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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일기 Sep 10. 2024

내가 불행한 것은 다 너의 탓이다


X는 지방에 내려간 후로 종종 나에게 카톡을 보내 자신의 소식을 알려왔다. X의 부모님은 X가 나쁜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수시로 아들을 데리고 여행을 다녔다. 바다로, 산으로, 섬으로 다니며 아들과의 추억을 쌓았다. 두 달간의 구치소 생활은 X에게 큰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인생이 허무하게 무너져버린 것에 대해 좌절감이 컸다. 항상 대접받고 살았는데 구치소 안에서의 X는 보잘것없는 죄수에 지나지 않았다. 늘 당당했던 X는 한껏 위축된 채 출소했다.


신기하게도 위축된 X는 참 대하기가 쉬웠다. 나긋나긋했고 순한 양과 같았다. 그러나 X의 멘탈은 이미 산산조각 나 있었다. 어제는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이 싫어하는 행동을 했다면서 그에 대한 복수로 집안의 물건을 다 집어던졌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다들 X가 어떤 상태인지 아는 터라 아무도 X의 행동에 대해 쓴소리를 하지 못했다. X는 시아버지에게는 말도 제대로 못 걸면서 유독 자신의 어머니에게만큼은 모질게 대했다. 아들을 끔찍하게 아꼈던 시어머니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아들에게 가장 괴롭힘을 많이 당했다.


사실 X는 시아버지와 친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불편해했다.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X는 나에게 이곳의 생활은 너무 답답하다고 그 누구와도 자신의 수준과 맞는 대화를 나눌 수 없다고 호소했다. 내가 그립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안다. X는 결혼생활 내내 나에게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너는 참 답답하다고. 너랑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그때 X는 첫사랑에게 연락했었다. 지금 와이프가 자신을 놔두고 해외로 여행 나갔는데 너무 외로워 죽겠다고. 와이프는 자신을 이해해주지도 않고 배려하지도 않는다면서 그녀에게 내 험담을 했었다. 나는 멀쩡히 X의 컴퓨터 책상 뒤 침대에서 자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X의 뒤에서 모든 대화를 봤고 X는 내 낌새를 느끼자마자 후다닥 카카오창을 닫았다. 나는 X를 바라보며 나에게 할 말이 있으면 바로 하면 되지 왜 다른 여자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 너는 하루종일 입을 꾹 다물고 나에게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지 않느냐라고 따져 물었다. 그에 대한 X는 대답은 한 마디였다. '네가 잘했어야지'


나만 잘했으면 자신이 우울해하지 않았을 거고,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을 거고, 이렇게 다른 여자에게까지 연락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나만 잘했으면 자신의 인생이 더 행복했을 거라고 했다. 지금 지방에 있는 X는 그때와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시어머니만 잘했다면 자신이 화나지 않았을 거고, 집 물건을 집어던지지 않았을 거라고. X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더 이상 징징대는 소리 듣고 싶지 않았다. 그냥 짧고 굵게 말했다. 잔말 말고 그냥 이혼하자고. 집은 부동산에 내놨으니, 전세가 나가면 은행 대출금 갚고 남은 돈 반반 나누자고 했다. 그러자 X는 부모님과 상의를 해보겠다며 말을 끊었다. 몇 시간 뒤에 X는 답장을 했다. X는 부모님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자신과 이혼을 하고 싶으면 지금 지방으로 내려와서 부모님 앞에서 같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화가 났다. 일을 저지른 건 본인인데 지금 X는 부모 뒤에 숨어 부모가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사실 지금 내가 지방으로 내려가는 건 호랑이굴로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은 셋이고 나는 혼자다. 그들로부터 집중공격을 당할텐데 나는 그들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나는 단박에 거절했다. 나는 X에게 서울로 올라오면 나에게 연락하라고 했다. 나는 절대 그곳으로 가지 않을 거고 시부모님도 만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혼은 우리 둘이 해결할 일이지 부모님이 나서서 대신 해결해 줄 일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X는 알겠다고 했다.


X는 만약 내가 자신과 똑같은 일을 벌였다면 자신은 나를 용서하고 이혼도 하지 않을거라고 말했다. 나는 X에게 네가 정상인이였다면 나는 이혼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답장했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의 engin aky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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