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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랑 Oct 01. 2023

나의 주기를 알아간다는 것

나를 달래주고 기다려주기


 얼마 전까지 출근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매일 이렇게 힘들 거면, 왜 살아야 하지


 오늘 출근길도 이렇게 힘들고, 출근하면 버텨내야 하는 하루가 너무 긴데, 그걸 내일도, 그다음 날도 해야 한다니. 이렇게 하루하루가 힘든데 살아가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처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땐, 나 스스로도 무서웠다. 흔히 말하는 우울증의 증상인 걸까, 연애를 하지 않아서 외로운 걸까. 더 괴로워지고 우울해지는 원인 찾기로 나를 망가트렸다.


하지만 이젠 꽤나 자연스럽게 넘기는 편이다.


그래, 그래서 죽는다 쳐.
근데 이렇게 죽기엔 아깝지 않아? 모아놓은 돈도 다 써버리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죽자.
자, 그럼 이제 인생을 새롭게 살기 위한 밑천을 만드는 일을 하러 가는 거야.
도약하기 위해 이 직장, 나름 괜찮지 않아?


이렇게 생각하면 일상은 한 층 새로워 보인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도심 냄새를 씻은 새벽 공기를 마시며 하는 출근길이 꽤나 맘에 들어 괜히 설레기도 한다. 그제야 생각한다. 아, 생리 전 증후군으로 잠시 우울했던 거였구나.


 나에게 관심이 없었던 시절에는 모든 감정 변화를 아무런 방어막 없이 맞아야 했다. 원하는 이에게 연락이 오지 않으면 불안했고, 매일의 출근길은 우울했으며 하는 일이라곤 감정에 휘둘려 우는 일뿐이었다. 우울해지는 나를 제어하지 못해 병원을 찾기도 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느낌으로 살아가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나한테만 너무 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인, 친구, 직장 동료는 물론 지나가다 마주치는 사람한테도 웃으며 인사하고 무슨 실수를 하면 이해하고 괜찮다 해주는데, 나는 나한테만 너무 박했다.


 늘도 누워만 있는 나를 탓하고, 멍하니 핸드폰만 고 있는 나를 한심해하고, SNS에 보이는 지인들의 웃음 가득한 삶을 너는 왜 누리지 못하냐고 나무라고. 결국은 내가 지겨워진다. 나와 혼자 있기 싫어지고 자꾸 남이랑 놀고 싶어 진다. 나에게 삐친 것이다. 그렇게 남을 찾고 남에게 의지하기 시작하며 나와는 또 멀어져 간다. 그렇게 만든 무력한 현실에 좌절하며 미래 남이 나를 구원해 줄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이제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남의 구원은 없다. 나는 나와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나는 꽤나 잘 살아가고 있다. 


 일이 지루한 것은 그만큼 익숙하단 의미고,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건 내가 그만큼 유능하단 의미이다.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낸다는 건 그럴 수 있는 여유가 있단 의미이고, 사실 나는 내 웃는 얼굴이 제일 좋다. 많이 웃고 산다, SNS에 올리지 않을 뿐.




 감사함이 잘난 척으로 보일 때가 있었다. 때문에 항상 겸손하고 하루하루 더 발전해야 살아있는 것 같을 때가 있었다. 겸손하기 위해 나의 부족함을 찾고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더 노력다.


 그래야 하는 사회에서 결국 나는 스스로 항상 부족한 사람이 되었다. 자존감이 낮고 이런 날 사랑해 주는 사람은 없을 것만 같은 기분으로 사회를 살아왔다. 누구 좋으라고 이렇게 살아왔을까.


 나의 못난 모습도 그럴 수 있다 넘기고,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땐 힘든가 보다 하며 내버려 두고, 내가 실수해도 그럴 수 있다 넘기고. 다른 이에게는 다 하고 있던 생각들을 이젠 나에게 해보자. 어차피 평생 살아갈 유일한 존재인 나인데 항상 마음에 들 수는 없지 않은가.


 나부터 인정하고 이해해야 세상이 더 아름다워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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