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운사 Oct 23. 2019

금원 1: 천하 산수를 내 눈 아래

여행작가 김금원

 김금원은 19세기 초중반에 강원도 원주에 살았던 여성이다. 1816년에 태어나 1856년에 사망했다. 자신이 스스로 호를 지어 금원이라고 했다.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뜻이다. 금원의 부모님은 그녀에게 글자를 가르쳐 주었다. 이에 대해 금원은 부모님이 나를 어여삐 여겨 그렇게 하신 것이라 서술하고 있다. 부녀자의 일을 배우지 않고 한문을 교육받았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금원은 몇 년 안 되어 경서와 사서를 통달하고, 고금의 문장을 본떠 글을 지을 수 있었다. 흥이 나면 자연을 벗 삼아 시를 지으며, 자유롭게 여행할 것을 꿈꾸었다. 금원은 당시 남성이 여행을 통해 이치를 깨닫고 식견이 넓어지는 기회를 얻는 데 비해, 여자의 경우 규문 밖을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답답하게 여겼고 여자라고 뛰어난 자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고 굳게 믿었다. 그녀는 여성이 뛰어난 재주를 가졌다 하더라도, 규중에 갇혀 식견을 넓힐 기회를 얻지 못하고 끝내 이름을 남기지 못하는 운명에 대해 깊이 슬퍼했다. 금원은 자신의 삶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가 확고한 결론을 내렸다.

“나의 재주로 글을 지어 이름을 세상에 알릴 수 있을 것이다. 여자라 해서, 한미한 집안에 태어났다고 해서, 집안에 갇혀 이름 없이 사라지지 않으리라. 내 뜻은 결정되었다. 혼인하기 전에, 천지를 떠돌며 빼어난 경치를 보고 아름다운 문장을 지으리라.”

금원은 자신의 뜻을 부모님께 아뢰고 허락을 구했다. 부모님은 강하게 반대했지만, 금원이 여러 번 간청하니 결국에는 허락했다. 금원은 매가 하늘 높이 올라가듯이, 천리마가 천리를 치닫듯이, 그녀 앞에 펼쳐진 세상을 향해 출발했다. 안전을 위해 남자의 옷을 입고 동자처럼 머리를 땋았다. 그때 금원의 나이 열네 살이었다.

 첫 번째 여행지는 제천의 의림지였다. 고깃배를 빌려 어부의 노랫소리를 찾아갔다. 바람은 고요하고 물결은 평온하여 푸른 옥 같은 물결이 연못 속의 보석 거울 같았다. 물풀과 물새는 하늘빛 구름의 그림자 사이로 나왔다 들어갔다 했다. 금원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경치 속에 서 상쾌함을 느꼈다. 고기를 잡아 회를 쳐 먹고 순채를 삶아 오미자로 간을 했다. 오감으로 자연을 즐긴 후에 지팡이를 돌렸다.

  다음으로 단양의 사인암을 찾았다. 하늘을 받든 바위와 명주 같이 희고 평평한 모래, 잔잔한 시냇물의 광경에 압도되었다. 새소리가 들려왔다. 금원은 문득 이곳을 떠날 생각을 하니 슬픔이 밀려왔다. 다시 고개를 저었다. 내 나이가 아직 젊으니 기필코 다시 올 수 있을 것이다. 마땅히 앞으로 나아가, 무한한 경치를 받아들여야겠지. 새는 나의 기쁨과 슬픔을 알지 못한다. 자신들의 감정에 취해 울 뿐이다. 이어 금화굴과 남화굴에 들렀다. 굴속에는 두드리면 종소리가 나는 돌이 있었다. 중국의 문인 이발은 맑은 소리가 울리는 돌에 대해 글은 쓴 적이 있는데, 이 기록에 대해 소동파는 거짓말이라고 비웃은 적이 있다. 금원은 이전에 소동파의 이 기록에 대해 의심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 경험을 통해 확실히 진위를 판단할 수 있었다. 청풍의 옥순봉에 들르니, 하얀 달이 막 떠오르고, 맑은 바람이 귀를 간질이며, 꽃들은 향기를 토해내고 아지랑이에 산봉우리들이 잠기고 있었다.

