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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일기 Sep 08. 2024

집행유예 받을 줄 몰랐어요


사실 나는 X가 집행유예를 받아 풀려날 줄 몰랐고 그 당일 재판을 선고받자마자 바로 출소할 줄 몰랐다. 내가 재판소를 나와 회사로 복귀했을 때 시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왔다. 시아버지는 X를 데리고 지금 막 구치소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이미 회사로 들어왔다고 말하니 시아버지는 내심 아쉬워했다. 시아버지는 X를 데리고 지방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그전에 X의 옷과 여러 물건들을 챙겨야 하니 새로 이사 간 우리의 집 주소와 집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 텅 빈 공간을 보면 시아버지는 뭐라고 할까. 나는 그 즉시 카카오톡으로 그가 요구한 정보들을 보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시아버지가 전화를 해 불같이 화를 냈다. 텅 빈 집에 아들의 짐은 그대로 쌓여있고 가구, 가전 모두 다 빼버렸으니 분노가 치솟았을 것이다. 자신이 집행유예 받을 거라고 얘기하지 않았느냐면서 그 새를 못 참고 다 팔아버렸냐고 길길이 날뛰었다. 나는 차분히 X가 이렇게 바로 출소할지 몰랐고 우리는 곧 이혼 예정이라 집을 내놓았기 때문에 가구도 미리 처분해야만 했었다고 말했다. 시아버지는 나에게 어차피 그렇게 팔아봤자 돈 얼마 받지 못하는데 그걸 왜 넘겼냐고 하며 쓴소리를 내뱉었다. 나는 졸지에 돈 때문에 가구를 팔아버린 사람이 되었다. 잊을만하면 계속 욕을 먹게 되니 이제는 정말 무덤덤해진다. 욕도 많이 먹으면 내성이 생기나 보다.


그 후에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시아버지가 아빠에게 전화해 하소연을 했다고 했다. 시아버지는 아빠와 동갑내기로 상견례에서 처음 마주친 후 친하게 지내왔었다. 시아버지는 아빠에게 내가 생각 없이 모든 가전 가구를 다 팔아버렸다고 정신머리 없는 애라고 욕을 했다고 했다. 아빠는 자신은 정말 몰랐던 일이라고 아무래도 나의 엄마가 부추겨서 벌인 일일지도 모른다고 말을 했다고 했다. 


얼마나 상심이 크시겠습니까 사돈어른. 화를 푸세요. 사돈어른. 아빠는 시아버지를 위로했다. X의 상태가 곧 좋아질 거라면서 덕담도 아끼지 않았다. 우리는 이혼을 하지 않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 아빠는 그 말을 내게 전하면서 좀 더 X와의 관계를 고민해 보라고 했다. 고민할 것도 없는데 자꾸 고민하라고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우리의 관계는 이미 진작에 끝났다.  


그 후 아빠는 따로 X를 만나 설렁탕을 사주며 X를 위로했다. 남자라면 그럴 수도 있다. 큰 죄가 아니다. 너는 충분히 다시 일어설 수 있으니 좌절하지 말아라. 나는 그 이야기를 X에게 전해 듣자마자 너무 화가 났다. 그리고 바로 아빠에게 전화해 내가 X를 만나지 말라고 수차례 얘기했었고 X가 벌인 짓은 끔찍한 죄인데 왜 그걸 위로했냐고 쏘아붙였다. 아빠는 내가 만나고 싶어서 만난 거고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 건데 왜 너는 내 행동을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고 되려 나에게 화를 냈다. 


아빠는 나의 아빠가 아니라 X의 아빠였나 보다. 위로가 필요한 건 나였는데.




이미지 출처 : Unsplash의 Sage Fried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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