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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젠틀우먼 02화

02 복직 심사

“왜 요즘 미친놈들은 전부 종교가 있죠?”

by 김은주

여자는 태어난 지 백일도 안 된 아기를 때린 남자를 옹호하는 중이었다. 희주는 뱃속에서 뭔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것 같아 오른쪽 눈썹 위에 붙인 밴드 아래에서 뛰고 있는 맥박 소리에 집중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나온 여자는 빔 프로젝터 리모컨을 조작해 회의실 스크린에 사진을 띄웠다. 병원 응급실 CCTV 동영상을 캡처한 사진이었다.

“정희주 경위님.”

여자가 입을 열었다.

“네.”

희주는 짧게 대답했다. 그날 이후로는 휴대폰 전화벨만 울려도, 누가 이름만 불러도 살갗에 소름이 돋는다. 단조로운 멜로디의 전화벨에도 자지러지는, 세상에서 가장 하찮은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은 덤이다.

“피해자는 우측 광대가 함몰되고 눈가가 찢어져서 실명할 뻔했습니다.”

여자는 그 남자를 ‘피해자’라고 지칭했다.

“고막도 심하게 다쳤고 오른손 검지, 중지가 부러졌습니다. 회복까지는 최소 한 달 이상 걸릴 겁니다.”

사진 여러 장이 스크린 위로 빠르게 등장했다. 총 다섯 장의 사진이었다. 희주가 남자를 향해 주먹을 뻗는 순간부터 주먹에 맞은 남자가 얼굴을 감싸 쥐고 응급실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장면, 너스 스테이션의 간호사들이 놀라 손으로 입을 가리는 장면까지. 마지막은 남자의 망가진 얼굴 사진과 깁스를 한 오른손 사진이었다.

“한밤중 병원 응급실에서 형사가 시민을 때린 최악의 사건을 보도하는 뉴스 하이라이트에 쓸 법한 순간을 제대로 골라 내셨네요.”

응급실에서 그 남자를 처음 보았던 때를 떠올렸다. 행색이 거칠고 남루했다.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얼굴이었지만, 눈빛이 이상했다. 형용할 수 없는, 푸르기도 하고 검기도 한 눈동자의 광채가 무엇인가 어긋나고 틀어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여자가 화면에 띄운 사진 속 남자의 눈은 제법 선량해 보였다. 지하철, 백화점, 마트 어디에서나 마주칠 법한 누군가 남편,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아들. 순간 죄 없는 시민을 때린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또다시 뱃속에서 뭔가가 울컥하고 목울대를 쳤다.

“뭐 느껴지는 거 없으세요?”

여자는 잠시 말을 멈추고 희주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저 손을 못 쓰게 되면 제 얼굴을 기억했다가 찾아와서 저를 죽여 버리겠다고 했습니다. 무섭네요. 정말로 찾아올까 봐.”

여자는 한숨을 쉬면서 스크린 전원을 껐다.

“이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몇 명인 줄 아세요? 기사화가 크게 되는 바람에 저희 쪽 담당자가 욕설 섞인 전화를 하루 종일 받아 내느라 곤욕을 치렀어요. 경위님의 경솔한 행동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듣지 않아도 될 비난을 받았습니다.”

털털거리며 돌아가는 구형 에어컨이 신통치 않아 공기에서 걸레 냄새가 났다. 회의실에는 시민을 때린 정희주 경위와 국가인권위원에서 나온 여자, 희주의 상관이자 강남경찰서 강력6팀 팀장 오치상까지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희주는 유난히 좁고 에어컨 성능이 후진 회의실을 심사 장소로 잡은 오치상을 노려보았다. 저 여자한테 동정심이라도 유발해 보라는 건가. 이렇게 낙후된 환경 속에서도 시민의 안녕을 위해 뺑이 치는 형사의 실수 따위는 좀 넘어가 달라고 애걸이라도 하라는 건가. 젊었을 때 범인을 잡다가 부러졌다던 오치상의 콧잔등 가운데가 툭 불거져 있었다. 그 코가 왕년에 좀 날리는 형사였다는 분위기를 더했다. 그 나이쯤 되면 옆으로 몸집이 퍼지는 팀장들에 비해 오치상은 50대 후반인데도 몸집이 탄탄했고 허리띠 위로 늘어진 뱃살도 없었다.

