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나무 잎사귀는 누가 고이 오려 놓았나

by 수경

백합나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나무의 모양이나 꽃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면 참 다행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백합나무는 플라타너스나 느티나무처럼 친숙한 나무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백합나무는 도시 아파트의 화단과 공원, 가로수로 자주 볼 수 있는 나무입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백합나무가 많은 나무들 중에서도 가장 키가 큰 나무로, 멋스럽고 늠름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백합나무는 꽃이 백합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튤립을 닮아서 튤립나무라는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꽃잎에 주황색 반점을 달고 항아리처럼 끝이 동그랗게 말리는 황록색의 꽃은 백합보다는 튤립에 더 가깝지만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백합나무가 정식 이름으로 되어 있습니다.



백합나무는 두드러진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우선 줄기가 휘지 않고 굴곡도 없이 큰 키를 수직으로 뻗은 수형이 인상적입니다. 큰 키를 이루는 줄기는 장인의 손길이 작은 조각칼로 한 땀 한 땀 새긴 듯이 세로 줄무늬가 아래에서 위까지 가지런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백합나무의 큼직한 잎은 한 번의 힘을 가해 가위로 오려놓은 듯 깔끔하고 정갈한 모양을 한 채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처음엔 누가 저렇게 단정하게 오려놓았나 싶을 정도로 백합나무 잎을 신비롭게 바라봅니다. 이어서 대왕참나무 잎사귀는 더 신비롭고, 당단풍나무의 아홉 갈래와 결각의 톱니는 더 신비로워 손으로 오리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에 미칩니다.



그러자 한 톨의 작은 씨앗에서 초록과 검정 무늬의 단단한 껍데기를 쓰고 태어난 수박이나 멜론도 경이롭기는 마찬가지. 우리 부모님의 작은 씨앗에서 '나'라고 하는 존재가 자신만의 개성을 입고 나고 자라며 살고 있는 모든 것이 신비로워 마침내 '신비' 논쟁을 멈추어 버렸습니다. 이렇듯 식물의 정교함과 아름다움을 들여다보면, 점점 더 많은 생명이 경이롭게 다가옵니다.



누가 의도적으로 가위와 조각칼을 들고 잎사귀를 오리고 줄기의 무늬를 새긴다면 세상에 이처럼 힘겹고 고단한 일이 또 있을까요? 백합나무는 백합나무대로 단풍나무는 단풍나무대로 그리고 저는 저대로 타고난 저의 천성을 알고 그 길을 잘 닦아 살아갈 때, 마치 백합나무 잎을 마주하고 백합나무 줄기의 조각을 경이롭게 만나는 것처럼, 삶에서 새로운 신비와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대다수 나무의 겨울눈은 마치 기왓장이 지붕을 덮은 듯이 비늘조각으로 덮여 있고 그 속에 어린잎들이 돌돌 말려 있습니다. 그러나 백합나무는 겨울눈이 서로 맞붙은 두 장의 비늘잎 속에 들어 있다고 합니다. 봄이 되어 속에 있는 눈이 부풀어 오르면 두 장의 비늘잎은 조개가 입을 열 듯 벌어지면서, 속에서 책처럼 포개진 두 잎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백합나무는 화석을 통해, 백악기 때부터 존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구의 역사는 약 46억 년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지구의 역사인 지질 시대는 시간대별로 선캄브리아 시대에서 고생대를 거쳐 중생대와 신생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신생대의 가장 마지막 시기인 제4기에 해당합니다.



백악기는 중생대의 마지막 시기로, 공룡이 마지막으로 살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백합나무와 같은 원시적인 꽃 식물이 번성하였습니다. 백합나무는 공룡과 함께 살면서 빙하기와 기후변화 속에서 수많은 종이 사라진 가운데에서 살아남은 '살아 있는 화석'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은행나무나 메타세쿼이아만큼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과거 화석으로 남아 있는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거의 같아서 학자들 사이에서는 고대 식물로 인정받고 있다고 합니다.



대구시에서는 예전 대구역 맞은편에 있는 대우빌딩에서 동성로 예전 중앙파출소가 있던 자리까지 대략 760m의 구간에 백합나무 41주를 식재하였습니다. 이것은 2009년 대구광역시와 중구청이 '대구 동성로 공공디자인 개선 사업'을 시행하면서 단순한 쇼핑 거리에서 벗어나 문화 공연과 휴식이 가능한 복합 문화 공간을 조성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대구시는 백합나무와 함께 야외무대와 벤치 등을 비치하고 '걷고 싶은 명품 거리'를 조성하였습니다.



최근에 백합나무를, 동성로 일대를 걸으며 휴식이 필요해 두리번거리던 차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대구매일신문 앞의 가로수에도 백합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동대구역 신세계백화점 앞의 도로변에도 백합나무 가로수가 서 있는 것을 기억합니다. 백합나무가 대기 오염에 대한 저항은 좀 약한 편이지만 도시 환경에 건강히 잘 적응하고 있어 다행입니다.



강산이 변하는 시절을 지나오며, 젊은 날 우리들의 약속 장소가 되어주던, 북적이던 대구백화점도 문을 닫은 지 오래되고 제일서적도 사라진 지 오래된 현실이 쓸쓸함을 더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큰 키에 멋진 잎사귀를 두르고 서 있는 늠름한 백합나무의 말을 들었습니다.

"타고난 너의 모습을 잊지 말고, 시대에 적응하면서 용기 있게 살아가렴"

백합나무는 잎들이 부딪치는 소리로 전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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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5월 말에서 6월에 핀다.출처:식물백과사전
동성로가 걷고 싶은 명품 거리로 재도약하면서 식재된 백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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