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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사 Oct 18. 2019

덴동어미: 꽃 속에서 울고 웃네

하층 여성의 삶과 깨달음

3월 꽃이 만개한 봄날 부녀들이 꽃놀이를 간다. 꽃을 넣어 전을 부쳐 먹고 노래하고 춤을 춘다. 화창한 날씨, 아름다운 꽃들, 꾀꼬리 뻐꾸기 노고지리 지저귀는 소리, 호랑나비 범나비가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그때, 열일곱 살 꽃 같은 부녀가 눈물을 터트린다. 주위 부인들이 왜 그러는지 묻자, 남편을 잃은 신세를 토로한다. "천하 만물 짝이 있는데 나만 어찌 짝이 없나요. 이제 어찌 살아야 하나요." 그때 꽃 속에서 춤추며 웃고 즐기던 덴동어미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 인생 한 번 들어볼라오?"


덴동어미는 누구인가? 덴동은 불에 덴 아이라는 뜻이다. 덴동어미는 불에 덴 아이의 어머니를 말한다. 덴동어미는 이름에 대한 정보는 없고 성은 임이다. 임 씨라고 하자. 임씨는 19세기 중반 순흥에 살던 이방의 딸이었다. 이방은 양반은 아니지만, 대접받는 중인이다. 지금의 8-9급 공무원인데 월급 외에 들어오는 돈이 많은 경우라고 생각하면 얼추 맞다. 집안에 넉넉한 재산이 있어 먹고사는 데에 아무 걱정이 없었다. 임씨는 부모에게 사랑받으면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열여섯에 비슷한 집안의 준수한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 시부모님 사랑받고, 남편과 행복한 신혼의 단꿈을 보내고 있었는데, 결혼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과부가 되었다. 단옷날 남편이 그네를 타다가 그네 줄이 끊어지는 사고로 죽어버린 것이다.


"호천통곡 슬피 운들 죽은 낭군 살아올까. 한숨 모아 대풍 되고 눈물 모아 강수 된다."


열일곱에 청상과부가 된 임씨는 눈물로 세월을 보낸다. 다행히 시부모가 달래며 친정으로 보냈고, 친정부모는 상의해서 상주 지역 아전의 후처로 보내기로 한다. 아무래도 결혼한 이력이 있는 터라, 후처로 들어가게 되었지만, 이 집도 가세가 넉넉하고 시부모님도 인성이 훌륭했다. 남편도 출중한 외모에 성격도 좋았다. 임씨는 개가했지만 신분은 달라지지 않았다. 부모의 보호가 두 번째 결혼까지는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시가가 재물을 모은 방법에 있었다. 조선시대 아전은 월급이 없이 공금을 사사로이 써서 이자놀이를 하거나 뇌물을 받는 방식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공금에 큰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아전이 재량껏 비밀리에 돈을 놀려 사적인 재산을 늘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이 공공연히 문제가 될 경우 집안이 패가망신을 하게 되는 위험이 있었다. 임씨가 혼인한 지 삼 년도 채 되지 않아 시가에서 공금을 횡령한 비리가 사또에게 걸려 집안이 결딴이 났다. 시부는 맞아 죽고 시모는 화병으로 죽고 노비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임씨는 남편과 같이 친척이나 지인 집에 밥을 빌러 다녔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냉대와 멸시를 받기 일쑤였다. 모멸감에 고통스러워하는 남편을 보고 임씨는 남편과 고향을 떠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기로 한다. 임씨 부부는 상주를 지나 경주에 도착했다. 객점에 도착해서 밥을 빌어 먹는데, 주인 아낙이 임씨를 살그머니 불러 사정을 묻는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 이래저래 해서 왔습니다. 주인 아낙은 이백오십 냥을 줄 테니 부부에게 머슴살이를 해보라고 한다. 남편은 거지로 살다 죽지 머슴살이 수모를 어찌 참겠냐며 거부했지만 임씨는 몇 년만 고생해서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남편을 설득한다. 마지못해 남편은 승낙하고 받은 돈을 밑천으로 이자놀이를 해서 돈을 모은다. 비록 신분은 아전이었던 중인에서 천민인 머슴으로 하락했지만, 다시 돈을 벌어 신분 상승을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존재했다. 3년 동안 부부는 죽을 고생으로 욕을 먹어가며 만여 금을 모았다. 그런데, 이때 마침 마을에 전염병이 돌았다. 마을 사람들이 다 죽고 임씨의 남편도 죽었다. 빚을 갚을 사람이 모두 죽어버려 돈을 받을 수도 없게 되었다. 열일곱에 결혼하여 삼 년 남짓 평온했고, 스무 살부터 서른 살까지 꽃다운 나이를 머슴살이로 고생만 하며 보냈는데, 다시 혈혈단신 거지 신세가 되어 버렸다.  


