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백
쿠시를 편애하는 내가 손을 흔듭니다. 셋째 날이 되어서야 웃는 얼굴을 보여주는 아이였지만, 나는 사랑을 허락받은 소년처럼 기뻤습니다. 이 웃음이 익숙해질 때쯤이면 다시 길을 나서야 하겠죠. 기약 없이 돌아서야 하겠죠. 그러나 이 웃음이 내 짧은 여행의 이유였으니 그리 서글픈 일은 아니겠습니다. 기약 없는 언젠가, 다시 찾는 날엔 쿠시는 더욱 커 있겠지요. 그때의 그는 나를 더욱 무안하게 만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저 아프지 말기를. 어느새 얼굴에 드리운 먹구름이 조금은 옅어져 있기를. 눈물을 쏟아서라도 걷어 낼 수 있기를. 그것이면 됩니다.
마지막 날, 아직 닫힌 교문 옆에 앉아 하교 종소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멀리서 나를 알아본 쿠시가 달려옵니다. 겨울나무의 가지처럼 앙상한 아이의 두 다리가 두 팔 벌린 내게 달려옵니다. 자신의 몸보다 무거운 가방이 위태로운 춤을 추고 따라 요동치던 나의 마음은 살구꽃보다 순수한 쿠시의 얼굴에 따스히 피어났습니다. 위태로웠지만 맑은 웃음 덕에 떨구지 않고 피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 순간을 온전히 기억하고 싶다고, 그 순간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크고 작은 움직임과 그 주위를 맴도는 바람의 살랑거림과 나의 손짓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 나무, 돌과 이야기 모두. 모두 기억하고 싶은 건 모두 담아내기에 너무도 벅찬 순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쿠시가 내게 달려오는 순간이 그랬습니다. 훗날 아련한 것들은 모두 그렇죠. 다 담아낼 수 없고 다 기억할 수 없는, 그러나 담아내고 싶고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
그를 가득 감싸 안아도 겨울나무 가지가 앙상한 이유로 품이 허했습니다. 그것은 또한 위태로워서 힘을 주어 더 세게 안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 빈자리는 부족한 내 사랑의 몫이겠지요. 오랜 그리움과 오래 그리울 이 순간과 미련과 사랑과 걱정으로 채워야 할 나의 몫입니다. 시들지 않게 볕에 두고 물을 주어 키워야 할 것입니다. 앙상한 가지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열어 채울 수 있도록.
나는 다시 어리석었습니다. 이것으로 오랜 공백이 메워질 것이라 여겼던 건 분명 착각이었습니다. 이 짧은 여행으로 내일의 그리움이 덜할 거라 생각한 건, 그래요, 오만이었습니다. 볼수록 그리운 아이가 지금도 눈앞을 서성이잖아요. 앙상한 어느 겨울날처럼, 또다시 마음이 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