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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얼 Oct 24. 2021

출근버스


출근길 버스에 앉아 멍하니 밖을 보고 가다가 문득 생각했다. 나는 내년 이 시간에도 이 자리에 있겠지, 아마 5년 후에도 어쩌면 10년 후에도. 출근길 고속도로를 꽉 매운 차들 저 중 하나에 내가 있겠지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런 생각이 들자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좌석 버스는 창문을 열 수도 없는데 숨이 가쁘다. 벗을 수도 없는 마스크는 누가 내 코와 입을 손으로 틀어막은 것처럼 더 나를 조인다. 마스크를 잠깐 벗어볼까 만지작대다가도 이내 옆자리 눈치가 보여 관둔다. 답답하다 잠이 들려고 눈을 감아도 누군가 달려들어 내 가슴팍을 머리로 퍽퍽 치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은 콧등 위에 안경이 너무 거슬려서 코끝이 아리기 시작해 나중에 코 뼈가 으스러지는 기분이 들어 버스에 타자마자 안경을 벗어던져 버렸다. 또 어느 날은 신발이 발등을 짓누르고, 다른 날은 목까지 채운 단추가 숨통을 조였다. 그 언젠가는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이 너무 불같이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불 타오르는 두 손을 어찌할 도리가 없어 손을 바짝 들고 한 시간을 갔다. 한 겨울에도 땀을 뻘뻘 흘리는 날이 있고 한여름에도 오한에 덜덜 떠는 날이 있었다.


오늘도 버스에 타고 내리면서 생각한다. 내년 아니 내후년쯤에는 이 시간에 다른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해가 들이치는 창이 커다란 카페에 앉아 책을 읽어도 좋겠고 아직은 침대 속에서 뭉그적대도 좋겠다. 오 년이, 십 년이 지나도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지만.


다음 정류장 안내방송에 놀란 가슴으로 가방을 고쳐 매는 일이 이제 그만 끝났으면 하고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슥슥 빗어내렸다. 우수수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다. 가방 안에 소지품을 확인하고 닫아놨던 커튼을 열었다.

익숙한 건물들 사이에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짧은 심호흡을 하며 되지도 않는 소리를 속으로 삼켜본다.


'이번 정류장에서 안 내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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