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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일기 Sep 13. 2024

잃어버린 바다 찾기


난 바다를 좋아했다. 수영도 참 잘했다. X와 나는 그런 취미가 잘 맞았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회사를 이직하기 전, 베트남 바다 어딘 가에서 수영을 하며 20일 정도 한 번 살아보자고 했었다. 나는 목적 없이 여행이 가능한 사람이다. 그러나 X는 목표지향적인 사람이라 늘 도전할 목표가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스쿠버다이빙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자격증 과정은 총 5일이었고 우리는 무난히 그 과정을 넘겼다. 그러나 나에게는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수영장에서 봤던 물과는 달리 바다의 물은 너무나 새카맿다. 그것이 나를 너무도 두렵게 했다. 햇빛이 닿는 5m까지는 괜찮았는데 그 이상 더 깊이 들어가면 숨이 막히고 심장이 떨렸으며 손발이 달달 떨렸다. 사이즈가 맞지 않는 물안경을 썼던 터라 물안경 안에는 언제나 물이 들어와 내 눈앞에서 찰랑찰랑거렸다. 너무도 깊고 넓은 바닷속에서 이대로 빠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은 하루가 다르게 내 목을 죄어왔다.


자격증 과정을 마친 후 나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무서웠는데 눈치 보느라 참고 참고 겨우 참아서 여기까지 온 거였다. 하지만 X의 생각은 달랐다.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자신은 더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X에게 혼자서 했으면 좋겠다고 나는 더 이상 무서워서 들어가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순간 X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X는 나에게 같이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했다. 그런 나약한 마음가짐 때문에 너는 인생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너는 늘 언제나 그랬다고. 좀 참아보고 극복해 나갈 생각은 안 하냐고 나에게 소리 질렀다. 나 때문에 즐길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순간 내가 우리의 여행을 망치고 있는 건 아닌지 죄책감이 들었다. 더불어 나는 정말 뭐 하나 제대로 해낸 것 없는 패배자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다시 X에게 도전해 보겠다고 말했다. X는 흡족해했다. 하지만 어디 그리 공포감이라는 게 쉽게 없어지는 거였던가. 극복한다고 해결될 일인가. 시도하면 바다에 빠져 죽을 것 같고 안 해도 X에게 숨 막혀 죽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또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공포감에 덜덜 떨면서도 실패하면 안 된다라는 마음으로 제발 좀 이겨내자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어둡고 고요한 바닷속에서 나는 무섭지 않다고 수백 번을 외치며 공포감을 떨치려 노력했다.  1m... 3m.... 5m..... 10m...... 20m.......... 30m쯤 찍었을 때 불현듯 잊고 있었던 공포감이 순식간에 몰려왔다. 나는 강사를 붙잡고 소리를 지르며 허우적댔다. 입을 벌릴 때마다 호흡기 안으로 바닷물이 들어와 숨을 쉬기가 어려워져 공포감은 극에 달했다. 강사는 내 눈을 바라보며 괜찮다고 계속 다독였지만 나는 강사를 밀치고 바다 위로 솟구쳤다. 그리고 바다 위 공기를 마시자마자 엉엉 울며 힘껏 소리 질렀다. 주변 보트 위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왔고 강사는 나를 보트 위로 끌어올렸다.


강사는 바다 깊은 곳에 있다가 바로 올라가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짓이라고 했다. 감압병의 위험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강사는 나에게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공포감에 멘탈이 붕괴되어 버린 나는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걱정을 하며 나에게 몰려들었다. 순간 X는 나에게 '괜찮아?' '무서우면 무섭다고 말하지 그랬어' '왜 그걸 억지로 하고 그래' '난 몰랐잖아'라고 말하며 내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백번을 말해도 들은 척도 안 하더니 상황이 심각해지니 X는 슬그머니 발을 뺐다. 하지만 그 후로도 X는 나에게 몇 번이고 자신과 다이빙할 것을 요구했다. 나는 그 후로 다이빙 트라우마가 생겼다. 자격증은 있으나 다이빙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바다에 들어갈 수 없었다.


X의 구치소 사건 이후 나는 심리치료를 위해 상담센터에 들른 적이 있었다. 간단히 MBTI 검사나 할 생각이었는데 의도치 않게 내 과거를 말해버린 이후 선생님은 나에게 적극 상담을 권장했다. 상담 중 선생님이 나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했을 때 나는 바다를 그렸다. 그리고 과거에 바다에서 X와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사건 이후로 한 번도 남 앞에서 울어본 적 없었는데 그때 갑작스럽게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바다를 사랑했다. 그런데 그 사건으로 인해 바다를 잃었다. 나는 선생님에게 '내 반짝반짝했던 바다를 잃었어요. 그 사람 때문에 내 바다를 잃었어요'라고 말하며 펑펑 울었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위로했다. 진짜 위로를 받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선생님 덕분에 힘을 얻었다. 나는 언니에게 전화해 내 상태에 대해 말하며 도와달라고 했다. 그리고 멀어졌던 친구들에게도 전화해 다시 만났고 밥을 먹고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다시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마침 수영장에서 프리다이빙 체험 수업을 10만 원에 가르치길래 그것도 배웠다. 여전히 숨쉬기 어려웠지만 그 어느 때보다 나는 물속에서 자유로웠고 처음으로 즐거움을 만끽했다. 나는 모든 것을 다시 시작했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의 Matt Ha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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