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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사 Oct 20. 2019

방관주와 영혜빙 1: 성장과 혼인

: 여성영웅의 삶과 고민

  방관주는 명나라 북경에서 한림원 태학사의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이 소설 <방한림전>이 조선시대에 조선 사람에 의해 국문으로 창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 시공간이 중국으로 설정된 것은 이 소설에 들어 있는 상상력이 조선에서 펼쳐지기에는 너무나 파격적이고 불온했기 때문이다. 방관주의 부모에게는 오래 자식이 없었고, 거의 포기할 때쯤에 태어난 소중한 자식이었기 때문에, 관주는 부모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관주는 서너 살 때부터 글자를 배웠고 남자 옷만을 입기를 고집했다. 부모는 여자아이에 어울릴 만한 색깔과 무늬가 있는 옷을 입히려 했지만, 아이의 고집이 강해 따를 수밖에 없었다. 또 당시 여자들이 배우는 바느질은 매우 싫어해 아예 손도 대지 않았고 유교 경전과 각종 사상서를 배우기를 좋아했다. 결국 부모는 관주의 고집에 따라 여자아이에게 하는 교육을 하지 않고 주변 사람에게도 모두 관주를 아들이라고 알렸다. 관주가 여덟 살일 때 부모가 함께 세상을 떠났다. 이후 관주는 항상 남자인 것처럼 처신했으며, 병서를 읽고 무예를 익혔다. 이처럼 방관주의 성장과정은 매우 독특하게 설정되어 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스스로의 주관에 따라  남성의 교육을 선택해 남성으로 성장했으며, 타인에게도 자신을 남성으로 위장했다. 부모가 어릴 적 세상을 떠난다는 설정은, 아마 관주가 성장해서까지도 남성으로 행세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을 가능성이 크다. 여성이면서 남성으로 살아가는 데 부모의 제약이 모두 사라진 상황에서, 관주는 집안일을 다스리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다. 현대 독자들에게, 또 그 당시의 독자들에게도 이 설정은 다소 무리라고 생각된다. 아무리 신분질서가 공고한 시대라고 하더라도 수많은 비복들이 여덟 살 아이의 말을 순순히 따랐을까? 그러나 부모가 살아있는 상황에서 관주가 남성으로 성장하는 것보다는, 비복이 아이의 말을 따랐다는 설정이 그나마 나았을 것이다. 관주의 옆에는 평생 유모가 있어 관주가 여성이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일깨워준다. 유모는 당시 규방 여성이 열 살이 되면 밖에 나가지 않아야 한다는 규범을 내세워 관주의 생각과 언행을 바꾸려고 하지만, 방관주는 화를 내고 정색하며 유모의 입을 막는다. 부모의 삼년상을 마치고 관주는 일 년간 여행을 떠난다. 이 역시 조선시대 여성에게는 금기시된 일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기생 금원의 경우 열네 살의 나이에 남장을 하고 금강산에 다녀온 일이 있는 만큼, 비범한 여성은 자신에게 내려진 금기를 깨뜨리는 데 두려워하지 않는 법이다. 관주는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시를 짓고 기상을 높인 후에 집으로 돌아온다.

