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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일기 Sep 08. 2024

재판소에 가던 날


X가 구치소로 넘어간 두 달쯤 흘렀을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을 때쯤 시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왔다. 재판일정이 잡혔으니 참석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좋은 변호사를 선임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재판 일정에 맞춰 회사에 반차를 냈다. 짧고도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X는 구치소에서 몇 년간 썩거나 운이 좋으면 죄수복을 벗고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갈 있을 것이다. 엄마는 이혼과 더불어 재산 분할 같은 문제 때문에라도 X가 구치소에서 풀려나야만 한다고 했다. 그 부분에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X가 구치소에 있으면 나는 앞으로 계속 그곳을 들락거려야 할 것이다.


재판 당일, 시간에 맞춰 재판소에 방문했다. 문 앞에는 이미 시아버지와 변호사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중이었다. 어색하게 시아버지와 아는 체를 했다. 시아버지는 작은 목소리로 너무 쪽팔려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아들을 빼내오기 위해 아는 지인들에게 사정을 말하고 도움을 구할 때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고 했다. 이 쌍놈의 새끼는 차라리 도둑질이나 하지 왜 지폐를 위조해서 이런 곳까지 오냐고 덧붙이셨다. 쉽게 빼내오기 위해 유명한 변호사를 3천만 원 주고 선임했다고 말했다. 시아버지의 얼굴에서는 긴장감이 잔뜩 묻어났다. 시아버지는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 빼내오지 않으면 아들을 영영 잃을 것이다라고.


재판소에 미리 들어가 앉았다. 이미 다른 죄수들의 재판이 진행 중이었는데 유독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80대의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였는데 그는 고개를 떨구고 재판장 앞에서 꾸짖음을 듣고 있었다. 계속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가 불쌍해 보였다. 하지만 그 안타까운 마음이 얼마나 부질없던 것이었는지 금세 깨달았다. 그는 잘 나가는 피아노 선생님이었고 8살 이하의 어린아이들을 가르쳤는데 몰래 성추행을 하다가 부모들의 신고로 잡혀 들어왔다. 끔찍했다. 어떻게 저렇게 평범한 얼굴에 악마가 잠들어있었던 건지 아연실색했다. 결국 그는 징역형을 선고받고 경찰에게 다시 끌려갔다. 


그 뒤를 이어 X가 재판을 받기 위해 걸어 나왔다. X는 초췌해 보였다. 수염은 오래도록 깎지 않아 지저분해 보였고 머리 역시 심하게 헝클어져 노숙자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X는 고개를 들다가 나를 발견했고 놀란 눈으로 나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재판은 시작됐고 모두가 숨죽인 채 재판을 지켜보았다. 정확한 재판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판사가 증거물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던 것만 기억난다. 너무 조잡하게 만들어서 초등학생이 만들어도 이보다 나을 것 같다는 그 한심한 눈빛. 당연했다. 10만 원짜리 집 프린터로 얼기설기 만들어 딱풀로 붙였으니 그 누가 심각한 위조지폐범이라고 생각할까. 누가 봐도 어설프고 어리석은 장난 짓이라는 게 한눈에 보였다. 


결론적으로 X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X의 이력에는 빨간 줄이 한 줄 그어졌다. 2년 반동안 다른 죄를 짓지 않고 조용히 살면 다시 구치소로 돌아올리는 없을 것이다. 선고받자마자 시아버지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부터 X와 진정한 싸움이 시작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앞으로 해결해야 될 일이 많았다. 나는 이제 X에게 동정심 하나 없이 이혼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의 Arun Ano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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