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편은 작년 여행기와 이어지는 내용들이다.
보라카이가 그리웠던 건 끝도 없이 펼쳐진 하얀 해변과 켜켜이 푸른빛을 달리하며 말도 안 되게 예뻤던 바다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쨌든 우리 가족의 첫 해외여행지였으니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 또한 특별하게 기억되고 있어서였다. 비록 누군가에겐 투어 혹은 마사지 업체와 손님의 관계일지라도 우리 가족에겐 '만남'이었다.
# 땡큐보라카이
우리 가족은 나 빼곤 수영을 잘 못 한다. 체력도 약해서 쉽게 지친다. 보홀에서 물놀이 일정이 너무 많았기에 보라카이에선 아무 일정 없이 그저 해변에서 쉴 계획도 있었다, 처음엔.
- 이번엔 땡보 하지 말까? 가서 안녕하세요, 인사만 할까?
- 그래도 거기까지 갔는데 어떻게 땡보를 안 해?
땡보는 전혀 신경도 안 쓸 텐데 우리끼리 땡보를 하네마네 고민이 컸었다. 작년 보라카이 여행 때 만났던 땡보와 제이피가 많이 그리웠던 터라 땡보 호핑을 하고는 싶었는데, 하자니 체력이 달리고 안 하자니 좀 서운할 것 같았다.
떠나기 전까지도 계속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들이 "그래도 땡보는 해야지. 제이피 삼촌 만나야지." 하는 통에 결국 땡보 호핑을 예약하게 된다.
우리를 기억할까.
예약을 하고도 "우리 이번에도 갑니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우리 갑니다, 라니 사실 조금 우습잖아. 수많은 사람을 상대할 테니 잠시 스쳐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번에도'라는 말을 하게 된다면 이전에 대한 기억을 요구하는 부담일 테니 네이버 쇼핑몰에서 상품을 구매한 후 별다른 말없이 투어 장소로 갔다.
그렇지만, 로즈님이 나를 단박에 알아봤을 때 어찌나 기쁘던지. "아니, 이 언니, 왜 말도 없이 왔지?" 했을 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로즈님은 작년에도 그랬다. 그날 나를 처음 봤음에도 원래 아는 사람 대하듯 언니라고 했다. 까맣게 탄 나를 보더니 "아니, 이 언니 잘 놀았나 보네. 아주 잘 탔네." 하길래 멋진 칭찬이라도 들은 듯 우쭐하여 아주 잘 놀고 잘 탄 사람의 미소로 씨익 웃었더랬다.
잘 지냈느냐는 말을 주고받으며 호핑을 떠났다. 그날은 우리의 여행 중 가장 뜨거운 태양이었는데 나는 고향에라도 온 듯 너무나도 안심이 되고 반가워서 정말이지 미친 듯이 헤엄을 치며 다이빙을 했다. 이제 그만 물에서 나와 좀 쉬라는 남편에게 "나 지금 너무 좋아. 진짜로 너무 좋아서 여기서 나가기가 싫어."라고 말하며 다시금 물속으로 고개를 집어넣었다.
"아니, 저 언니 인어가 되어서 돌아왔네." 하던 로즈님의 목소리가 뒤통수에 꽂혀서 조금 미친 인어처럼 물 안에서도 소리 내어 웃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이피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못해 조금 섭섭했다. 섭섭, 이라는 말을 입으로 뱉으면 'ㅅ'을 발음하기 위해 공기가 이 사이로 살짝 빠져나가는데 딱 그 정도의 느낌으로 좀 허전했더랬다.
지난번보다 호핑 손님이 많아서 제이피는 배의 저 앞쪽에 앉아 있는 단체 손님들을 상대하고 있었고, 우리는 배의 가장 끝에 있었기에 토토와 프랑코의 담당이었다. 물론 토토와 프랑코도 좋았지만(진짜 친절하다ㅠㅠ), 제이피와 헤엄치고 싶었기에 못내 아쉬웠다.
제이피는 내게 다이빙을 배웠냐며 활짝 웃더니 저쪽으로 가면 니모 집이 있다고 알려줬다. 하지만, 그 저쪽이 그렇게나 깊은 저쪽인지까진 미처 알려주지 않아서 제이피가 말했던 니모집을 방문하기 위해 아주 깊은 잠수를 해야만 했다.
아니, 제이피, 깊다고 말해줬어야지!! 쏘 딥!!
다시 만나서 반갑다며 인사를 건네니 수줍게 웃던 제이피. 배에 오르고 내릴 때마다 조심하라며 손을 잡아주던 제이피.