  금원은 금강산을 향해 길을 떠났다. 장안사에서 대접받은 산나물은 담박하고 맑은 맛이 났다. 백운대에 오를 때는 철로 된 줄을 잡고 하늘을 오르는 것처럼 절벽을 탔다. 벽하담과 비파담을 지나, 백룡담과 흑룡담을 넘어 결국 팔담의 근원인 청룡담에 이르렀다. 폭포 소리에 산이 무너지고 골짜기가 터지는 것 같았다. 금원은 만폭동의 바위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해가 저무니 만 개의 골짜기가 안개로 뒤덮여 마치 붉은 비단을 천지에 깔아놓은 것 같았다. 달빛이 하얗게 빛나니, 백옥과 명주가 유리병 가운데에 섞여 비치는 것 같았다. 금원은 아름다운 금강산의 풍경을 보며 밤을 새우고 날이 밝아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금강산을 떠나며 무성한 꽃나무 사이를 걷노라니, 향기가 옷에 묻고 맑은 바람이 일었다. 멀리 바다를 바라보니, 하늘과 맞닿아 있어 구분이 되지 않는다. 금원은 바람을 타고 하늘에 날아올라 바람을 몰아보려고 생각했다.

 금강산을 나와 총석정으로 향했다. 떨기로 묶인 돌이 각각 육각형의 모양을 이루었는데, 색은 검은 유리 같고 베틀처럼 벌려져 있었다. 한결 같이 평평하게 갈렸으며 한결 같이 가지런히 묶여 있었다. 기이하고 기이하구나! 금원은 찬탄을 금치 못했다. 지금까지 읽었던 천하 명산에 대한 기록에도 이와 같은 장관은 나오지 않았다. 이곳이 해금강이라 불리게 된 이유는 바닷속의 돌 봉우리가 금강산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바다 가운데 가라앉은 돌의 형상이 층층이 겹쳐 기괴하고 물빛에 비쳐 영롱했다. 푸른 옥이 떨기마다 빼어나 하늘을 지탱하며 물속에 서 있구나. 고성의 삼일포를 찾으니, 호수를 둘러싼 서른여섯 봉우리는 손을 맞잡고 절하며 생긋 웃는 것 같고, 마치 춤을 추듯 바람에 일렁였다. 그녀를 둘러싼 광경이 어여뻐 마치 신비로운 분위기를 지닌 여인이 맑게 단장하고 가만히 서 있는 듯 보였다.

 금원은 사선정에 앉아 달이 뜨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닭이 울자 홀연히 구름이 영롱한 빛을 내뿜고, 빙옥 같은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숨겼다 했다. 바다 위를 두루 비추이니, 마치 만경 파도가 푸른 유리가 되고, 온 세상이 옥으로 빛났다. 맑은 바람에 머리가 개운해지고 정신이 또렷해졌다. 의경대에 올라 일출을 보려 했다. 구름이 하늘을 가리었는데, 한순간 붉은 거울이 점점 하늘 위로 올라간다. 번쩍이는 빛이 출렁여 흰 옥이 쟁반 위에 받쳐진 듯, 항아리에 가득 든 진주가 높이 빛을 발하듯, 푸른 물결에서 흔들리는 붉은 비단 우산 같았다. 금원은 놀라고 기뻐하며, 저도 모르게 펄쩍 뛰며 춤을 출 듯 즐거워했다. 신비로운 빛이 아래로 내리고 붉은 구름이 드리워 온 세상이 붉은 불꽃을 이루었다.

  설악산의 대승폭포를 찾았다. 표백한 흰 옷감 같은 흰 눈, 옥룡 같은 물줄기, 은빛 나비 같은 무지개가 펼쳐져 있었다. 금원은 비가 올 때 쓰는 모자를 착용하고 폭포 가까이 가보았다. 물거품이 모자 위로 떨어지는데, 그 소리가 우박이 치는 듯하고 바위를 뚫고 깨뜨리는 것 같았다. 고개를 돌리자, 봉우리와 암석의 기이한 천만 가지 풍경이 모두 금원의 눈 아래 있었다.  

  금원은 집으로 돌아와 남장한 자신의 모습을 슬프게 돌아보았다. 평생의 소원을 이루었고 이제 남장을 그만둘 시간이 되었다. 혼인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전 09화 덴동어미: 꽃 속에서 울고 웃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