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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호 Nov 11. 2019

크리파

이별의 맛. 눈물의 맛.





한 번 더 손을 잡아주고 싶은 아이가 있습니다. 수줍어 다가오지 못하고, 먼저 다가가 손을 잡으면 어느새 내 손을 경쟁하며 달려오는 아이들에게 손을 빼앗기고 다시 뒤를 따르던 아이. 그래서 크리파는 자꾸 뒤돌아보게 되던 아이였습니다.


친구들의 무리에 있던 크리파는 색이 고운 꽃을 보면 달려가 고운 손에 담았습니다. 다섯 꽃잎의 살구색 손이 우리를 비추던 푸른 하늘과 소녀의 두 볼을 닮은 분홍으로 물들도록 꼬옥 움켜쥐고선 다시 무리로 돌아가 이야기꽃을 피웠죠. 학교에 도착하면 더욱 붉게 볼을 물들이고 다가와 총천연색이 되어버린 손을 내밀고 사라지곤 했습니다. 크리파는 어느새 시야 속에서 사라졌지만, 그녀가 건네준 꽃은 오래도록 내 손과 주머니를 물들이고 훗날엔 아끼는 책의 장면과 이야기들을 물들였습니다. 어떤 아이들보다 수줍음이 많은 소녀였지만, 어떤 아이들보다 오래 기억되는 아이입니다. 무엇보다 고운 색깔로.









처음 아이들을 만나고 이별이 다가왔을 때, 그 헤어짐이 서러워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전에 겪어본 적 없고 다시 겪을 수도 없을 오랜 울음이었습니다. 아니, 통곡이었죠. 세 시간의 통곡(이건 좀 부끄럽군요…)을 마치고 눅눅히 젖은 마음을 추스르고 있을 때, 크리파가 꽃잎 같은 작은 손에 검은 비닐봉지를 움켜쥐고서 찾아왔습니다. 볼 대신 두 눈을 붉게 물들이고서. 그녀가 건네준 비닐봉지엔 바나나가 들어있었습니다. 검은 반점들이 눈물 자국처럼 박힌 바나나 한 송이. 목이 메어 한 입도 먹지 못했지만 나는 그 맛을 기억합니다. 이별의 맛. 눈물의 맛.









늘 수줍던 크리파의 이별 선물. 붉은 눈으로 좁은 방안을 뒤적여 바나나를 품에 안고 달려왔을 어린 소녀의 마음을 생각하면 나의 마음도 그녀의 두 눈처럼 붉게 물듭니다. 이 생생한 그리움은 크리파를 닮아 달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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