호핑이 끝나고 헤어질 때 다음에 또 만나자는 인사를 했다. 제이피가 웃으며 잘 가라고 했는데 이상하게 진짜로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에 만났던 것처럼 다음에도 또 이렇게 만나 인사 나누며 어이, 안녕하슈. 앗! 안녕, 또 왔네. 잘 지내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세부의 옥택연보다 더 돈 많이 버는 보라카이의 제이피가 되길. 내가 진짜로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
+ 땡보 로즈님은 프리다이빙을 아주 잘하며 수중 사진도 진심을 다 해 찍어주신다. 토할 정도로 많은 후기를 본 사람으로서 내가 장담하는데 적어도 보홀과 보라카이 통틀어 수중 사진은 여기가 최고다.
한 가지 팁을 이야기하자면, 스스로 잠수해서 물에 들어가는 것보다 땡보 스텝한테 눌러달라고 해서 물 안으로 들어갈 때의 사진이 훨씬 이쁘다. 각도랑 깊이가 그쪽이 훨씬 알맞다. 기억할 것!! 다이빙 좀 할 줄 안다고 스스로 잠수하지 말고(나) 그냥 눌러달라고 하자. 10초만 숨을 참으면 인생사진을 볼 수 있다.
# 헬로스파
작년에 스파 예약을 위해 온갖 후기를 다 살펴보았다. 헬로스파 이야기가 많길래 '한 놈만 패는'심정으로 한동안 그것만 열심히 검색했는데 어쩌고 저쩌고 하다 보니(작년 일) 헬로스파 사장님의 유튜브 채널인 보라카이 생존기의 구독자가 되고 만다.
보라카이 첫 일정은 당연히 헬로스파였다. 작년에는 만나지 못했던 완님(헬로스파 사장님이자 유튜브 채널 주인)이 있어 너무 반가웠다.
마사지 전에 음료를 마시며 특별하게 원하는 부위를 이야기한 후 핑크 침대 위에 엎드렸다. 나를 꾹꾹 눌러주던 손길들. 마사지에 대한 소감은 작년과 같았는데, 올해는 보홀까지 돌고 왔으니 비교군이 좀 더 넓어졌다. 보홀과 보라카이에서 우리가 방문했던 스파 중 이곳이 압도적으로 좋았다. 내 몸을 만져줄 때면 원래 나를 아는 사람 같았다. 뼈와 근육의 위치, 남 모를 불편함을 품고 있는 곳까지 다 알고 있는 듯 정확하게 짚어가며 정성스레 꾹꾹 눌러주고 있었기에 이렇게까지 호사를 누려도 되는 걸까 했다.
귀한 대접을 받은 기분에 젖어 잔뜩 풀어진 얼굴과 나른하게 늘어진 팔다리를 하고선 마사지를 끝내고 나왔더니 완님께서 마사지는 어땠냐고 물었다.
좋았다고 대답한 후 입이 근질근질하며 결국 묻고 만다.
"아니, 근데 왜 요즘은 영상 안 올리세요?(안 올라온 지 일 년이 넘음)"
이런 질문 정말 많이 받았다는 듯 아하하하, 웃으시더니 요즘은 너무 바쁘고 여유가 없어서요, 하셨다. 영상이 너무 안 올라와서 걱정했다는 말을 하며 나나님의 건강과 안부에 대한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다가 마사지는 최고였다고 엄쥐 척을 했다.
그리곤 아까부터 로비에서 손님을 안내하고 있던 젬마에게 유튜브 채널에서 당신을 봤다며 슬쩍 아는 척을 했다. 보라카이가 셧다운 되었을 때 당신이 이츠오케이, 이츠오케이 하던 모습이 내겐 꽤 감동적이었다고 하니 젬마가 배시시 웃었다. 그 미소가 너무 다정해서 나도 모르게 젬마의 손을 잡았다. 당신의 하루가 늘 이츠오케이하길 바래요. 보라카이가 이츠오케이 하길 바래요. 나는 이 말을 유튜브에서 젬마를 처음 봤을 때부터 하고 싶었으며, 작년 여행 때도 하고 싶었는데 만나지를 못 했다. 이제라도 전할 수 있었으니 나도 이츠오케이.
사장님께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 했더니 수줍어하며 브이를 그려주셨다.
나올 때의 인사는 '안녕히 계세요'가 아니라 '또 올게요'였다. 그리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내가 반드시 여길 또 오고야 말겠다는 다짐 같은 거 없이, 집 앞 단골 빵집을 찾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는 이츠오케이하며 잘 지내다가 이츠오케이하고 있을 당신들에게 다시 마사지를 받으러 오겠으니 내일에 대한 기대를 품은 가볍고 다정한 인사였다.
그러니, 우리, 다음에 또 봅시다. 우리 모두 그때까지 이츠오케이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