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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일기 Sep 11. 2024

나르시시스트의 강력한 무기


지방으로 내려간 지 얼마 되지 않아 X가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지인의 추천으로 X는 유명한 어느 스타트업에 취업이 되었다. 다들 어느 누구도 X의 과거를 몰랐다. X는 기존 연봉에서 1.5배를 불렸다. X는 신혼집에서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 집은 재계발 구역에 있어 아무도 전세로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집주인은 2년 동안 살아야 돈을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마침 집이 필요했던 X는 집주인의 말을 핑계 삼아 그 집에서 살겠다고 했다. 한동안 X는 그 집을 열심히 자신만의 방식대로 예쁘게 꾸몄고 매일같이 나에게 자랑했다. X는 나에게 돌아오면 자신은 작은 방을 쓰고 나에게는 큰 방을 주겠다고 했다. 물론 나는 거절했다.


나는 초조해졌다. 나는 빨리 X와 이혼을 하고 내 돈을 돌려받아야만 했다. 현재 내 돈은 전부 집 보증금으로 묶여있고 나는 돈이 없어 독립도 하지 못한 채 엄마집에 빌붙어 있다. 내 속은 하루가 다르게 타들어가는데 정작 X는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심지어 집 명의는 X의 이름으로 되어 있어 만약 X의 속이 뒤틀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내 돈도 돌려받지 못할게 뻔했다. 이혼을 먼저 하면 그 가능성은 더 컸다. 이혼을 2년 뒤로 미뤄야 되나 싶어 마음이 착잡해졌다. 감정이 너무 격해진 것 같다.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었다.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시간은 많고 언제든 분명히 기회는 있을 것이다. 섣불리 움직이면 모든 것이 망한다.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X가 나를 위해 뮤지컬 티켓을 구했다고 했다.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 자신의 사연을 응모해서 얻은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큰 잘못으로 와이프를 잃은 위기에 처했는데 사이가 돈독해질 수 있도록 뮤지컬 티켓을 보내달라고 사연을 썼다고 했다. 정말 가관이었다. 처음에는 고민해 본다고 말했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거절의 문자를 보냈더니 X는 방방 뛰며 불같이 화를 냈다. 자신이 이렇게 노력하는데 왜 돌아봐주질 않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거 다 필요하고 이혼이랑 제발 내 돈만 좀 돌려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X는 분노했다. 그리고 복수를 시작했다. 결혼 생활 동안 한 번도 반항 한 번 한 적 없던 모자란 아내가 감히 자신에게 반기를 든 것이다.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은 대우받아야 마땅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이제는 자신을 무시한다. 감히.


그 후로 X는 새벽녘쯤 수시로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지금 자신은 옥상에 올라와 있는데 담배를 피우고 있다. 여기서 떨어져 죽으면 나는 너에게 사망보험금을 줄 수 있다. 네가 그렇게 돈을 원한다면 나는 그렇게라도 줄 수 있다라며 나를 두렵게 했다. 처음에는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X를 말리기 위해 계속해서 설득하며 밤을 지새웠다. 하지만 그것도 여러 번. 나는 X가 진짜 뛰어내리는 것이 아닌 단지 관심을 끌기 위해 그런 행동을 벌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그런 행동은 결혼생활 중에도 한 번 있었다. 장난치다가 한 번은 내가 '너 진짜 죽을래?'라고 말했을 뿐인데 X는 후다닥 달려가 창문에 걸터앉아 나 너 때문에 자살할 거야라고 한 적이 있었다. X의 눈은 분노로 불타오르고 있었고 까딱 잘못하다가는 정말로 뛰어내릴 것처럼 보였다. 겨우 설득해서 내려오긴 했지만 그때의 충격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X는 자신이 어머니와 살 때도 그러한 일이 여러 번 있었다고 말했었다. 그때도 창문에 올라서서 어머니를 위협했다고 했었다. 나는 그때 X가 무언가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X가 그렇게 위협적으로 행동하면 모든 이들이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구한다는 사실을. X는 그 행동 하나로 타인을 누를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얻었다. 그 힘을 이제 X는 나에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 후로 나는 X가 그런 위협적인 행동을 할 때마다 무시했다. 새벽녘에 오는 문자 알림은 전부 다 꺼두었다. X는 순간 자신의 방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내 관심을 끌고, 나를 위협하고, 내가 주눅 들고, 나를 화내게 할 만한 뭔가를 말이다.




원본 : Unsplash의 Jon Eric Marabab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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