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작년에 보라카이 여행을 준비하면서부터다. 투어 상품 중에 프리다이빙이 있길래 그게 뭐지? 하며 살펴보다가 바닷속을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는 모습에 반하여 프리다이빙 체험 상품을 예약하게 되었다. 보라카이 바다 안에서 작고 앙살스러운 니모를 코앞에서 마주한 후로 그때의 동영상들을 자주 보며 그 순간을 그리워했다. 그러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이것저것 감정적으로 과하게 일렁이기에 어느 소설의 제목처럼 내게도 너무나 많은 여름이 겹겹이 쌓여 있는 걸까, 싶어 돌아보니 문득 그 바닷속에 느꼈던 무중력의 파랑이 그리운 듯했다. 결국 프리다이빙 자격증 코스를 수강하고 만다.
나는 수업 첫날부터 이퀄라이징이 바로 되어서(내가 프렌젤을 이미 할 줄 알더라고? 아마도 내가 도리라서 그런 것 같다고 다시금 확신) 5~6미터는 쉽게 내려갔으며 덕다이빙 자세가 아주 훌륭하진 않아도 수심을 뚫고 들어가기엔 큰 무리가 없었다. 이퀄라이징을 할 때마다 고막이 "지이이잉"소리를 내며 펴졌는데 그 작고 가느다란 그 소리를 처음 듣는 순간 너무 놀라서 선생님을 붙잡고 큰 소리로 물었다. 스앵님, 귀에서 뭔가 작고 귀여운 동물소리를 내며 우는데 제 고막인가요?
선생님이 빙그레 웃으며 너님 고막 맞아요, 하길래 까르르(진짜로 꺄르르르 했다. '잠시 소녀 같았다'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어쩌면 선생님은 좀 무서우셨을 수도 있겠다.) 웃음을 터트리며 "저 이 소리 너무 좋아요." 라며 거의 울 듯이 웃었다. 내 평생 처음 느껴보는 신비한 진동이자 울림이었다. 수영을 배울 때도, 다이빙을 배울 때도, 내가 이전까진 전혀 모르던 감각들을 새롭게 익히고 있다. 딱 그만큼씩 확장되어 가는 세상을 느낄 수 있어 맘에 들었다.
고막 펴지는 소리만큼 좋았던 것은 물 안에서 상승할 때 고개를 위로 하여 고요하게 일렁이는 빛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물 안으로 들어갈 땐 고막이 펴지는 소리를 들으며 새로운 세상에서 자유로워지고 물 위로 올라갈 땐 수면을 흔들고 있는 빛을 통과하며 익숙한 세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과정이 너무나도 신비로워서 여름 내내 다이빙을 배우며 진심으로 행복했었다.
잠수풀에서 처음 10미터를 찍은 날. 선생님께서 내려갈 수 있는 만큼 내려가 보라길래 이퀄라이징과 피닝질을 반복하며 열심히 내려갔다. 20미터가 가까워오자 이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폐가 살짝 오그라드는 듯 하면서 호흡이 가빠왔지만 두렵다기 보단 한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워서 그 순간 문득 보홀의 바다를 떠올렸다. 그 바다에 들어가면 어떤 느낌일까. 그 파랑은 어떤 파랑일까. 나중에 수면으로 돌아왔을 때, 선생님은 그렇게 급하게 힘으로만 내려가면 안 된다며 프리다이빙에서 필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천천히'와 '느리게'라고 하셨다. 넵, 기억하겠슴돠!! 라는 대답과 함께 보홀 여행 일주일 전에 자격증을 따게 된다.
나는 수심 20미터도 가볍게 뚫은 도리니까(우쭐) 보홀 바다쯤은 금세 뚫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발리카삭의 거북이 포인트에서 구명조끼 입기를 거부하며 바다에 뛰어들게 된다. 아주 호기로운 표정을 지으며 돈워리. 아캔스윔.
뭐, 확실히, 아캔스윔이긴 했으나..... 잠수풀의 잔잔한 수심만 뚫을 줄 알았던 나는 바닷물의 조류와 부력을 뚫을 수가 없어 처음엔 들어가질 못 했다. 바다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던 건데 한참 동안 발버둥만 치며 물 위에 둥둥 떠있어야 했다. 가이드들이 저 안에 있는 거북이를 가리키며 터틀, 터틀, 했지만 들어갈 수가 없어 와이캔트아이 소리만 반복했다.
