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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지붕 B사감 May 08. 2024

효율 지상주의자가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다시 배우는 것도 전혀 괜찮습니다!

재작년 겨울, 다이소에서 천 원씩에 사들인 뜨개실로 목도리를 만들었다. 아주 쉽게 떠내려갈 수 있는 겉뜨기로 만든 목도리는 작고 평범했다. 뜨개질은 겨울이면 우울해지는 마음을 달래기 위한 심심풀이로 시작되었고 완성된 목도리는 겨울의 쓸쓸한 정서를 충분히 덜어냈다. 목도리는 하나였다가 금세 둘이 되었다. 나중에는 회색, 갈색, 겨자색, 진청색 등을 혼합해서 다섯 개의 목도리가 탄생했다. 실이 모자라 미처 완성하지 못한 반쪽짜리 목도리가 아직도 실을 늘어뜨리고 서랍 구석에 남아있을 정도로 그해 겨울에는 목도리를 밤새도록 만지작거렸다. 아직 순진하고 어려서 주는 대로 몸에 걸쳐주는 조카에게 한 개를 주고도 과하게 많이 남은 것은 아이와 삐사감이 짧게 산책을 나설 때마다 목에 감쌌다.

    

이때 활용한 뜨개질법은 고작 해봤자 겉뜨기, 실 바꿔서 뜨기, 올 마감하기 정도이다. 팟캐스트를 듣거나 음악을 들으며 같은 손동작을 몇백 번 반복하면 조금씩 면적을 불려 가며 완성되어 가던 목도리를 보는 것이 좋았다. 비록 아가일, 꽈배기같이 멋들어진 문양이 없어서 단순하고 밋밋해도 무덤덤하게 똑바로 실이 엮인 모습이 맘에 들었다. 거기서 그냥 멈춰 버린 뜨개질 기술은 새로운 시도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줄곧 겉뜨기만 반복하던 손은 조금 더 복잡해진 과정이 나오면 헤매다가 자신 없이 멈춰서 버렸다.

    

토끼 인형을 만드는 강좌를 신청하면서 생각했다. 그래도 엄마 옆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시간이 있는데 어렵기야 하겠어. 다른 사람보다야 잘하겠지. 엄마가 뜨개질로 만든 옷을 아주 어려서부터 줄곧 입었다. 그 시절엔 정성을 다한 옷을 아이에게 입힌다는 생각보다는 절약의 방편으로 옷을 만들어 입혔을 것이다. 조끼, 바지, 카디건, 모자 등을 자매가 나란히 맞춰서 입다가 옷이 작아지면 풀어서 다시 크게 만들어 입었다. 엄마는 도안이 없어도 코를 자유자재로 늘이고 줄이고 꽈배기, 다이아몬드 문양을 넣어가며 옷을 완성했다.

     

그렇게 이삼일이면 옷 하나를 뚝딱 만들어 내는 것을 보고 별거 아닌 일이라고 착각했다. 손가락이 저릿하고 눈이 침침해지며 어깨가 무거워지는 일이라는 것은 나중에 직접 해보고야 알았다. 줄이고 늘이는 등 몸 크기에 맞춰 콧수를 조절하는 쉽지 않은 일을 대충 보고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 버린 것이다.

    

토끼 인형 만들기에 등장하는 기술은 다음과 같다. 코잡기, 코 늘이기, 코 줄이기, 단춧구멍 만들기, 끝단 마감하기, 이어 붙이기, 얼굴에 수놓기. 정작 수업에 들어가니 겉뜨기, 안뜨기, 코잡기 이외 생전 처음 해보는 바느질법 앞에서 사정없이 헤매기 시작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나마 자신 있다고 멋대로 생각하던 기초적인 기술도 정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 이것이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의 한계인가.  

