没事의 세계
한국에서 가족들이 왔다. 예상보다 더 덥고 습한 날씨에 놀라고 화려한 건물과 잘 뚫린 도로, 거대한 시설에 놀랐다. 생각보다 멋진 정원을 가진 중국 아파트에도, 원형 테이블을 돌려가며 호탕하게 웃고 떠들면서 식당을 가득 메운 대륙 사람들에도, 그리고 그들 손에 자연스럽게 들린 담배에도 놀랐다. 예상보다, 생각보다, 기대 이상, 이라는 의외의 반응을 보이다가도 아직도, 여전히, 역시, 라는 말을 뱉어냈다. 보통 사람들처럼 중국을 낮춰보던 가족의 이 나라에 대한 불호의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놀라고 또 놀라고 그러고도 놀랄 일은 넘쳤다. 많은 한국 사람이 선택하는 대로 홍콩과 마카오에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여행하는 날 아침 또 한 번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마카오로 가족과 향하던 아침, 택시 여러 대를 한꺼번에 잡을 수 없어 흑차(黑车)를 불렀다. 한자 그대로 읽으면서 뭔가 다크하고 멋지고 시크한 느낌이 들지만 정식 사업 등록을 하지 않고 운행되는 차량이다. 택시보다 비싸지 않은 경제적인 가격에 원하는 장소까지 와서 픽업해 주는 검은 차는 몹시도 더운 이 지역 날씨에 제격이었다. 거리에 나가는 순간 보송보송한 피부를 한방에 척척하게 만드는 이 도시의 길가에서 택시를 잡느라 출발 전부터 땀을 빼내야 하는 우리를 구하는 작은 오아시스였다.
검은 차는 전화 예약제로 원하는 장소, 시간 등 고객의 니즈에 정확하게 맞춰주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물론 검은 차 호출이 폭주하는 시간에는 전화를 돌리고 돌려도 잡을 수 없어 난감할 때도 있다. 그래서 여러 번 이용하면서 친분을 쌓아둔 기사들의 연락처를 미리 확보해서 요긴하게 쓰는 것이 중요했다.
그날, 마카오행 페리 선착장에 가기 위해 세 대의 검은 차를 불렀다. 그나마 점잖게 운전하는 기사와 아무리 부탁해도 괜찮아(没事, 메이실)만 반복하는 기사가 골고루 섞인 조합이었다. 연한 갈색으로 염색하고 몸에 단단히 붙는 청바지를 자주 입는, 왠지 더위를 전혀 타지 않는 것 같은 기사도 그중에 있었다. 그는 운전도 입도 거친 사람이었는데 그 차에 탄 가족들은 색다르고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되었다. 사람도 말도 설은 외딴 도시에서 아무리 안전벨트를 고쳐 매고 손잡이를 부여잡아도 놀이공원에서 바이킹을 타는 것보다 더 긴장되고 진땀 나는 경험이었다는.
페리 선착장에 약간의 시차를 두고 도착한 차량에서 내리는 가족들의 얼굴은 묘한 웃음으로 가득했다. 뭔가 어이없고 허탈한, 드디어 무사히 안전지대에 도착했다는 안도의 웃음이랄까. 특히 아버지는 내리자마자 크게 웃으면서 칭찬 아닌 칭찬을 하셨다.
"운전이, 빠르긴 하네. 허허헛......"
서울만큼의 인구를 품은 새로 조성된 이 도시는 어디에라도 사람으로 넘쳐난다. 시원하게 쭉쭉 뻗은 넓은 도로를 달리는 다양한 차량도 사람들만큼 많았다. 차가 달리는 도로 사정은 어떠했을까.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풍경이 자주 목격되었다.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나 차도를 횡단하는 보행자나 당시 한국과 비교하면 어머 어머, 왜 저래, 라는 탄성이 터져 나오는 장면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이 나라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며 상대적으로 우월한 감정이 든 것도 사실이다.
도시로 처음 나온 농민공이 많아서였을까. 도로를 횡단하는 사람은 지나치게 과감해서 쌩쌩 달려대는 차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가며 8차선, 10차선 도로를 건너갔다. 운전자들은 앞에 차가 있는 꼬락서니를 보지 못하겠다는 듯이 좁은 차 사이로 갈지자를 그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렇게 위험한 도로 상황이 그래도 중국에서는 아주 양호한 상황이란다. 이유는 이 도시의 교통법규가 다른 어떤 도시보다도 엄격해서 범칙금이 세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선전이 중국의 그 어디보다도 훌륭하다면 다른 지역 사정이 어떠할는지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놀라고 겁나는 일도 횟수를 거듭할수록 익숙해지고 태연해지고 당연해지는 법이다. 도시를 점령한 폭스바겐 빨간 벽돌색 택시를 타면 처음에는 너덜너덜한 노후 차량에 놀라고 차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운전자의 폭주에 놀라게 된다. 그저 할 수 있는 말은, '너무 빨라요, 조금 천천히 가주세요', 아이같이 유치하고 짧은 단어로 겁에 질려 겨우 말하는 외국인을 호탕한(무모한) 대륙인은 흐뭇하게 웃으면서 무시한다.
메이실(没事)!!
대충 문제없어, 괜찮아, 별거 아니야 등 여러 가지 상황에 휘뚜루마뚜루 쓰이는 이놈의 ‘메이실’이 또 나올 차례다. 안전벨트를 다잡아 매고 무사 도착을 기도하는 경건한 마음이 된다. 마침, 다른 도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탑승 한국인이 모두 사망한 비보를 접한 뒤라 긴장감이 더해간다. 하지만 그들은 변하지 않는다. 승객의 요청 따윈 웃음과 무반응으로 묵살된다. 처음에는 뭔 일이 일어날까 싶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저절로 ‘메이실’이 옮아왔다. 마법의 주문, ‘메이실’은 그곳에 사는 동안 천만번도 넘게 들었고 나중에는 자신의 입에서도 튀어나오게 되었다.
중국인들은 이러이러하다고 단정적으로 일반화해서 말할 수 없다. 또한 중국의 **은 이러이러하다고 한 문장으로도 절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한동안 잠시 머물렀던 도시와 그곳에서 만난 사람, 에피소드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도 물론 곡해될 여지가 있고 언어가 자유롭지 않은 외국인의 짧은 식견으로 말하는 단편일 뿐이다. 과연 중국인에게 没事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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