오치상이 월요일 아침 댓바람부터 여기 앉아 있는 건 폭행죄로 정직 처분을 받고 오늘 복직 심사를 위해 3개월 만에 나타난 부하에게 힘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희주가 개소리를 지껄이지 않도록 감시하기 위해서다. 자신이 본청으로 발령이 나는데 하등 도움이 안 되는 독이 될 만한 이야기가 희주 입에서 나오지 않도록 말이다. 그래서 희주 옆이 아니라 인권위 여자 옆에 앉아서 압박의 눈빛을 보냈다. ‘허튼소리 하면 가면 안 둬.’ 오치상의 눈은 희주가 입을 열 때마다 그렇게 말했다. 널따란 운동장에 같이 있기도 싫지만, 이 좁아터지고 더운 회의실에서 더더욱 같이 있기 싫은 타입의 인간이다.

희주는 피로한 눈을 잠깐 감았다가 떴다.

“아직도 이런 충격적인 사건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걸 저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여자의 힐난에 희주의 표정이 변하자 오치상은 문제견을 다루는 개 훈련소 교관처럼 고개를 짧게 저으며 눈을 부라렸다. 차라리 대답을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혹은 헛소리를 지껄이면 독방에 가둬 놓고 싸구려 개밥도 안 주고 굶길 거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희주는 입을 열었다. 난 저 인간의 순종적이고 듬직한 셰퍼드가 아니니까.

“혹시라도 저 남자가 절 죽이러 집으로 찾아올까 봐 제 인권은 걱정되지 않으신가요? 물론 앞으로 3년 내에는 못 오겠지만요. 하지만 모르죠. 반성문을 매일 백 장씩 쓰는 모범수가 되어 더 빨리 나올지.”

“정희주 경위님.”

여자는 학생을 혼내는 담임처럼 딱딱하게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서류를 내밀었다.

“경위님의 정신과 소견서입니다. 읽어 보셨겠죠.”

“물론입니다. 하지만 제 상태는 제가 제일 잘 압니다.”

“저는 처음에 저 영상을 보고 경위님이 분노조절장애가 아닌지 의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니더군요. 대신 그 일 이후 심각한 수준의 폐소공포와 공황장애를 진단받았다고 주치의한테 전달받았습니다. 그 부분은 좀 어떠신가요? 정말 현장에 복귀해도 지장 없을 정도인가요?”

“그럼요. 약이 아주 잘 들어요. 효과가 아주 좋아요. 한 알만 먹으면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던 기분이 좀 나아지고, 한 알을 더 먹으면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전부 껴안아 주고 싶어지죠.”

여자는 말없이 희주를 응시했다.

“저는 다시 일하는 데 아무 문제 없는 상태입니다.”

“글쎄요. 그건 경위님이 판단할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아뇨. 충분히 제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정말 분노조절장애였으면 그 남자를 죽였을 테니까요.”

남자가 손톱으로 할퀸 오른쪽 눈가 위쪽 상처가 욱신거렸다. 다행히 큰 흉터는 생기지 않았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올라 희주는 집요하게 흉터를 살펴보곤 했다.

“오치상 팀장님과 강력팀 동료분들의 탄원서를 참작했습니다. 그분들께 감사하세요. 조건부로 업무에 복귀하시는 걸로 내부 협의했습니다.”

일단 결론이 났다. 어찌 됐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형사 생활은 거의 전부에 가깝다. 그 사실이 씁쓸할 때도 있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다행히 이 여자가 그걸 뺏어 가진 않을 것 같다. 희주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반드시 동료를 대동하고 현장에 나가셔야 하고,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안 됩니다. 정신과 상담은 계속하고 계시죠? 3개월 뒤에 폐소공포와 공황장애에 대한 재진단을 받아 주세요.”

