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위에 세운 도시'에서의 하룻밤
본섬에서 궁전다리를 건너 들어설 수 있는 바실리섬에서 첫 밤을 묵었다. 편하지만은 않은 잠자리였다. 침대에 누우니 진동이 느껴지기도 해서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하얀 시트 속에 파묻혀 고요 속에 접어들자 '뼈 위에 세워진' 이 도시의 첫 밤에 적절한 불편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00년 전의 그 역사, 그 그통, 그 슬픈 생들의 자취에 접어들어 있는 것이다.
푹푹 발이 빠지는 습지에 건물을 짓고 길을 닦기 위해서는 돌을 쏟아부어 토대를 만들어야 했다. 당시 이 지역은 평균기온 4도에 일조량은 30일 정도였다고 한다. 열악한 상황에서 가혹한 노동에 내몰린 사람들이 셀 수 없이 죽어 바로 이곳에 그대로 내던져졌다. ‘뼈 위에 세운 도시’라는 별명이 은유가 아니었다. 덜컹거리는 진동이 진혼곡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태어날 때부터 완벽하게 현실적인 욕망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발현이었다. 농익어 가던 서유럽의 바로크가 이 도시에서는 이미 성숙한 청년으로 태어났다. 이 도시에는 걸음마를 떼던 유년의 기억이란 없다. 저마다 흩어져 있는 수십의 섬들, 네바 강줄기에 몸을 맡긴 채 존재하던 섬들이 이어지고 메워져 대로가 되고 그지없이 근사한 건물들의 토대가 되었다. 수평선이 사라진 곳에 수평의 도시가 들어섰다. 태어나 자란 적이 없는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였다.
베르자예프는, 역사상 다섯 개의 서로 다른 러시아로 구분할 수 있다고 했다. 곧 키예프 지배의 러시아, 타타르 시대, 모스크바 시대, 표트르의 제국, 마지막으로 새 소비에트 러시아. 그중에 키예프 시대와 표트르의 제국, 그리고 소비에트가 태동하던 러시아를 얼핏 만나게 되는 순례다. 사도들의 자취가 아스라이 전해졌던 키예프, 그 원초의 믿음부터 놀라울 만큼 무수한 예술가들이 빛을 발했던 표트르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순례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914년에는 페트로그라드였고 그로부터 십 년 후에는 레닌그라드가 되었다가 다시 1991년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급변하는 역사의 한복판에서 이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도 많았다. 신영복 선생이 이 도시에서 발견한 것도 이 도시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이었다.
……이 도시에 대한 애정은 물론 이 도시에 묻혀있는 역사와 사람들에 대한 애정입니다. 그것은 단지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 유적에 대하여 가지는 자부심이 아니라 이곳에서 심혼을 불사르고 살다 간 수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삶과 예술을 함께 껴안는 애정이었습니다. 이러한 애정이야말로 모든 것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페테르부르크에 대한 애정은 페테르부르크를 모독하는 어떠한 전제와 침략도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때로는 혁명으로 역사의 무대에 솟아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80만 명의 목숨을 바쳐가면서 900일에 걸친 독일군의 포위를 견디는 저력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애정을 바칠 수 있는 도시를 가진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고 강한 사람들이라는 부러움을 금치 못합니다…….
무수한 별이 명멸하는 것처럼 무수한 이들이 오갔고 무수한 일들이 일어난 이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상처 입고도 품위를 잃지 않는 숙녀 같은 이 도시에서 강해서 더 슬펐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구한말 망국의 절통함을 끝내 통과하지 못하고 떠나고만 우리 옛어른들도 생각했다. 머나먼 러시아 땅까지 밟았던 이들,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와서 놀라운 세계를 목도하며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고심했던 선인들 생각도 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