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다른 날 다른 시간대의 보라카이 하늘이다.
해가 지기 직전엔 분명히 황금색 같았는데 점점 다채로운 채도의 빛과 색을 보이고 있었다.
저 멀리서부터 어스름이 내려앉기 시작할 때면 조금씩 몽롱해졌다. 내가 있는 동안은 내내 구름이 하늘에 살짝 걸터앉듯 내려와 있어 불타는 것 마냥 맹렬하게 붉은 하늘은 보지 못했다. 옅은 핑크빛으로 물들기 시작하여 오렌지빛으로 아스라이 빛나던 하늘이었다.
예뻤다. 딱히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진짜로 참 예뻤다. 멈춰서 가만히 보고 있을 때면 행복했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그 빛깔의 다채로움과 구름의 몽글몽글한 질감에 대해선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겠다. 그저 그렇게 느리고 거대한 일렁임을 보는 순간이 황홀하여 멍해지곤 했다. 그 몽롱함에 사로잡혔다가 본격적인 어둠이 내려앉을 때쯤엔 살짝 슬프기까지 했던 시간이었다.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보다 보면 슬프기도 하구나. 깨달았던 시간이었다.
해가 질 무렵이면 화이트비치엔 사람이 가득해진다. 아니, 이 많은 사람들이 대체 낮엔 다 어디에 있었던 걸까. 매번 그게 궁금해질 정도로 사람이 바글거려 그 무렵의 화이트비치는 광안리 바다같기도 했다.
그 시간엔 "돛단배?" 하는 호객행위도 끊이지 않는다. 보라카이의 상징인 파아란 돛단배.
얼마냐 물었더니 한 사람당 1,000페소라 하여 타질 않았다.
"내가 미리 검색해 봤는데 작년이랑 비슷했어. 보통 인당 600~700페소래. 우린 세명이니까 일단 1,800페소로 시작해 보자."
그렇지만 그러다가 결국 그날은 타지 못했다. 가진 돈이 1,800페소뿐이라고 했더니 고개를 저으며 내일 다시 오라고 했다.
"내일 오라는 거 보니까 1,800페소는 진짜 아닌가 봐. 내일은 2,000페소 부르자."
작전을 재정비하며 지는 해와 물들어 가는 하늘과 그 하늘을 품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돛단배를 타지 않아도 좋았다.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보라카이 하늘 아래였다.
다음날은 아들이 빠졌다. 숙소에 남아 있고 싶다고 하여 남편과 둘만 나왔다. 1,400페소를 불렀더니 팁 포함하여 1,500페소를 요구했다. 이러다 또 못 타겠다 싶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해가 수평선 너머로 떨어진 후에야 간신히 돛단배에 탈 수 있었다.
무동력의 돛단배는 바람의 힘으로만 앞으로 나아가는데 생각보다 속도가 제법 된다. 하늘과 같은 색을 품은 채 짙어져 가는 바다 위를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엔 바다와 나뿐인 것 같았다.
가만히 앉아 해가 수평선 너머로 떨어질 때까지 바라보던 때가 있었나 생각해 보니 아주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사는 부산에서 유일하게 일몰을 볼 수 있는 바다는 다대포인데 동해보다는 서해의 풍경을 좋아하는 남편 덕분에 결혼 전엔 그곳을 자주 찾았다. 다대포도 보라카이처럼 완만한 수심에 파도가 낮고 백사장이 넓어 일몰이 시작되면 꽤 장관이다. 내가 거길 언제 마지막으로 갔던 걸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음... 그러니까, 그때, 분명히 나는 천년의 사랑을 떠올렸던 것 같다.
켜켜이 겹쳐진 구름 사이로 일몰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구름은 저물어가는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황금빛과 붉은빛으로 다시 푸른빛과 보랏빛으로 뒤섞이며 하늘 위를 부드럽게 휘감고 있었다. 잔잔하게 밀려든 파도 덕에 촉촉이 젖은 모래 위로 일몰의 풍경이 반사되고 있어 평소엔 잘 쓰지 않는 온갖 감성적인 단어들이 튀어나오려 했다.
하늘과 해변이 온전히 붉은빛을 뿜기 시작할 때면 주변의 풍경들이 미묘하게 달라져갔다. 사랑하는 사람의 어깨는 붉은 하늘을 등지고 있었으며 옷자락은 시원한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그의 그림자가 붉게 물든 해변 위로 길게 늘어지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자기야, 여기서 해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없던 천년의 사랑도 생기겠다. 그치?”
