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부활 성당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by 이아인

드디어 그리스도 부활 성당을 보았다. 저 놀라운 러시아의 쿠폴들. 코코슈니크 아치에 새겨진 섬세하고 정성스러운 모자이크들. 익숙한 이야기, 낯익은 존재들을 바라보다 내가 지금 동방교회, 러시아정교회 성당에 있다는 생각이 들자 불쑥 물음이 치솟는다. 대체 뭐가 장벽이 되는 거지?



IMG_7858.JPG 옥좌에 앉은 ‘영광의 그리스도’ 양옆의 성 니콜라오와 알렉산드르 네프스키는, 같은 이름을 가진 성당 봉헌 당시 황제 니콜라스 2세와 이 성당이 기억하는 알렉산드르 2세의 은유다.



자꾸 동방교회와 로만가톨릭을 구분하고 같은 교회라는 생각을 가로막는 것들이 있다. 살아온 세월이 다르니 마땅히 이질적인 요소들도 있고 합의가 어려운 정서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 부활 성당의 무수한 이미지들에서도 그런 낯섦과 불편함을 만나기는 한다. 당장 남쪽 파사드 모자이크에는 커다란 코코슈니크 아치 아래 성 니콜라오와 알렉산드르 네프스키를 좌우에 둔 ‘영광의 그리스도’가 옥좌에 앉아 있다. 이 두 성인은, 같은 이름을 가진 성당 봉헌 당시 황제 니콜라스 2세와 이 성당이 기억하는 알렉산드르 2세의 은유다. 이 성당이 알렉산드르 2세의 불행한 죽음을 애도하며 지어졌으니 그를 기억하는 이미지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치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 언덕의 사크레쾨르 성당에서 잔다르크와 루이 9세의 조각상을 보는 것과 같은 의미다. 좀 낯설지만 그들은 같은 신을 향해 애원하며 간구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결국 사람들을 갈라놓는 건 권력의 문제가 아닌가. 정치가 사람들의 생에 장벽을 만들고 철조망을 치고 서로에게 폭력을 가하게 한다. 거대한 정치만이 아니라 일상에 파고든 정치가 우리를 조종한다. 우리 삶을 갉아먹는 나쁜 정치에 대해 좀 예민하게 알아차리고 반응할 수 있으면 좋겠다. 혹 뭔가에 ‘조종’되는 것은 아닌지 늘 깨어있고 싶다.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것들이 있고 은연중에 악에 물들게 하는 힘이 있다. 근묵자흑이라고 했다. 가까이 있으면서 조금씩 물들고 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있다. 뜬금없이 낯선 러시아정교회 성당에서 짐짓 심각해지고 말았다.



IMG_7854.JPG 맨 중앙 쿠폴이 공사를 하느라 가림막을 해 붕대를 감은 손가락 같았다. 가장 눈부신 모습을 보지 못했다.





1855년 철저하게 반혁명 입장을 고수하던 니콜라이 1세를 이어 재위에 오른 알렉산드르 2세는 좋은 차르가 되고자 나름 애를 썼다고 한다. 그는 부국강병을 위해 많은 개혁적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했다. 정치범들을 석방하고 출판물 검열을 완화하고 유럽에 대한 여행도 문을 열었다. 농노해방령을 선포하고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으로 사법제도를 개혁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요구는 끝이 없었다.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지점은 그가 서구처럼 민주적인 국가를 위해 개혁을 하면서도 여전히 독재적인 절대왕정의 틀을 고수한다는 것이었다. 1866년부터 죽음에 이른 1880년까지 네 번의 암살 시도가 있었는데 드러나지 않은 경우도 많으리라고 추정될 정도로 그는 끊임없는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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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날, 1881년 3월 13일, 황제의 마차에 폭탄이 날아들어 호위병들이 죽고 마부가 다쳤다. 방탄마차 덕분에 황제는 무사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괜찮은지 물으며 황제가 마차 밖으로 나온 순간 두 번째 폭탄이 날아와 터지고 말았다.


‘위대한 해방자’, ‘자유의 차르’라고 불리는 알렉산드르 2세에게 나로드니키를 위시한 세력들은 더 많은 개혁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다 마침내 그의 목숨을 앗았다. 그리고 러시아는 오히려 뒷걸음질을 했다. 아버지를 잃은 알렉산드르 3세는 거칠어졌다. 말 그대로 완전히 “삐뚤어졌다.” 그는 아버지가 시행하려던 정책들을 취소하고 검열 범위를 더 확대해버리고, 대학의 자치권 등을 빼앗아버렸다. 러시아가 더 차갑고 얼어붙어갔다. 생각해보면 절대 그래서는 안 되는 때였지만 어쩌랴.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 거세지고 규합되고 있는데 황실은 문제의 심각성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결국 알렉산드르 3세를 이어 제위에 오른 ‘사람 좋은’ 니콜라이 2세에 이르러 로마노프 왕조가 문을 닫고 제정러시아도 역사의 뒤안길로 떠밀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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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2세.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일까. 변화. 개혁과 진보의 여정에서 피를 흘린 무수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의 피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나는 그의 핏빛 자취에서 어떤 ‘부활’을 생각해야 할까. 그의 아들 알렉산드르 3세가 아버지의 핏자국 위에 지어 봉헌한 이 성당의 본래 이름은 ‘그리스도 부활’ 성당이다. 동방교회에서는 예수의 수난보다 부활에 훨씬 의미를 부여한다. 부활의 빛이 더욱 강조된다. 더욱이 이곳에는 아버지의 부활을 간절히 바라는 아들의 마음까지 드리워져 있다. 저토록 찬연하게, 저토록 충만한 갈망으로 지상의 슬픔을 넘어, 한계를 넘어, 영원한 안식의 평화를 구하는 곳! 아들은 아버지를 기억하며 도스토예스키 형제가 어머니 묘비명으로 쓴 구절을 기도했을 것이다. “기쁨의 아침이 올 때까지, 사랑하는 육신이여, 고이 잠드소서”(카람진 <묘비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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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부터 24년에 걸쳐 지어진 성당에는 옛 이콘의 그림자는 없었다. 그럼에도 성당 곳곳을 가득 채운 무수한 이콘은 러시아의 천 년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그들의 구원관이, 우주관이 온 공간에 빈틈없이 구현되어 있었다. 깨끗하고 선명한 내부의 벽화들, 장엄하고도 미려한 샹들리에, 그리고 순례자들은 경건했다.


죽음을 넘어서(야 하)는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각자의 생이 얻어야 할 구원을 생각했다. ‘피의 구원’ 사원이라는 이 성당은 피를 흘려야만 구원을 얻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피를 흘린 이 자리에서 구원이 오기를 기원한 것일까. 도스토예프스키는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했는데, 그 아름다움이란, 우리를 구원할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일까. 그 아름다움이란, 예수의 자기비허를 닮아가며 테오시스를 꿈꾸는 자기희생으로부터 오는가. 그 여정에서 발견하게 되는 ‘창조되지 않은 빛’ 안에 야곱의 사다리가 드리워지는 은총의 아름다움인가.

그리하여 저 아들의 아버지는 이미 구원의 길에 들어섰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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