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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지붕 B사감 Apr 30. 2024

그래도 네 개의 자격증은 남았습니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구인 구직 사이트를 연다. 새로 게시된 일자리는 없어 보인다. 지역을 바꿔가며 샅샅이 살펴본다. 이런, 지난 2월에 원서를 접수한 기관에서 다시 채용공고가 올라왔다. 서류 단계에서 바로 탈락한 곳이었다. 새로운 공고를 살펴보니 집에서 40여 분이 걸리는 곳, 한 번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곳에 근무지가 있었다. 지난번에 면접에조차 부르지 않았는데 또 원서를 내면 기분 나빠하려나? 기억이나 할까? 남의 사정 살필 때가 아닌데 이런저런 생각으로 맘이 내키지 않는다. 반일제 오후 4시간 근무에 임금은 최저임금보다는 높다. 다른 사회복지 기관과 비교하면 훨씬 높다고 할 수도 있다.

      

신도시라는 이름으로 조성된 동네로 이사하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아파트나 관공서의 건물 한쪽에 어김없이 돌봄센터라는 이름의 공간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곳은 아이들을 위한 장소인 동시에 일하는 부모들을 위한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한동안 취업에 대해 심드렁한 상태로 오랜 시간 동안 관심을 끊고 있어 새로운 일자리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지나치고 있었는데 어쩌면 관련 분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채용 사이트도 다시 기웃거려 보게 되었다. 이 분야의 복지사업은 시작한 지 몇 년 되지 않았고 새로운 도시가 조성될 때마다 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몇 개월 만에 각성한 듯 지원서를 제출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자격증 4총사 중 세 개의 자격 요건을 한꺼번에 내세운 공고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물론 자격증보다 우선으로 하는 채용 요건들이 있을 것이라고 냉철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좋은 카드를 손에 쥐고 있는 것 같았다. 가능성이 눈앞에 성큼 다가오는 느낌마저 들었다. 삐사감이 소지한 자격증을 굴비처럼 하나로 묶어서 필요로 하는 기관이 있다는 게 신기하고 반가웠다. 이번 채용 사이트에는 지원자 현황을 알려주는 데이터가 없어 조금은 편한 마음이기도 했다. 

    

그전에 작성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열어 기관의 사업 내용을 참조하면서 수정하고 제출하자 이틀 후 면접에 오라는 연락이 왔다. 이번 채용 전형은 신속하게 진행되어 서류제출과 면접, 채용 결정까지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는 일정이었다. 매번 준비하는 과정에서 들뜨던 기분과 낙관적인 기대는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 눈 깜짝할 사이에 거품처럼 사그라졌다. 완만한 산을 타고 내려오듯 감정이 서서히 식어가면 좋으련만 뾰족한 산 정상처럼 고조되었던 감정은 급한 경사면을 타고 내려오면서 쓸데없는 어두운 마음마저 함께 데리고 오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만가지 쓸데없는 상상을 차단해 주는 채용 과정의 속도감이 매우 맘에 들었다. 

    

덤덤한 마음을 유지하려고 사업 내용이나 기관의 정보에 대해 미리 알아보지 않았다. 면접일은 오락가락하는 봄 날씨 속에서 유독 따듯해진 날이었다. 좀처럼 맞추기 힘든 날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입고 나온 재킷이 덥게 느껴졌다. 게다가 평생 뛰는 일이 없던 사람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뛰었더니 시야가 흔들리고 숨이 가빴다.  

    

버스가 지나가면서 보이는 동네 풍경은 신도시의 전형이었다. 잘 아는 카페와 화장품 가게, 편의점, 아이스크림 가게 등 어느 도시에서나 세트처럼 발견되는 상점이 보였다. 새롭고 독특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잘 지어진 학교와 관공서 건물, 사용감 없이 단정한 보도블록, 아직은 가느다랗고 빈약한 줄기를 가진 나무까지. 면접장과 근무지가 있는 건물마저도 새로 단장한 건물이라 새집 냄새로 가득했다. 면접장에 도착하니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무념의 상태에 빠졌다. 긴장감도 없이 자꾸 멍해지는 머리를 깨우며 넉넉하게 남은 시간 동안 제출한 서류를 천천히 읽었다. 