   

겉뜨기, 안뜨기부터 차례대로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실을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감아야 하는지 익히고 제멋대로 내키는 대로 손을 놀렸다간 미묘하게 모양이 달라지는 것을 살피면서 한 단씩 차곡차곡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옆의 사람이 짜놓은 직물의 크기를 의식하여 빨라진 손길은, 코를 빼먹고 순서를 뒤틀고 결국 더 늦어지게 만들기 십상이라는 것도. 어느 날 밤에는 실타래를 푸는 데 1시간이 걸렸다. <변신>을 오디오북으로 틀어놓고 천천히 풀어보리라 생각했던 실타래에서 실마리는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오늘에서 내일로 이미 넘어섰는데 아직도 서로 엉켜버린 실을 바라보다 아무 데나 끊어버릴까 싶은 충동이 일었다.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 것을 다시 처음으로 돌려 배우기 시작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막연하게 대충 알고 있던 부분이 명확해졌다. ‘겉뜨기’를 왜 ‘겉뜨기’라고 하는지, 이름을 그렇게 붙인 데에는 이유가 있었고 그것을 제대로 알고 나니 헛갈려서 도중에 다른 길로 빠지는 일이 적어졌다. 철저해지지 못했던 시간도 뒤돌아보게 되었다. 앞으로 더 나가는 데 필요한 노력과 고통을 회피하고 슬쩍 맛만 보면서 그 자리에 머무르던 지난날의 안일함이 지금의 실력을 규정한 것이었다. ‘아가일’과 ‘꽈배기’를 꿈꾸지 않았고 그래서 '하지 못하는' 지금의 자신이 있었다.   

  

겉뜨기와 안뜨기로 기본적이고 단순한 직선의 직물을 만들면서도 만족하는 삶이 있다. 만약 그것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무늬의 직물을 원한다면, 그런 인생을 원했다면, 색색의 실타래를 준비하고 서로 교차하면서 문양을 만들어내는 번거로움을 기꺼이 하며 콧수를 줄이고 늘이면서 곡선도 만들어봐야 했다.  

   

토끼 인형을 만드는 사람 중에는 뜨개질 자체가 생전 처음인 사람도 있었다. 이미 고수의 냄새를 풍기며 저만치 앞서나가는 사람도 물론 있었다. 토끼의 다리를 거쳐 겨우 몸통을 뜨다가 바라본 옆자리에서 토끼 서너 마리를 이미 완성해 가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보자니 환장할 지경이었다. 이렇게나 각기 다른 경험과 수준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지만 모두 한마음으로 토끼의 눈을 붙이고 코를 수놓고 귀와 팔을 만들어 달아주는 농밀한 시간을 보냈다. 차라리 처음 뜨개질을 알게 된 사람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대로 배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과거를 후회했지만, 이제라도 되돌아가는 길이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겉뜨기만으로 완성한 목도리. 경제적인 소비로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최소 시간으로 최대 결과를 보려던 효율 지상주의자는 주야장천 목도리만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던 시간을 부정하거나 후회하지는 않았다. 다만 지금이라도 새롭게 알게 된, 천천히 갈 수밖에 없는 시간의 효용에 대해서도 눈을 돌리게 된 것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다만 토끼 인형이 점점 늘어나는 상황을 경계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어느새 각기 다른 모양과 색을 가진 동물 인형들이 책상에 나란히 놓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취업, 재취업, 그리고 긴 경력 단절을 거치는 동안 한 번도 세상의 잣대를 의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결혼, 출산, 육아, 그리고 착실한 전업주부로서 해야 할 역할도 신기하게 세상 기준에 맞춰 과업을 성취해 왔다. 별다른 불만이나 의심도 없었다. 그런 선택이 마냥 편했고 많은 고민 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모든 행동의 원천은 효율성에 있었다. 시간적, 금전적으로 손해가 없고 허투루 우회하는 길로 가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이 지상 목표였다. 그런데 요즘 효율이 무엇이었는지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우회하는 것’, ‘천천히 가는 것’이 의미하는 것이 단순히 느린 속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이제야 깨닫게 된다.   

  

토끼 인형 같은 걸 왜 만들고 있냐고 물어온다면 ‘효율’이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하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시간을 단축해서 뭔가를 성취해 내고 금전적인 여유를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머리를 짜내야 했던, 그렇게 인생을 보내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으로 의심하지 않았던 시절에서, 각박하게 살아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뼛속 깊이 각인되어 있었던 시간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이제 효율, 고부가가치, 속절없이 확장되는 욕망의 반대편에 서서 느긋하게 토끼 인형을 완성할 수도 있겠다.


사진: https://instagram.com/js_vfinder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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