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화. 렌탈 인생

명품 백 대여 서비스와 택배 상자 뒤의 공허함

by 지안의 방

현관 앞에 커다란 택배 박스가 도착했다.

내용물에 비해 지나치게 큰 상자를 뜯자, 검은색 더스트백에 담긴 샤넬 백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다.

물론 내 건 아니다. 한 달에 일정 금액을 내고 빌려 쓰는 '명품 렌탈 서비스'에서 온 귀한 몸이다.


이번 주말엔 대학 동창의 결혼식이 있다. 오랜만에 모이는 자리, 그곳에서 나는 '잘나가는 마케터'로 보여야 한다.

24개월 할부로도 후들거리는 가방을 사는 대신, 나는 딱 하루의 자존감을 위해 일주일치 식비를 렌탈비로 입금했다.


가방을 메고 거울 앞에 서본다.

오, 확실히 태가 난다. 이 가방 하나로 내 좁고 초라한 자취방의 공기까지 순식간에 고급스러워지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가방 안을 열어보면 이야기는 조금 민망해진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부드러운 가죽 안감 속에는, 내 팍팍한 현실들이 낱낱이 들어있다.

편의점에서 대충 때우고 받은 1+1 영수증,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낡은 립밤.

그리고 무엇보다 가방 옆 포켓에 꽂아둔 스마트폰에선 차가운 알림이 울려댄다.


[OO카드 결제 예정: 3,840,000원]

[잔액 부족으로 자동이체가 실패하였습니다.]


가방 겉면의 로고는 눈부시게 빛나지만, 그 속에서 울리는 진동은 참 공허하다.

겉은 샤넬인데 속은 '잔액 부족'인 셈이다.


"와, 지안아! 이거 이번 시즌 신상 아냐? 대박, 너무 예쁘다!"


결혼식장에서 친구들의 시선이 내 어깨에 머무는 그 0.5초. 그 짧은 찰나의 희열을 위해 나는 기꺼이 할부 인생을 선택했다.

친구들이 던지는 선망 어린 눈빛은 참 달콤하지만, 그 단맛은 예식장 문을 나서는 순간 썰물처럼 쫙 빠져나간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며 나는 문득 생각한다. 지금 내 어깨를 짓누르는 게 가방의 무게일까, 아니면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의 무게일까.


사진 속 '멋진 나'를 위해 긁었던 카드값들이 이자까지 붙어 돌아올 때마다 숨이 턱 막힌다.

해시태그 뒤에 숨겨진 내 마음은 사실 가난하기 짝이 없다. 남들의 부러움을 사느라 정작 나를 돌볼 여유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오늘도 인스타그램엔 하객룩 사진을 올린다.

[ 축하해 민주야! 행복하게 잘 살아! #하객룩 #주말 #일상 ]


사진 속 나는 세상 누구보다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빌려온 가방을 다시 포장해 반납 상자에 담으며 조금은 허탈한 한숨을 내뱉는다.

가방이 떠난 자리, 현관문 옆에는 다시금 텅 빈 정적과 갚아야 할 숫자들만이 남았다.



지안의 노트: 당신의 소비는 '나'를 위한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지안이가 빌린 건 사실 가방이 아니라 '남들에게 비칠 완벽한 이미지'였을 거예요.


우리는 가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남들에게 좋아 보일 물건을 사는 데 소중한 돈과 에너지를 쓰곤 하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두려움이 지갑을 열기 시작하면, 통장은 비어가고 마음의 허기는 점점 커질 뿐이에요. 내면의 결핍을 외적인 화려함으로 가리려는 시도는 달콤하지만, 그 만족감은 너무 짧고 할부의 고통은 참 길거든요.


[로그아웃 연습 : 나를 위한 질문]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도, 오직 나만 좋아서 산 물건이 있나요?


남들의 "부럽다"는 말보다, 내가 나에게 주는 작은 만족 하나가 당신의 자존감을 더 단단하게 지켜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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