    

면접장에는 3인의 면접관이 자리했고 그들의 얼굴에서는 젊음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들의 나이를 특정할 수는 없었지만, 노인 요양사업에 이어 아동 돌봄 사업까지 확장하고 있는 조합의 대표들이었다. 너무 긴장한 탓일까, 너무 생각이 없어진 탓일까, 그들에 대한 엉뚱한 궁금증이 머릿속에서 마구 떠올랐다. 토요일 오후까지 면접을 위해 출근한 그들은 일에 만족하고 있을지, 일에 대해 어떤 기대를 하고 있을지, 이런 기관을 만들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역으로 물어보고 싶어졌다. 면접관의 ‘시작할까요’,라는 말에 간신히 정신을 되돌릴 수 있었다.

     

자기소개서를 정독하면서 면접 대기 시간을 착실하게 보낸 덕분에 크게 막힘없이 생각한 대로의 답변이 흘러나왔다. 20여 분의 시간 동안 세 명의 면접관은 각자 질문을 던졌고 중복되는 답변도 있었지만, 나름의 생각과 가치를 매우 솔직하게 피력했다. 문제는 과도한 솔직함에 있었다. 전공한 과목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해서 수업을 진행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다소 부정적인 내면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너무 오래된 지식을 끄집어내어 수업까지 준비하려면 새삼스럽게 엄청난 공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여과 없이 전달하고 만 것이다. 그것까지는 하기 싫다는 의미를 내포한 답변이 되고 말았다. 면접장에서는 발설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한 것이다. 면접관은 조심스러우나 단호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바꾸며 이렇게 얘기했다.

     

“실례되는 말이지만, 자신 있게 할 수 있다고 대답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비록 본인이 할 수 없는 일이라도 우선 그렇게 말하는 게 면접장에서는 맞을 것 같아요.” 

    

실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이 당락을 결정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다. 산책길에 면접 후기를 전해 듣던 아이가 어떻게 그런 대답을 할 수 있었냐며 어이없어했다. 면접을 마친 이후에 가벼웠던 마음이 그제야 왜 그런 돌발적인 답변이 튀어나왔는지 생각하느라 골똘해졌다. 취업이 절실하지 않아서, 어차피 안 될 것 같아서, 갑작스러운 면접이라 당황해서…. 도대체 어떤 마음에서 그랬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복잡하고 복합적인 심리가 소중한 취업 기회를 날렸는지도 모른다.

     

완전히 기대를 놓지 않을 정도로 면접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지만, 예상대로 완곡한 거절의 통보를 받았다. 면접관으로서는 일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모든 질문에 당당하고 이성적으로 잘 대답하던 면접자가 어떤 특정한 사안에 대해서 적극성은 고사하고 자신 없는 반응을 보임으로써 모든 장점은 잊히고 부정적인 태도만을 각인시킨 결과를 낳았다. 

     

면접 피드백을 요청해 보았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친절하게도 장문의 문자가 도착했다. 면접관의 지적 사항 중에 다른 사람과 혼동한 흔적이 보였지만 대체로 정황상 맞는 피드백이었다. 채용을 고려하였으나 자신감 없는 태도가 결정적인 당락의 요인이었다는 뼈아픈 답변이었다. 판에 박은 위로의 문장일지 모르지만 ‘채용을 진지하게 고려할 정도로’라는 말과 ‘워낙 경쟁자가 많았으니’라는 문장이 눈에 띄었다. 물론 답변의 진위를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그의 답변은 속절없이 솔직했던 시간을 회상시켰다. 후회하게 했다. 

     

또한 불합격을 알릴 때 들어가는 관용구, ‘부족해서 채용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마시라’는 말에 이번처럼 확실히 부족한 부분을 인식하게 된 적이 있었나 싶어 자책이 밀려왔다. 그래도 생애 최초로 면접 피드백을 받으면서 잘잘못이 또렷해져서 절벽에서 곧장 떨어지는 것 같이 절망적이지 않았다. 서로 아름다운 격려와 인사를 주고받으며 문자를 끝냈다.


사진: https://instagram.com/js_vfinder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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