장난스러운 말을 건네자 나를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대체 이 기억이 언제더라? 남편이 아직은 남자친구였을 때였던가. 아마도 그 순간이 그 시절의 인생 일몰이었을 테지. 바다를 향해 나아가던 돛단배는 방향을 틀어 다시 해변 쪽으로 가고 있었다. 검붉게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내 기억은 다시금 다대포로 향했다.
아들이 4살 즈음이었던 거 같다. 어린 아들은 분수를 너무 좋아했다. 다대포의 낙조분수를 보여주기 위해 주말이면 음악분수의 공연시간에 맞춰 바쁘게 달려가던 무렵이었다. 남편과 크게 다툰 후 애들처럼 며칠 동안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침묵이 오래 지속되면 그 이유는 잘 떠오르지 않고 내게 침묵을 지키며 무관심을 유지하고 있는 상대에 대한 원망만이 커져갈 뿐이다. 마음이 기울어져 있을수록 더욱 그렇다. 그리하여, 나에게 며칠째 침묵 중인 남편이, 너무너무 미웠다. 4년 전 다대포에서 맹세했던 천년의 사랑은 이미 잊힌 듯했다.
나쁜 놈 같으니라고.
계획에는 없었는데 아들이 또 분수를 보러 가자고 졸라대어 남편과 한없이 어색한 상태에서 짐을 챙겨 나갔다. 주차장에 차를 대자마자 아들이 지는 해를 등지고선 달려 나갔다. 주차장 바닥 위로 아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야야! 분수다.”하며 신나서 날뛰는 아들을 남편이 붙잡았다. 분수공연이 시작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달래면서 남편이 목말을 태웠다. 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썰물로 드러난 갯벌 주위를 걸었다. 그러다 게를 발견한 아들이 잔뜩 흥분하여 “엄마 아빠, 이것 봐요!!”하며 소리를 높였다. 웃고 있는 아들의 그림자가 더욱더 길게 늘어졌는데 어이없게도 갑자기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머리 위로는 일몰의 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어쩌자고 또 이런 일몰이란 말인가. 어찌하여 또 이토록 아름다운 것인가.
나는 지금 남편한테 화를 내고 싶은데 해를 등지고 서 있는 남편의 어깨를 보자 자꾸만 마음이 풀리려고 했다. 머리 위의 일몰이 ‘어차피 이유도 기억도 나지 않는 다툼이지 않느냐’하며 나를 설득하려 들었다. 그러나 그 일몰은 남편에게도 같은 일몰이었던 것인지 며칠째 내게 냉랭하던 남편이 갑자기 어깨를 감싸 안으며 카메라를 들이댔다. 사진 찍자, 하더니 내가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셔터를 눌렀다.
하늘이 구름 사이로 새어 나오는 일몰의 빛을 어찌하지 못하듯, 내 입가로 새어 나오는 웃음을 나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또 한 번 천년의 사랑을 맹세해야 하나, 하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겹겹의 구름 위로 다채로운 빛깔의 일몰이 펼쳐지듯 겹겹의 찰나 속으로 지나쳐 온 일몰들이 보라카이 바다 위에 펼쳐지고 있었다. 돛단배 날개에 걸쳐놓은 다리를 쭈욱 뻗어 바다에 발을 담갔다. 하늘빛이 반사되어 붉게 물든 바닷물이 발끝에 닿아 간지러웠다. 언젠가는 바로 지금 이 순간도 그 찰나들 속으로 겹쳐지겠지. 발끝에 닿은 바닷물이 바로 옆에서 하늘과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남편의 시선에 부딪히며 찰랑였다. 그 감각들이 나를 더욱더 몽롱하게 만들었다. 바닷물이 튀어올라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을 끈끈하게 붙잡았다. 그 느낌 또한 아련하면서도 좋았다. 이렇게 지나쳐가구나. 이렇게 흩어져가구나. 그리곤 어딘가에 고여있겠구나.
또 이런 일몰을 볼 수 있을까. 코 끝이 시렸다.
고개를 더욱 뒤로 기대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은 눈앞에 펼쳐진 이 오렌지 빛이 인생 일몰이다.
가끔이라도 이렇게 하늘을 보며 앞으로 살아갈 삶의 단락단락에서 인생 일몰을 만나보자는 다짐을 했다. 수평선 너머로 기울어진 해의 흔적과 점점 짙어지며 내려앉는 어둠 사이에 시선을 둔 채 변해가는 보라카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순간이 안타까워서, 확실히 조금 슬프기까지 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