희주는 여자의 모욕을 그냥 넘겼다. 똘기 넘치는 문제 형사의 기를 죽이고 앞으로는 좌우 양옆을 둘러보고 신중하게 행동하게 만들기 위한 전형적인 수순이니까.

“피해자도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반성하고 있습니다. 제가 매주 접견 중인데 신앙생활을 시작한 뒤로 마음이 편안해졌다며 신부님 말씀이 인생의 빛이라고 하더군요. 나가서는 새로운 삶을 살겠답니다.”

“…정말 기가 막히네요.”

“네?”

“왜 요즘 미친놈들은 전부 종교가 있죠?”

“그게, 무슨 말씀이죠?”

“정신이 제대로 박힌 나 같은 형사는 신 따위가 있을 리 없다고, 만약 있다면 아주 지독한 악마일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는데 왜 사이코패스 같은 놈들이 망할 신 따위를 운운하냐고요.”

여자는 팔짱을 낀 팔을 테이블 위에 올리고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요. 경찰도 함부로 폭력을 휘두르면 안 됩니다. 피해자가 어떤 짓을 저질렀던 간에요. 요즘은 그런 세상이에요.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 그땐 경위님이 그간 쌓아 온 업적이 아무 소용없을 거예요. 3개월 정직으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10여 년의 형사 생활을 굴욕 속에서 끝내고 싶진 않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저도 더는 경위님을 도울 수 없고요.”

그녀 딴에는 희주를 생각해서 한 말이었다. 지금까지 여자가 한 말 중에 유일하게 희주 입장에서 한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하지만 그 현실성이 희주의 심사를 긁었다.

“비틀스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어요.”

상황이 대충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자 오치상은 여자들의 이야기에 흥미를 잃고 휴대폰을 꺼냈다. 여자는 그런 오치상을 힐끗 보고 희주에게 말했다.

“living is easy with eyes closed. 두 눈을 감으면 사는 게 쉽다, 대충 그렇게 해석할 수 있겠네요. 인생의 많은 부분이 그렇습니다. 많이 살아본 건 아니지만, 적어도 제 경우엔 그렇더군요.”

여자가 바란 것은 어렵사리 경력을 사수하며 지금껏 버터 온 같은 여자로서의 공감이겠지만, 희주는 일격을 준비했다. 적어도 저 여자가 다시 아기를 때린 남자를 만났을 때 조금은 불편한 감정을 느끼길 바랐다. 당신이 두 눈을 감은 대가가 무엇인지 똑똑히 보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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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는 분노 담당입니다.”

“네?”

“살인, 강도, 성폭행. 범인의 목적이 뭐든 남는 건 그 처참한 장면을 보는 형사의 분노와 피해자뿐이죠.”

희주는 계속 말했다. 뱃속에서 시큼하고 뜨거운 분노가 관자놀이까지 단숨에 올라왔다. 머리에 붙은 벌레를 털어 내듯 머리를 흔들고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그 남자를 때린 이후 운전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남이 운전하는 차에 탈 수도 없었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하로 내려가지도 못했으며, 버스가 터널 안에 들어가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발작했다. 그날 이후로는 약 없이 외출할 수 없었다.

희주는 고개를 들어 회의실 천장 한구석에 생긴 거미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언제 저런 게 생긴 걸까.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자 여자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희주는 앉은 채 말했다.

“가해자에 대한 선생님의 직업적인 사명감은 무척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는 아시죠?”

여자가 테이블 위 자신의 노트북을 정리해 가방에 넣으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아동학대중상해죄로 3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사례입니다. 그리고 가정폭력 혐의도….”

희주는 빔 프로젝터 리모컨을 들었다. 그리고 리모컨으로 자기 머리를 톡톡 치며 말했다.

“그 남자는 TV를 보다가 옆에 있던 아기가 너무 시끄럽게 울어서 이걸로 세상에 나온 지 고작 3개월 된 아기 머리를 후려쳤습니다. 두개골이 깨지고 쇄골 양쪽이 두 토막 날 때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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