 "죽으려고 애를 써도 성한 목숨 못 죽을레. 억지로 못 죽고서 또다시 빌어먹네."


이때 임씨에게 울산 출신 황도령이 다가온다. 황도령의 사정도 임씨네 못지않다. 부친의 나이 쉰다섯에 육 대 독자로 태어나 보물처럼 귀하게 자랐지만, 세 살에 어머니 돌아가시고 네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후 친척들 집을 떠돌다가 머슴살이로 십여 년을 보냈다. 십 년 새경 오백 냥을 받아 장사 밑천으로 삼았는데, 뱃길에 풍랑을 만나 목숨만 겨우 건져 고향에 돌아오니 손에는 고작 두 냥이 남아 있다. 황도령은 임씨에게 가련한 신세 둘이 만나 같이 늙어가자고 하고, 임씨는 이를 승낙하여 세 번째 혼인을 한다. 이번에는 첫 번째 두 번째 결혼처럼 결혼식도 하지 않고 집도 없이 주막의 방 한 칸을 빌어 산다. 밑천이 없으니 사기그릇 행상을 한다. 밥은 아침저녁으로 구걸해서 먹고 밤낮으로 돌아다니며 그릇을 판다. 일이 고되고 나이가 있으니 돈이 모일 만하면 아파서 약값으로 돈이 다 나간다. 십여 년간 행상하며 임씨의 발가락이 문드러지던 어느 날, 폭우에 산사태가 남편이 자던 주막을 덮쳐 버렸다.  


"아니 먹고 굶어 죽으랴 하니 그 집댁네 강권하네. 죽지 말고 밥을 먹게 죽는다고 시원할까.

죽으면 쓸 데 있나 살기보다 못하리라. 저승을 뉘가 가봤는가 이승만은 못하리라."


임씨는 음식을 끊고 죽으려고 한다. 마흔 중반의 나이, 다시 거지꼴에 홀로 된 자신의 신세가 견딜 수가 없다. 그때 주막 아낙은 임씨를 위로하며 개가하기를 권유한다. 꽃나무를 보라 하며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잎이 무성하지만, 가을에는 잎이 지고 겨울에는 가지만 남는다고 한다. 겨울나무처럼 지금은 신세가 처량하지만, 곧 봄이 오고 가을의 열매를 맺을 날이 올 것이라 위로한다. 혹시 이번 결혼에는 자식을 얻을 수도 있지 않겠냐며. 임씨는 스무 살, 서른 살에도 안 온 자식이 쉰이 되어가는 나이에 오겠냐며 손사래를 치지만, 주막 아낙은 사람 일은 알지 못하는 것이라며 뒷집의 조서방을 소개해 준다. 임씨는 하는 수 없이 조서방을 만나 그 날로 살림을 차린다. 독자들은 왜 이렇게 임씨가 계속 개가를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남편의 사망에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다가, 바로 새살림을 차리는 상황이라니. 그러나 당시의 하층 여성의 삶은 홀로 생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경제적 기반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여성의 몸으로 혼자 구걸해 살아가는 것은 안전을 보장하지 못했고, 다수에 의한 성폭력과 각종 범죄에 노출되어 있었다. 오늘날의 여성 노숙자가 성매매와 성폭력 등의 범죄에 취약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나은 선택지가 있다면, 잡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행히 조서방은 순박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고 열심히 일을 했다. 임씨는 살림하고 조서방은 엿장사를 했다. 삼 년 만에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았다. 오십이 되어 자식을 본 것이다. 부부는 너무나 기뻐 이제야 사람 사는 행복을 느끼나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별신굿을 대비해 무리해서 엿을 많이 만들다가 집에 불이 났다. 아들이 방안에 있어 임씨는 불길을 헤치고 아들을 구해서 나왔는데 남편이 보이지 않는다. 남편은 불에 타 죽은 것이다. 아들도 전신화상을 입어 죽을지 살지 알 수 없다. 임씨는 만사가 귀찮아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다. 이제 나이가 육십이 가까운데, 수중에 돈 한 푼이 없고 남편은 죽고 아들은 죽어간다. 아. 나는 가망이 없다.  


