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방주>,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에르미타주, 황제들의 겨울궁전을 찾았다. 몇 번의 찜질방을 거친 듯 땀을 흘리며 인파에 밀려가며 무엇을 봤을까. 소장품의 개수를 얘기하는 것조차 무의미해질 만큼 거대한 이 박물관의 아주 일부를 보았다. 정작 이 궁전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혀 모른 채. 분주한 틈에 가끔 영화 <러시아 방주> 속 풍경이 한가로이 스치곤 했다.
영화에서 물었다.
“당신은 아름다움에 관심이 있는 건가, 전시에 관심이 있는 건가.”
그러나 현실은 그런 물음에 귀 기울일 틈도 없이 떠밀려야 했다.
“표류하는 것 같아요....모든 게 꿈같아요.....”
표류. 꿈. 그리고 영원히 항해하는 존재. 박물관은 범람하고 있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미술관 혹은 박물관에 이토록 범람하는 작품 하나를 우리 마을 성당에 모신다면 어떨까. 저마다 뛰어난 이 예술품들은 측량하기 힘든 세계를 품고 있다. 한눈에 반하는 드문 경우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의 만남이 그렇듯 우리의 시선도 시간이 늘 필요하지 않은가. 오래 보고 자주 봐야 나에게도 그대의 말이 들리지 않는가. 그래서, 이렇게 한꺼번에 ‘전시’할 일이 아니라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성당에 하나씩이라도 옮기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하는 거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또 하나의 소통이, 새로운 통공의 순간들이 거기에 넘쳐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허황한, 하지만 생각만으로도 좀 가슴 설레는, 꿈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너무 좋아서, 너무 아까워서.
너무나 몸값이 비싸서 한 번 움직이려면 엄청난 보험금부터 따져봐야 하니 정말 꿈같은 상상일 뿐이지만, 저 ‘작품’들이 온전히 효용가치를 다할 수 있다면, 삭막하고 적막한 우리 세계에, 왈칵 쏟아지는 참회의 순간들을 가져오지 않을까, 우리가 조금은 신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꿈같은, 행복한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미술 사조에 따라 해석되고 분석되는 대상으로가 아니라 신의 집을 향하는 도구로서의 예술. 이제는 너무나 멀어져버린 세계일 뿐일까.
렘브란트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도 미켈란젤로의 <웅크린 소년>도 잘 보았다.미켈란젤로는 소년시절부터 심연에 들어앉았었구나. <론다니니의 피에타> 못지않은 전율이 스쳤다. 연민이 밀려들었다. 저 소년의 어깨는 이미 십자가로 물들었구나.
떠나기 전에 미리 흠칫했던 <로마의 자비>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서 있었다. 카리타스. 사람이 만든 법과 인간의 영혼 안에 존재하는 법. 로마의 법과 그리스의 법. 오빠를 매장하고는 심판을 받아야 했던 로마의 안티고네가 거기 있었다.
시대에 따라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달라지는 작품들 안에 영원이 도사리고 있었다. 쉽사리 흘러가는 것들과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묵상이 있었다. 그 통찰 덕분에 부나방 같은 하루가 귀한 위로의 말을 듣는다.
알렉산드르 소쿠로프 감독의 <러시아 방주>는 여러 면에서 화제가 되었다고 하는데, 내겐 그저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미리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러닝타임 96분의 이 영화를 하나의 숏으로 만든 것은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단절되지 않고 영원히 항해할 것이라는 감독의 의식을 담은 구성이라고 한다. 하지만 ‘관람자’로서 영화를 찬찬히 함께할 수는 없었다. 영화 자체가 흔들리고 떠밀리고 꿈결 같았기 때문이다.
그가 제기하는 여러 문제들도 러시아인이 아니고서는 그저 스치는 바람 같았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그토록 짧은 시간에 개괄하는 영화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 자부심이 나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토록 몽환적이고 명료하지 않아서 음울하기까지 한 희망. 이제 이 방주는 어디를 향할까. 이 방주에 존재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여기 승선했다는 것으로 희망이, 구원이 도래하리라고 마음 놔도 되는 것일까. 영화가 끝나갈 무렵 답을 얻어야 한다는 강박이 조금씩 고개를 치밀 때 아주 오래전의 멜로디가 느닷없이 흘러나왔다.
Mélodie antique française Op.39-16 차이코프스키였구나.
나에게는 글린카의 마주르카보다 그 옛 노래가, 각인되어 있던 시간을 툴툴 털고 되살아왔다. 한걸음 한걸음 저벅저벅. 때로는 석양이기도 했다. 고즈넉한 시간의 결이 고스란히 느껴질 듯하던 작은 성당. 아직 창틀에는 라틴어 기도서의 냄새가 남아 휘돌고 있던 때, 마가렛이 피고 무화과가 익어가고 자목련이 피었다 뚝뚝 지던 날의 멜로디였다. 그 때문에 이 영화가 러시아 역사산책이 아니라 내 역사로 젖어들고 말았다. 이토록 쓸쓸한 석양의 소리, 아니, 폐원의 소리. 폐원으로부터 돋아나는 풀꽃들의 새살거림. 어쩌면 내게는 ‘방주에서의 한때’였을 시간이었다. 그랬던가. 그 방주를 떠나와 나는 어디를 표류하는 중일까.
에르미타주가 ‘러시아(의) 방주’라면 무엇이 구원을 담보하고 있는 것일까. 라파엘 회랑을 천진하게 뛰어다니던 어린 공주들, 이제는 러시아정교회의 성인이 된 니콜라이 2세의 어린 아이들. 그들의 웃음소리가 회랑에 퍼졌다.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궁전 광장은 1905년 ‘피의 일요일’의 현장이었다. 그때 노동자들은 그저 밥 한 끼 제대로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을 청했다. 그조차도 목숨을 걸어야 했던 세상이었다. 대단한 결기로 나선 것도 아니고 엄청난 타협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는데 돌아온 것은 죽음이었다. 밥 한 끼가 목숨을 걸 만큼 귀중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그날 그들이 손에 들고 있던 청원서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폐하, 우리(상트페테르부르크 노동자들)는 가난하고 핍박받고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고 경멸당하고 있으며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묵묵히 그 운명을 참아내기를 강요받고 있는 노예와 같은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힘든 고통을 참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쪽이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때, 마차에 타고 광장을 지나가던 이사도라 덩컨이 이 광경을 보았다고 한다. 하염없이 울 수밖에 없었다는 그에게도 이 사건은 돌이킬 수 없는 삶의 순간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