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학기에 1학년 아이들 세 명이 방과 후 뿌리튼튼교실에서 함께 공부를 하였다. 한글 읽기가 거의 되지 않는 다문화가정의 여자 아이 한 명과 한글 자음과 모음이 만나 소리를 만들어내는 원리를 이해하는 다른 다문화가정의 여자 아이 한 명, 그리고 받침 있는 글자 외에는 문제없이 낱글자를 읽을 수 있는 남자아이 한 명이 방과후교실의 구성원이었다.
지난봄과 여름 동안, 나는 줄기차게 그리고 끊임없이 반복해서 한글 모음과 자음의 소리를 가르쳤다. 교실에서의 본수업이 아무리 놀이를 겸해 여유롭게 진행된다 해도 배움의 양은 한 학기를 보내는 동안 놀라울 정도로 많아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선 읽기가 가장 시급했다.
모음자의 소리를 가르치고 자음자의 소리를 가르친 뒤 이 둘의 조합에서 글자를 읽게 했다. 그전에 모음과 자음을 소리 내면 그것을 공책에 받아쓰게 하는 연습도 무수하게 했다. 하지만 1학기가 끝나갈 무렵에도 '디귿'과 '미음', '비읍'과 '지읒' '치읓' 그리고 ㅋ, ㅌ, ㅍ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 아이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은 아이들이 천진난만함을 전혀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염려와 걱정으로 2학기가 시작되었다. 여전히 낱글자 '디귿'과 '비읍'을 헷갈려하고 힌트를 줘야 비로소 글씨를 쓸 수 있지만 2학기마저 한글 자모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 지난봄과 여름을 거치는 동안, 한글 자모는 아이들의 머리를 빼곡하게 채울 만큼 기억의 흔적으로 남게 될 것을 알고 그것을 내가 믿기 때문이다.
이제는 짧은 생활글이나 흥미로운 이야기와 재밌는 동화가 실린 국어문제집을 읽은 후 해답을 찾는 공부를 하고 있다. '비읍'하고 부르면 바로 글씨를 쓰지 못할 때가 많지만, 더듬거리는 문장을 느리지만 용케 잘 읽어가고 있다.
어떤 때는 눈을 감게 하고 글을 들려준다. 그런 후 한 문장씩 돌아가면서 소리 내어 읽기를 세 번씩 반복하는 때도 있다. 세 번 읽은 짧은 글에 대한 내용은 문제를 푸는 동안 어딘가로 달아나고 도망간 내용들을 살며시 다시 불러 모아야 할 때도 여러 번 있다. 그러면 이제 쉽게 문제가 해결된다.
한 알의 대추가 한여름 땡볕을 받으며 속을 채웠듯이 아이들도 올여름의 불볕더위를 견디며 속을 채웠을 것이다. 때론 시간을 그저 보내는 것이 속을 알차게 채우게 되는 때가 있다. 하물며 우리는 지난봄과 여름에 얼마나 야무지게 한글 자음과 모음을 씹어 삼켰던가. 아이들의 읽기 능력은 놀라울 정도로 좋아지고 있다. 더불어 천진난만은 잃지 않고 자신감은 붙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열심히 달려온 봄과 여름의 시간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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