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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얼 Oct 24. 2021

나의 이름은

마음의 병은 결국 몸의 병으로 번졌다. 이유 없는 두통과 복통으로 며칠을 앓다 억지로 밖으로 나왔다.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멍하니 이야기를 듣다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어 헐거워진 반지를 빙빙 돌렸다. 매일 끼던 반지가 어느새 헐거워져 손가락 사이에서 헛돌았다.


새끼손가락에 자리 잡은 작은 반지는 내가 많은 것을 잃고, 잊었던 때 나를 위해 샀던 유일한 물건이었다. 그때 나는 무언갈 잊지 않으려 여기저기 무언갈 적고 그려 댔다. 쓰고 그리다 못해 나는 내 몸에라도 무언갈 새기고 싶어 안달이 나있었다. 그러다 무작정 들어간 상점에서 살짝 붉은기가 도는 로즈골드에 아무 무늬가 없는 적당한 굵기의 반지를 골라 내 이름 중 한 글자를 새겨 넣었다. 그날 이후 한 번도 빼지 않고 반지를 끼고 다녔다. 그리고 자주 손을 맞잡고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알 수 없는 불안이 날 집어 삼키려들면 손가락을 꽉 쥐고 반지를 비틀어 아무것도 빠져나가지 않게 꽉 잠가버렸다. 나는 더는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다고 온 힘을 다해 손을 쥐었다.

사실 아무것도 잃지 않았고 무엇하나 잊지 않았지만 나는 누구에게도 빼앗길세라 무언지도 모를 것을 지켜내려 애쓰고 있었다.


서둘러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무언가 허전한 생각이 들어 정신을 차려보니 손가락이 휑하니 있었다. 방금까지 만지작대던 반지가 어느 틈에 손가락을 빠져나가버렸다.

값도 제법나가는터라 흠칫 놀라 오던 길을 되돌아갈까 하고 몸을 돌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돌아올 것 같다는. 진짜 내 것이라면 다시 다시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걸음을 돌렸다. 뭔 지모를, 근본 없는 이 믿음이 나를 안도하게 했다.


허전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집에 돌아와 가방을 열어보니 ‘반짝’ 반지가 빛났다.

그리고 반지를 다시 끼자 왠지 나도 곧 나를 다시 찾아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알 수 없는 믿음이 들었다.


뜻하지 않는 곳에서 나는 삶의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그제야

창밖에 날이 게 었다는 게 이제 봄이라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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