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의 마음은 혼돈 그 자체였다. 매일 하는 말이 바뀌었다. 어느 날은 화를 버럭 냈다가 어느 날은 비아냥거리다가 어느 날은 잠잠했다. 수시로 나에게 카톡을 보냈지만 내가 이혼 관련 문제만 꺼내면 잠수를 탔다. 가끔 나를 조롱하다가 내가 대꾸하면 또 잠수를 탔다. X는 '이 집에서 절대 안 나간다'라고 보내기도 하고 '쉽게 이혼 못해주겠다'라고 보내기도 했다. X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새벽 5시에 '내 물건 훔쳐갔어?'라고 문자 했을 때는 솔직히 좀 놀라긴 했다. 사람 속을 참 열심히도 뒤집어놨었다. 특히나 '이혼보다는 사별이 낫지 않겠어? 내가 여기서 죽으면 되겠다'라는 문자는 나를 숨을 턱 막히게 하기도 했다. 나는 X에게 1년의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그 기간 동안 마음을 정리하라고 했다. 그제야 X는 조금 잠잠해졌다.
만약을 대비해 변호사를 알아봤다. X가 이혼해주지 않을 것을 대비해 소송을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잘못의 원인은 X에게 있었으니까. 간단히 가격만 알아봤을 뿐인데 변호사 측에서 800만 원을 불렀다. 그리고 소송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 때문에 기간은 1년 정도를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 정도의 돈이 없었고 그 기간 동안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이미 마음은 너덜너덜해졌고 나는 하루빨리 싸움을 끝내고 싶었을 뿐이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역시나 1년 뒤에 X와 조용히 협의 이혼을 하는 방법뿐이었다. 그런데 과연 조용하게 끝낼 수 있을까? 하루하루 늘 불안감과 긴장 속에서 살았다. X의 문자는 늘 내 불안감을 더 가중시켰다.
X는 이혼을 지연시킬 기가 막힌 방법 한 가지를 떠올렸다. 내 친구 한 명이 현재 유럽에 유학 가 있는데 그 친구가 아주 잠시 동안 자신의 호적을 우리 집에 올려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등본에는 우리 세 명이 한 집에 살고 있는 걸로 나와있는데 X는 그것을 빌미로 나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당장 그 친구의 이름을 빼지 않으면 이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X에게 그 친구는 현재 한국에 들어올 수 없다. 세대주인 당신이 직접 동사무소 가서 그 이름을 빼면 된다라고 말했다. X는 자신이 왜 그렇게 귀찮을 짓을 해야 하냐면서 당사자 본인이 직접 와서 빼야 한다고 우겨댔다. 왜 자신을 이렇게 괴롭혀대냐고 자신을 그만 좀 내버려 두라고 말하는 X가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났다. 저 말은 내가 어제 X에게 했던 말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X는 지금 나에게 복수를 하고 있었다. 나는 어제 X에게 나를 그만 좀 괴롭히라고, 제발 나를 좀 내버려 두라고 말했었다. X는 그 문장을 정확하게 똑같이 씀으로써 앙갚음을 했다. 그리고 X는 잠수를 탔다.
지금 X에게 화를 내기 전에 나는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만 했다. 서둘러 유럽에 있는 친구에게 연락했다. 친구의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신 상태였고 친구를 대신해 행정처리를 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우리는 고민했다. 친구는 한번 알아보겠다고 했고 여러 날이 흐른 뒤에 친구는 멀리 살고 있는 자신의 남은 가족을 동원해 겨우 이름을 호적에서 빼낼 수 있었다. 나는 바로 모든 일이 해결되었음을 X에게 문자로 알렸다. X는 답변하지 않았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의 Hannah We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