  열두 살이 된 방관주는 과거에 응시하러 서울로 향한다. 이미 집안에서 남편을 섬기는 여성의 삶은 도저히 할 수 없다는 결심이 확고한 상태였다. 그는 손쉽게 장원을 하고,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게 된다. 한림학사에 제수되어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다. 이 역시 현실에 있기 어려운 무리한 설정이지만, 비범한 영웅은 떡잎부터 다르다는 차원에서 넘어가기로 하자. 부친이 한림원의 최고 벼슬인 태학사를 지낸 인물이었으니, 방관주 역시 우월한 유전자를 타고났을 것이고, 세 살부터 글공부에만 몰입했으니 장원급제할 정도의 실력을 쌓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여성이더라도 남성에게 해당되는 충분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남성이 이룰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성취도 가능할 수 있으리라는 작가와 독자의 염원이 강하게 담겨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상상력은 제한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방관주는 교육을 통해 직업을 얻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미래가 보장된 남성은, 하루 바삐 혼인하여 가정을 이룰 것을 사회에서 요구받기 마련이다. 방관주에게도 수많은 구혼이 밀려들었다. 만일 혼인하지 않고 구혼을 계속 거절한다면, 정상적인 남자가 아니라는 의심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이라는 것이 발각되는 일도 시간문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상황에, 방관주와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던 한 여성이 있었다. 바로 영혜빙이다. 영혜빙도 방관주처럼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태학사 서평후 영공의 딸이다. 서평후는 아들 일곱과 딸 다섯을 두었는데, 혜빙은 막내딸이었다. 혜빙은 용모와 재주가 뛰어나고 행동거지에 거침이 없고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부부의 인연을 맺는 것을 혐오하면서, 수시로 “여자는 죄인이라 모든 일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남편의 규제를 받아야 하니, 남자가 되지 못한다면 혼인을 하지 않는 게 옳으리라”라고 했다. 이런 그녀의 생각을 부모와 형제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고 조롱하곤 했다. 그런데 혜빙의 부친 서평후가 방관주에게 구혼을 하고, 방관주는 여러 번 거절하다 못해 영혜빙의 인물됨을 알지 못해 결정할 수 없다고 핑계를 댄다. 서평후는 옳거니 하고 방관주를 자신의 집에 초대하고는, 영혜빙을 불러 서로를 만나게 한다. 혜빙을 본 순간 관주는 갑자기 기쁜 마음이 들면서, 혼인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혜빙의 아름다운 외모와 행동거지에 마음이 흔들린 것이다. 혜빙을 만나기 전까지는, 관주는 혼인을 한다면 상대를 속여 인륜을 해치는 일이 되고, 자신의 성별이 드러날 위험성이 있다는 점에 두려워했다. 하지만 혜빙을 만난 후에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서로를 알아주는 벗으로 지낼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보고 구혼을 받아들인다. 관주의 유모는 혼사가 이루어졌다는 말을 듣고, 놀라고 정색하며 관주를 말린다. 마땅히 남자와 혼인해야 할 것을, 괴이하게 여자와 혼인을 해서 그 뒷감당을 어찌하겠냐고 했다. 관주는 웃으며 다 생각이 있으니 더 이상의 말을 하지 말라며 입단속을 시킨다.

 그런데, 영혜빙은 방관주를 만난 순간, 관주가 여성이라는 점을 간파해 버렸다. 관주의 목소리가 가는 점을 이상하게 여기다가, 얼굴을 살짝 보고는 자신이 원하던 상대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혜빙은 영웅 같은 여자를 만나 평생 동안 지기가 되어 부부의 의리를 맺는 것이 일생의 소원이었다. 남자와 결혼해서 그의 통제를 받고 단장하며 환심을 구걸하는 아내가 되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혜빙은 부부의 인연을 맺는다면 아내가 남편과 결코 동등한 관계가 될 수 없고, 상하의 구분이 있어 하인이 주인을 모시는 것처럼 남편을 섬겨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자와 부부의 인연을 맺는다면, 권력관계가 아닌 벗의 만남을 이룰 수 있으리라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여자와 인연을 맺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있던 중에, 남장을 한 방관주를 본 순간 그녀가 자신이 찾던 바로 그 사람임을 알아차린다. 혜빙은 관주와는 또 다른 상황과 입장에서 자신을 이해해줄 벗을 간절히 찾아왔던 것이다.

  남성이 되고 싶어 자신의 성별을 철저히 숨겨왔던 여성과 남성의 규제를 받는 것이 싫어 혼인을 거부했던 여성이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 영혜빙은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에 속으로 기뻐하지만, 방관주는 근심으로 마음이 무겁다. 자신의 정체가 밝혀질 것에 대한 두려움과, 상대를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첫날밤, 방관주는 조심스럽게 영혜빙에게 서로 알아주는 벗이 되기를 청한다. 영혜빙은 진지하게 방관주에게 자신을 속이지 말라고 부탁한다. 그 말에 관주는 이미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났다는 걸 깨닫고 당황하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음날 혜빙은 관주에게, 남장을 한 여자라는 점을 이미 알아차렸다는 점과 남장을 하게 된 사정을 말해줄 것을 요청한다. 관주는 눈물을 흘리며, 혜빙을 속이고 혼인한 점을 사죄하고 자신의 정체를 비밀에 부칠 것을 부탁한다. 혜빙은 이미 처음 만났을 때 여성이라는 점을 알아보았다고 답하며 평생 비밀을 지킬 것을 약속한다. 둘은 서로를 이해하는 벗이 되어 한동안 즐겁고 화평한 시기를 보낸다.  여기까지는 해피엔딩일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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