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와 아빠는 성매매 문제에 있어서 꽤 관대했다. 아버지 세대는 그랬던 사람이 많았던 걸까. 둘의 의견은 늘 비슷했다. 남자라면 그럴 수 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이혼하냐.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냐. 너라고 백 프로 깨끗하냐. 등등의 말로 인해 매번 나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시아버지와 아빠는 계속 나를 설득했다. 아빠는 내가 마치 이혼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어떻게 그렇게 이혼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냐고. 마치 사건이 터지길 기다렸다는 듯이. 시아버지의 입장도 비슷했다. 자신의 아들은 지금 고통받으며 힘들어하는데 나는 그런 걱정 하나 없이 뭐든 쉬워보인다고 했다.
사실 나의 아빠는 젊었을 적 바람을 많이 피워 엄마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고 시아버지 또한 건설업 쪽에서 오래 일하셨던 분으로 꽤 많은 접대를 하셨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시아버지는 장애인 증을 가지고 계셨는데 젊었을 때 바람을 피우다가 걸려서 창문에서 뛰어내리다가 다리에 장애를 입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한 때 시아버지는 나를 예뻐했었다. 시어머니는 나를 탐탁지 않아 했지만 시아버지는 그런 시어머니로부터 나를 지켜주며 여러 가지 면에서 나를 배려해 주셨었다. 나는 그런 시아버지가 좋았었다. 물론 지금은 아들을 배신한 천하의 나쁜 년이지만 말이다.
결혼 일주일 전, 나와 X는 지방에 사는 시부모님의 지인들에게 식사를 대접한 일이 있었다. 서울에서 하는 결혼식에 참석 못하는 이들을 위해 마련한 자리였는데 30명 정도의 어른들이 모여 나와 X의 결혼식을 축하해 주었다. 큰 식당을 빌린 뒤 음식을 마련하고 예쁘게 한복을 입고 인사를 나누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었다. 시아버지는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며 즐거워했고 지인들과 술을 마시며 거나하게 취했었다.
모든 행사가 끝이 나고 집에 갈 때가 되자 시아버지는 직접 운전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집까지 단 20분 밖에 걸리지 않는데 왜 굳이 대리기사를 불러야 하냐고 짜증을 냈다. 시어머니는 음주운전은 안된다며 결사반대했고 X가 급하게 대리기사를 부르자 시아버지는 결국 고집을 꺾었다. 그런데 대리기사가 오긴 했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시아버지의 차가 수동이라고 자신은 못 몰겠다고 5분 만에 포기를 한 것이다. 이때다 싶어 시아버지는 운전대를 잡고 차를 몰기 시작했고 조수석에서 시어머니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안된다고 뜯어말렸다. 뒷좌석에 앉은 X 역시 화를 내며 시아버지의 시트를 발로 차다가 결국 시아버지의 머리를 주먹으로 쳤다.
시아버지는 눈이 돌았다. 차를 세우고 X의 멱살을 잡고 길거리에 내팽개쳤다. 그리고 둘은 육탄전을 벌였다. 시어머니와 내가 둘을 뜯어말리는 사이 X는 급하게 핸드폰으로 경찰에 신고했다. 여기 음주 운전하는 사람이 있다고. 제발 잡아가라고. 크게 소리 질렀다. 시아버지는 한참을 씩씩거리다가 사이렌 소리를 듣고 차를 버리고 골목으로 도망쳤다. 곧 경찰에 왔다. 시어머니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아들이 아버지와 싸움을 벌이다가 잘못 전화한 것이라고 둘러댔다. 경찰은 알았다고 하고 다시 돌아갔다.
시아버지와 X의 싸움을 말리다가 그 사이에서 나도 한 대 얻어맞았다. 아침에 예쁘게 단장한 머리는 어느새 산발이 되었고 고르고 골라 입은 옷은 구겨지고 찢어져서 처참하게 변해있었다. 심장은 두근거리는데 일단 화를 주체를 못 하는 X를 진정시켰다. 물론 시아버지는 그날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나를 따로 불러 미안하다면서 100만 원을 쥐어주었다. 그리고 나의 부모님께 이 상황을 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X에게 들은 바로는 시아버지는 과거 음주 운전을 꽤 많이 했었는데 여러 사고를 많이 쳤던 모양이었다. 시어머니는 그런 상황에 꽤 익숙한 듯 보였다.
결혼식은 당장 일주일 뒤. 이미 청첩장은 다 돌렸고 신혼집은 마련했으며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 있었다. 파혼은 당연히 꿈도 꾸지 못했다. 시어머니는 모든 상황을 덮고 가길 원했다. 결국 결혼식은 진행됐고 시아버지 역시 결혼식에 참석하며 뒤늦게 아들과 화해를 했다.
시어머니는 시아버지와 X가 늘 비슷하다고 말해왔었다. 이제는 그 말 뜻이 뭔지 알 것 같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의 KirstenMar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