"이 사람아 정신차려 어린 아기 젖먹이게." "나도 아주 죽을라네 그 어린것이 살겠는가? 그 거동을 어찌 보나 아주 죽어 모를라네.""데었다 한들 다 죽는가 불에 덴 이 허다하지. 그 어미라야 살려내지 다른 이는 못살리네."


이웃 여성은 임씨에게 아이를 안겨 준다. 어머니만이 아이를 살릴 수 있다. 그러니 정신을 차리라고 독려한다. 아이는 살았지만 장애가 남았다. 손과 발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덴동이를 업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나마 가족을 만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사십여 년만에 찾은 친정집은 폐허가 되어 있다. 주저앉아 울음이 터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차라리 첫 번째 남편이 죽은 후 수절했다면 지금보다는 나았을까?  팔자 고치겠다고 세 번이나 더 결혼했는데, 왜 신세는 점점 더 고달파졌을까? 내가 잘못 살았던 걸까? 매일매일 죽어라 일했는데 왜 지금 아무것도 없는 거지? 엉엉 울고 있노라니 모르는 할머니가 와서 묻는다. "왜 그리 슬피 우나?" "내 설움 못 이겨 웁니다." "사정이나 들어보세" "들어가오. 내 설움 알아 쓸 데 없소." 할머니는 가지 않고 덴동어미 곁에 앉는다. "가는 데마다 슬프던가? 여기 와서 더 슬픈가?" "가는 데마다 슬프겠어요. 여기 와서 더 슬프지요. 저기 있던 임 이방 사람들 지금 어디 있답니까?" "이미 결딴나고 아무도 없지. 우리 집이랑 오촌이었네." 자세히 보니 오촌 형님이라, 부여잡고 통곡한다. "형님 형님 우리 형님, 내 이야기 들어보소."

 

육십 평생 고생만 했던 덴동어미의 삶. 몇 번이고 죽으려 했던 덴동어미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화전놀이에서 울음을 터트린 청상과부에게 덴동어미는 네 번이나 남편을 잃은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말하고 나서 그 신산한 삶에서 얻은 깨달음을 말해준다.


"마음 심자 제일이라 단단하게 맘 잡으면, 꽃은 절로 피는 거요 새는 예사 우는 거요. 달은 매양 밝은 거요 바람은 일상 부는 거라. 마음만 예사 태평하면 예사로 보고 예사로 듣지. 보고 듣고 예사하면 고생될 일 별로 없소."


삶에는 고생도 호강도 찾아오니 좋은 일도 그뿐, 그른 일도 그뿐. 좋은 일은 즐기고 슬픈 일은 한탄할 필요 없이 예사 일로 보시게나. 청상과부 그 말을 듣고 한숨은 꽃바람에 날리고 수심은 우는 새에 맡기기로 결심한다. 이팔청춘 과부가 된 내 신세도 봄이고 꽃이구나. 고생만 한 덴동어미 신세도 봄이고 꽃이구나.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내 온몸이 꽃이구나. 꽃노래 부르니 노래 속에 꽃향기가 나는구나. 나비 날아들어 꽃노래 찾아오고 꾀꼬리 날아와 꽃노래에 화답한다.

      

가난과 상실로 고통받던 하층 여성들이 일 년에 단 하루, 꽃 속에서 웃고 노니는 봄날. 울고 있던 청춘 과부는 덴동어미의 과거를 되돌아보게 한다. 수십 년 전 열일곱 임씨가 첫 남편을 잃었던 그 날. 그때의 임씨는 오십 년 후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조금도 알 수 없었으리라. 지금 울고 있는 청춘 과부의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 덴동어미의 삶보다 나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암담하고 어두운 그녀의 미래를 앞에 두고, 덴동어미는 자신도 살아남았으니, 너도 괜찮을 것이라는 위로를 던지고 있다. 아무리 힘겨운 삶이 앞에 펼쳐지더라도, 꽃나무를 보면서 언젠간 꽃이 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하루하루 살아가라고. 그리고 고통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너 자체가 꽃이라고. 이름 없이 고통 속에 살아갔던 우리의 어머니들과 할머니들. 현대 여성들의 눈으로 볼 때는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들은 힘겨운 삶 속에서 얻은 보석 같은 깨달음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 우리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어 꽃망울을 피어내는 꽃나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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