문득, 나의 훌륭한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다이빙에서 필요한 건 '천천히'와 '느리게'라고. 그렇게 급하게 힘으로만 내려가려 하면 안 된다고. 아, 스앵님!! 역시 당신은... 마치 귀멸의 칼날 탄지로가 각성이라도 하듯... 호흡을 가다듬고 무게 중심을 머리에 둔 채 몇 차례 더 천천히 덕다이빙을 시도한 끝에 드디어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각성 성공)
바다 안으로 쑤욱 들어가 눈앞에서 본 거북이는 생각보다 거대했으며 조금 심술궂은 아저씨처럼 생긴 것 같았다. 여기까지 간신히 들어왔다는 나의 감격 따윈 아랑곳하지 않은 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수초만 냠냠 먹고 있는 거북이를 보고 있으려니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고 있는 듯한 죄송스러움마저 들었다.
건강하십쇼. 전 제 갈 길 가겠슴돠.
다시 수면으로 올라왔을 때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그 '뭐든'은 고작 부력을 뚫는 정도의 일이 아닐 수도 있으며, 나는 여전히 현실 속의 부력을 뚫지 못해 좌절할지도 모를 테지만, 그 좌절이란 것도 어쩌면 수심을 1m 정도 더 뚫지 못했을 때의 좌절, 이퀄라이징이 살짝 되지 않았을 때의 좌절, 이번엔 호흡이 좀 부족했나 싶을 정도의 좌절로 여겨지지 않을까. 어쩌면 내게도 그 정도의 배짱과 용기가 생긴 건 아닐까 싶었다.
보홀의 바다는 듣던 것보다 훨씬 파랗고 웅장했다. 바다 절벽엔 산호가 가득했고 그 사이사이에서 열대어들이 활발하게 헤엄치고 있었다. 투명하고 생동감 있는 호흡으로 생명력을 뽐내는 아름다운 바다였다. 우주에 가 본 적은 없지만 깊은 물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지 않을까. 내내 생각했는데 보홀의 바다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웅장하게 일렁이고 있어 온몸으로 감각할 수 있는 우주 같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욕심 없이 천천히, 긴 호흡으로 느리게, 내가 가진 호흡만큼만 누릴 수 있는 세상. 내 호흡이 깊어질수록 조금씩 커져갈 세상. 다이빙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세상을 모르고 살았겠지, 생각하니 올여름 내가 했던 일 중에 다이빙을 배운 일이 가장 잘한 일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그 겹겹의 여름들 위로 다이빙 하던 순간 하나를 더 쌓아 올릴 수 있어 행복했다.
+ 이것은 보라카이에서 했던 다이빙이다. 땡큐보라카이 호핑 때 우리 가족 옆 테이블에 수화로 이야기하는 분들이 계셨다. 청각 언어보단 시각언어가 훨씬 더 편한 분들이셨다.
호핑을 하는 동안 나는 내내 잠수를 하며 작년에는 보지 못했던 커다란 산호도 보고 니모집도 구경하고 아들한테 불가사리도 잡아주고 있었는데 언뜻 보니 수화를 하던 빨간 수영복의 그 분도 나만큼이나 바닷속으로 뛰어들고 계셨다.
문득 궁금했었다. 그분이 감각하는 바다는 어떤 느낌일까. 파도의 일렁임을 진동으로만 느낄 때의 바다는 대체 어떤 바다일까. 혹여 불편함이나 두려움은 없을까. 실은 조금 걱정도 되어 잠수를 하다가도 그분이 괜찮은지 살피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분이 내게 손짓을 하며 옆으로 다가간 내 손을 끌어당겼다. 함께 바다 안으로 들어가 보자는 말인지, 본인을 잡아달라는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여 조금 어리둥절해하다가 가이드 분께 사진을 찍어달라는 동작이 이어지고 있어 함께 들어가 보자는 말이구나, 깨달았다.
손을 잡고 함께 바다로 들어갔을 때의 느낌은 그동안 들어갔던 바다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이상하게 조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천천히, 느리게, 작게 진동하며 울리는 바다의 소리가 귀가 아닌 온몸으로 들리는 듯하여 몸이 떨려오면서 자꾸만 눈물이 나려 했다. 그분이 느끼는 감각이 내게도 전달된 것인지, 그렇다면 그분에게도 이 순간 내가 느끼고 있는 소리의 감각이 조금쯤은 전달되는 것인지. 적어도 그 고막이 펴질 때의 몽환적인 울림. 작고 가느다랗고 연약하면서로 자유로운 그 소리만큼은 느끼게 해주고 싶어 그분의 손을 꼭 잡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었다.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연신 엄지 척을 해 보였는데 그때는 그것 말고 달리 무언가를 전달할 방법이 없었고 내가 전하고 싶은 것이 대체 무언지도 알지 못했던 거 같다. 지금에서야 가만히 생각하니, 우리는 같은 바다를 느꼈으며 우리가 가진 호흡만큼 우리의 세상이 열리고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던 거 아닐까, 싶다. 정말이지 아주 좋은 다이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