일은 반복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보다 주변인들에게 더 초점을 맞춰 살았던 나는 모든 일이 매번 새로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매번 흔들리고 괴로웠다. 그 사람을 위한 경험에 내가 끼어있다는 생각이 많았기 때문에.  아니란 걸 이제는 알지만 말이다.


 나에게 의지(依支)는 좌절을 부르고, 함께는 외로움을 만든다. 반대로 독립은 뿌듯함을 부르고 홀로는 자유를 물한다. 제라도 정신 차려서 다행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