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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일기 Sep 13. 2024

X가 복수하는 법


X는 복수를 참 잘했다. 누군가 자신의 기분을 거슬리게 하면 가차 없이 복수했다. 시아버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혼식 때 X는 어쩔 수 없이 시아버지와 화해했지만 X는 시아버지에게 소심한 복수를 했다. 결혼식 때 시아버지의 지인들로부터 받은 축의금을 몽땅 가로챘다. 그리고 절대 주지 않겠다고 시어머니를 통해 시아버지에게 통보했다. 시아버지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후 그 둘은 1년간 서로 만나지 않았다.


X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소심한 복수를 참 많이 했다. 예를 들면, 지하철에서 서서 갈 때 자신의 뒤를 지나치는 사람들을 거슬려했다. 그래서 X는 그 사람들이 지나칠 때를 노려 일부러 등을 뒤로 빼 상대방을 자신의 등으로 쳤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분 나빠하며 그냥 지나갔지만 일부 사람들은 X를 노려보며 싸울 자세를 취했다. 그때마다 X는 '뭐 어쩌라고'라는 식으로 대응해 내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다행스럽게도 큰 싸움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늘 도망치고 싶었다.


예전에 살던 빌라 대문 앞에는 작은 계단이 있었는데 앞집의 할머니는 종종 그곳에 앉아 바람을 쑀었다. X는 그것마저도 거슬려했다. 그래서 일부러 문을 세게 열어젖혀 앞집의 할머니를 다치기 직전까지 만들었다. 내가 제발 그러지 말라고 하소연해도 X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왜 남의 집 문 앞에 그렇게 앉아있냐는 것이다. 만약 할머니가 다친다면 그것은 자기 탓이 아닌 할머니 탓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무사했지만 대체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행동할지 나로서는 X의 행동을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X는 자신만의 룰을 만들고 그 룰을 벗어나면 전부 적으로 간주하는 것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X는 경찰과 구청에 신고를 많이 했었다. 버스 매연이 너무 심해서 신고하고, 앞 집 남자가 술에 취해 거리에서 술주정을 부릴 때에도 신고하고, 길거리에서 부부싸움을 봐도 신고하고. 크고 작은 사건들을 전부 신고했었다. X는 자신이 악당들을 물리치는 정의의 사도라고 생각했다.


집주인 할아버지 역시 X의 행동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오랫동안 공무원 생활을 했었던 집주인 할아버지는 꽤 보수적이고 완고한 사람이었다. 할아버지는 쓰레기를 엉망으로 버리는 X에게 쓰레기 버리는 법을 세세하게 가르쳐주었는데 그 부분이 X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그 후 X는 할아버지가 이야기하는 것마다 전부 다 반대로 행동했고 끝끝내 할아버지에게 막말을 하고 대듦으로써 할아버지가 쌍욕을 하게 만들었다.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당장 집에서 나가달라고 했다. 부동산비는 따로 주겠다고 제발 좀 나가달라고 했다. 그 순간 X는 핸드폰 녹음 기능을 켜며 지금 하신 말씀 다 녹음하고 있다고 부동산비는 반드시 달라고 반협박했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다가와 대체 어떻게 이런 사람과 같이 살고 있냐고 나를 불쌍해했다. X는 부동산비를 받아냈다고 좋아했다. 결국 우리는 쫓기듯이 그 집을 떠났다.


나는 X의 이런 행동들을 특별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다. 이때의 X는 나를 공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공격대상이 된 순간부터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X의 복수는 사람을 죽일 정도로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짜증과 분노를 유발하는,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들이 많았다. 


사건 발생 후에 X가 첫 번째 나에게 한 복수는 '마일리지 뜯어가기'였다. 함께 살아오며 꽤 오랫동안 모아 온 대한항공 여행 마일리지가 있었는데 한 번도 쓰지 않았던 터라 그 포인트의 양은 꽤 됐다. X는 출소 후 그 마일리지를 몽땅 다 써버렸다. 내 아이디에 마일리지가 있었지만 우리는 가족관계로 엮여있던 터라 X가 언제든지 그것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릎을 탁 쳤다. X는 내가 어느 부분에 예민한 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보자마자 화를 낼 것도 알고 있었다. 왜 그랬냐고 문자로 물어봤을 때 X는 '어쩌라고'라는 네 글자의 답변만 보냈다.


결혼생활기간 X는 자잘하게 복수를 많이 했다. 이유는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아서, 기분을 거슬리게 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잔소리해서 등등 사소한 것들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X는 대화를 거부하고 도망쳤다. 여행지에서 화가 났을 경우 일단 사라진다. 버스시간이나 기차시간이 다 되어가도 오지 않는다. 전화도 받지 않는다. 출발 시간 1분 전에 나타난다. 자신은 평온한 얼굴로 나타나지만 기다리고 있는 나는 이미 멘탈이 부서져있다. 가끔 X는 물건도 버렸다. 자신이 들고 있는 모든 짐을 몽땅 길 한가운데에 버린다. 그리고 사라진다. 나는 그 물건을 들고 쫓아간다. X는 그런 식으로 종종 나에게 복수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떼어놓고 혼자 다니면 되지, 물건 다 버리면 되지라고 가볍게 생각하지만 그때의 나는 모든 것이 초조하고 두려웠고 불안했다. 


나는 대화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것도 통하지 않는 상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X는 기분이 상하면 모든 대화를 거부했다. 대화를 하고 싶다고 회사 앞으로 찾아갔을 때도 X는 나에게 단 한마디만 했을 뿐이다. '입냄새 나니까 더 이상 말 하지 마'. X는 상대방이 어떤 포인트에 감정이 상하는지 정확하게 알았던 것 같다. 


어떤 이는 나에게 X가 단순해서 다루기 쉬운 존재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입을 닫고 나를 무시하는 X가 나에게는 그 어떤 문제보다도 어렵게 느껴졌다. 제 3자가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아주 오랫동안 가스라이팅 당해온 당사자는 그렇게 폭넓게 생각하지 못한다. 멘탈 한 구석이 망가져버린 탓이다. 


나는 나 자신을 생존자라고 부른다. 나는 꽤 긍정적이고 활발하고 밝은 사람이다. 그런 나 조차도 X 앞에서는 늘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고 싶은 충동에 자주 휩싸였다. 너무 억울해서 창문에서 뛰어내려서 내 진심을 보여주고 싶었다. X는 지속적으로 내 자존감을 끌어내렸고 내 일상은 우울감으로 가득 찼다. 사랑하는 사람이 주는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나는 그 악몽에서 살아 나왔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생존자라고 부른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의 visu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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