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로파블롭스키...표트르..그리고 사도 안드레이
바실리섬 로스트랄 등대 주변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첫날 호텔로 이동하던 중에 버스 차창 밖으로 등대를 보았다. 몽환적인 시간, 몽환적인 공간이었다. 물의 요정 루살카 아래서, 바다의 신들 아래서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고대 축제의 한순간처럼 흥에 겨워서 사람들이 춤을 추었다.
바로 눈앞의 네바강 너머로 페트로파블롭스키 요새와 성당이 보였다. 100미터가 넘는 황금빛 첨탑 덕분에 낮은 건물들이 드리워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어디서고 눈에 띄는 곳, 이 어마어마한 인공의 도시가 태를 묻은 곳이었다!
그날, 1703년 5월 어느날, 배를 타고 네바강을 따라 가던 표트르 대제가 하늘을 선회하는 한 마리 새를 보았다고 한다. 바로 ‘제3의 로마’의 상징인 독수리였다. 이를 보고 거룩한 계시라고 생각한 표트르 대제가 토끼섬에 요새를 지었다. 그는 가장 먼저 나무를 잘라 십자가를 만들어 땅에 깊이 박았다. 전해지는 얘기에 의하면, 그때 땅을 파 묻은 것은 또 있었다. 바로 예수의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인 안드레아의 유해함이었다.
부활한 예수가 승천한 후 사도들은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스승의 가르침을 전했다. 그때 안드레아는 흑해를 거쳐 드네프르강을 따라 복음을 전했다. 슬라브족에게 복음을 전한 최초의 사도로서 안드레아는, 동방교회에서 서방교회의 베드로와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베드로는 형제 안드레아의 초대로 예수를 만났다. 이토록 오래 갈라져온 동서방교회를 생각하면 참 공교로운 일 아닌가. 실제로 한 어머니의 태중에서 나왔던 베드로와 안드레아. 그리고 이렇게 갈라진 형제들의 교회.....
누구에게 들을 수 있을까, 이천 년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표트르 대제가 토끼섬에 십자가를 박았던 1700년경 그때 안드레아 사도의 유해는 어디에 있었던가.
사도는 원래 콘스탄티노플에 묻혔다가 357년경에 순교했다고 전해지는 파트라이로 옮겨졌다.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 북쪽으로 이오니아해와 코린트만을 이어주는 파트라스만의 이 도시에서 안드레아는 X자 형태의 십자가형으로 순교했다. 그 후 1208년에는 이탈리아 아말피 성 안드레아 성당으로 옮겨졌고, 15세기에는 그의 두개골이 로마 베드로 대성당으로 옮겨졌다가 1964년 9월 교황 바오로 6세가 그리스정교회와 이룬 화해의 표시로 다시 파트라이로 보냈다.
천주교를 받아들인 지 이제 2백 년이 넘은 아시아의 토양에서 이천 년 그리스도교의 정서란 때로 너무 낯설고 아득하다. 이미 사도들의 시대부터 쌓이고 전해지고 변주되어 전설도 됐다가 기적이 되기도 했다가 고통스러운 역사의 원인 혹은 대상이 되기도 해온 그리스도교는 이천 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왔다. 특히 초기에 복음을 전한 사도들의 이야기는 더욱 풍부한 변주를 거치며 각지로 퍼져나가 씨앗이 되곤 했다.
안드레아 사도의 경우도 무수한 전설들이 전승되었다. 에우세비우스가 《교회사》에서 안드레아 사도가 흑해에 있는 그리스 식민지를 여행한 후 러시아 영토가 된 땅을 방문했다고 쓰자 이 전설은 러시아인들에게 불꽃처럼 번져나갔다. 《네스토르의 연대기》에서는 흑해를 넘어 드네프르강을 따라 키예프까지 갔으며 노브고로드의 고대 도시가 있는 먼 북쪽까지 갔다고 덧붙였다. 바닷가 어느 마을에서 하루를 묵은 사도가 아침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저 언덕을 보라. 언덕 위에 하느님의 은총이 빛나고 있으니 큰 도시가 세워질 것이고 하느님의 많은 교회가 세워지리라.”
사도는 언덕 위에 올라가 축복하고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다. 이곳에 훗날 키예프 공국이 들어섰다.
한 가지 재미있는 얘기가 전해지는데 그때 안드레아 사도가 지금도 이어져 내려오는 사우나를 보았다고 한다. 그는 나중에 로마에 가서 사람들에게, 나무로 만든 목욕탕을 뜨겁게 데우고 알몸으로 들어가 여린 나뭇가지로 몸을 때리고는 찬물을 끼얹어 생생해져서 나오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때리는’ 것이 아니라 목욕하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표트르 대제에 이르기까지 키예프의 믿음 안에는 안드레아 사도의 자리가 있었을 터인데 왜 그는 자신이 창조하는 도시의 첫 장소에 베드로의 이름을 주었을까. 이 요새와 요새 안 성당의 이름이 페트로파블롭스키가 된 것은 준공된 날이 사도 바오로와 베드로의 축일인 6월 29일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표트르 대제는 천국의 열쇠를 가진 이 사도들 덕분에 이 도시도 열쇠가, 서구로 향하는 길의 열쇠가 되어주기를 바랐다. 이 도시가 천국의 열쇠로 미래를 열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표트르 대제 자신은 ‘적그리스도’가 되기도 했다.
조상들로부터 이어받은 ‘제3의 로마’ 모스크바를 버리고 아예 서방을 배우겠다고 나선 그를 러시아정교인들은 무척이나 싫어했다. 특히 니콘의 개혁으로 ‘구교도’가 된 신자들은 극력하게 그를 거부하고 비난했다. 그가 전통을 무시하고 온갖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느라 애를 썼기 때문이다. 심지어 표트르 대제는 달력까지 바꿨다. 지금도 그리스 아토스산에 사는 동방의 수도승들은 조금이라도 서구의 냄새를 풍기는 달력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할 정도인데 300년 전의 분위기는 정말 상상도 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